신약성서의 교회
목사의 직위(office)는 교회안에서 가장 높은 위치로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런 인식은 불행한 생각인데, 이유는 그 생각은 크리스챤들을 두 계급으로 만들면서 양분시키고 말기 때문이다: 즉, 평신도와 성직자
이런 잘못의 근원은 교회가 신약성서 "몸(body)"의 모델에 머무르는 대신에 로마제국의 군주적인(hierarchical)구조를 채택한 4세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런 역사적인 개발들은 어떻게 세속적인 문화가 크리스챤 문화를 묶어 매느냐하는 것을 입증해준다. 이 묶어 매는 것이 가끔은 축복일수도 있지만 또 종종 저주가 되는 것 이기도하다. 이런 경우에 그것은 저주가 되었는데 왜냐하면 군주적인 모델이 "몸(body)"의 모델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몸으로서 교회가 어떻게 사역해야 되는 데에 대한 다음의 서술은 처음에는 강조되었지만, 수세기를 내려오면서 강조되면서도 또한 약해졌다.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 하사 몸 가운데에서 부정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는 데에 여러 가지 계급(multi-level)의 '군주적인 방법'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데에 모든 성도가 동등(every-member-equal)한 "몸"의 방법으로 대치하면서, 그런 군주적인 묶음으로부터 자유로와 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전통적인 교회는 이런 두가지계급(two-class)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왜곡은 크리스챤들로 하여금 만약 그들이 '정말로' 하나님께 봉사하기 원한다면 그들은 그들의 공동체(교회)를 떠나서 신학교에 가서 안수 받고 개 교회들의 담임목사들이 되도록 잘못 인도하는 실수를 계속하고 있다.
1950년대에 와서야 교회는 하나님의 일(God's business)을 하는 데에 더 나은 방법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것은 목회에 대한 성서적 모델을 다시 발견하면서부터였다. 에베소서4:11-12절은 성도들로 하여금 목회사역을 위해 준비하는 데에 목사들과 교사들이 참여함에 대해 적나라하게 지적하는 것이다. 상황과 다른 성서들이 그것을 더욱 분명히 해주는 데에 모든 크리스챤은 목회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교단들의 많은 교회들이 이런 재발견에 참여하는데 그 결과는 적어도 두 번째 종교개혁 이상이다.
첫 번째 종교개혁에서 교회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주었다. 두 번째 종교개혁에서 교회는 목회를 사람들에게 준다. 교회는 다시 계급이 없는(classless) 교회가 되는 것이다 평신도와 성직자의 불평등은 하나님의 모든 사람들(laos)의 동격(parity)에 의해 대치되는 것이다.
우리가 전수받은 교회가 어떻게 성직자와 평신도와 군주 사이의 이런 분리에 도착하게 되었는가? 우리는 알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발자국들을 다시 따라가 보는 것(retracing)은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의 여정을 수정하도록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답은 구약성서에서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게 만든 다섯가지 원인을 추적하여 봄으로서이다.
원인1: 제사장들의 특별한 직책(order)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제사장적인 직책(직위)은 제사장들을 나머지 성도들과 분리 시켰다. 그들은 의식들을 인도하고 하나님에 대하여 사람들을 대표했으며, 그리고 그들의 물질적인 필요들을 위해 사람들로부터 자급량(양식)을 받았다.
원인2: 모든 사람은 제사장들이다.
신약성서는 제사장들이 직책에 대한 증거를 제공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오심은 그런 직책을 끝냈다(히:4-5장을 보라). 예수그리스도의 교회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벧전2:9). 모든 크리스천은 목회를 위해 은사가 주어졌다.
원인3: 한직책, 많은 기능들
평신도와 목사 사이에 차이점들은 직책(order)이 아니라 기능(function)이다. 교회에 대한 베드로의 정의-"왕같은 제사장직"-는 단지 한가지 직책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직책은 제사장(또는 목회자)인데, 그러나 하나님께서 많은 기능들에서 그것을 주셨다.
원인4: 새로운 직책, 성직자
불행하게도 두 직책의 변화(change)가 교회 역사 중에 가장큰 사건들 중에 하나인 AD312년에 있은 콘스탄틴의 칙령으로서 시작되었다. 그때까지 교회는 로마 황제들에 의해서 박해 받아왔다. 그러나 AD312년 10월 28일 꿈을 꾸는 동안에 황제 콘스탄틴은 "이표로 정복하라"라는 말과 함께 하늘에 있는 십자가를 보았다. 그래서 그는 정복했다.
원인5: 믿는자들의 제사장직에 대한 재발견
가끔 교회는 군주적인 것에 붙잡혀 있는 것으로부터 그 자체가 자유로와 지려고 애 쓰기도 한다. 마틴루터에 의해 인도된 16세기의 종교 개혁은 단지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것을재 발견한 것이 아니라, 또한 '믿는자들의 제사장직'을 재발견 하였다. '제사장직'이란 두가지 역할들을 포함한다: 1)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을 대표하는 '제사장'; 그리고, 2)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목회자'.
목사의 직위(office)는 교회안에서 가장 높은 위치로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런 인식은 불행한 생각인데, 이유는 그 생각은 크리스챤들을 두 계급으로 만들면서 양분시키고 말기 때문이다: 즉, 평신도와 성직자
이런 잘못의 근원은 교회가 신약성서 "몸(body)"의 모델에 머무르는 대신에 로마제국의 군주적인(hierarchical)구조를 채택한 4세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런 역사적인 개발들은 어떻게 세속적인 문화가 크리스챤 문화를 묶어 매느냐하는 것을 입증해준다. 이 묶어 매는 것이 가끔은 축복일수도 있지만 또 종종 저주가 되는 것 이기도하다. 이런 경우에 그것은 저주가 되었는데 왜냐하면 군주적인 모델이 "몸(body)"의 모델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몸으로서 교회가 어떻게 사역해야 되는 데에 대한 다음의 서술은 처음에는 강조되었지만, 수세기를 내려오면서 강조되면서도 또한 약해졌다.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 하사 몸 가운데에서 부정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는 데에 여러 가지 계급(multi-level)의 '군주적인 방법'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데에 모든 성도가 동등(every-member-equal)한 "몸"의 방법으로 대치하면서, 그런 군주적인 묶음으로부터 자유로와 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전통적인 교회는 이런 두가지계급(two-class)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왜곡은 크리스챤들로 하여금 만약 그들이 '정말로' 하나님께 봉사하기 원한다면 그들은 그들의 공동체(교회)를 떠나서 신학교에 가서 안수 받고 개 교회들의 담임목사들이 되도록 잘못 인도하는 실수를 계속하고 있다.
1950년대에 와서야 교회는 하나님의 일(God's business)을 하는 데에 더 나은 방법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것은 목회에 대한 성서적 모델을 다시 발견하면서부터였다. 에베소서4:11-12절은 성도들로 하여금 목회사역을 위해 준비하는 데에 목사들과 교사들이 참여함에 대해 적나라하게 지적하는 것이다. 상황과 다른 성서들이 그것을 더욱 분명히 해주는 데에 모든 크리스챤은 목회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교단들의 많은 교회들이 이런 재발견에 참여하는데 그 결과는 적어도 두 번째 종교개혁 이상이다.
첫 번째 종교개혁에서 교회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주었다. 두 번째 종교개혁에서 교회는 목회를 사람들에게 준다. 교회는 다시 계급이 없는(classless) 교회가 되는 것이다 평신도와 성직자의 불평등은 하나님의 모든 사람들(laos)의 동격(parity)에 의해 대치되는 것이다.
우리가 전수받은 교회가 어떻게 성직자와 평신도와 군주 사이의 이런 분리에 도착하게 되었는가? 우리는 알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발자국들을 다시 따라가 보는 것(retracing)은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의 여정을 수정하도록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답은 구약성서에서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게 만든 다섯가지 원인을 추적하여 봄으로서이다.
원인1: 제사장들의 특별한 직책(order)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제사장적인 직책(직위)은 제사장들을 나머지 성도들과 분리 시켰다. 그들은 의식들을 인도하고 하나님에 대하여 사람들을 대표했으며, 그리고 그들의 물질적인 필요들을 위해 사람들로부터 자급량(양식)을 받았다.
원인2: 모든 사람은 제사장들이다.
신약성서는 제사장들이 직책에 대한 증거를 제공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오심은 그런 직책을 끝냈다(히:4-5장을 보라). 예수그리스도의 교회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벧전2:9). 모든 크리스천은 목회를 위해 은사가 주어졌다.
원인3: 한직책, 많은 기능들
평신도와 목사 사이에 차이점들은 직책(order)이 아니라 기능(function)이다. 교회에 대한 베드로의 정의-"왕같은 제사장직"-는 단지 한가지 직책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직책은 제사장(또는 목회자)인데, 그러나 하나님께서 많은 기능들에서 그것을 주셨다.
원인4: 새로운 직책, 성직자
불행하게도 두 직책의 변화(change)가 교회 역사 중에 가장큰 사건들 중에 하나인 AD312년에 있은 콘스탄틴의 칙령으로서 시작되었다. 그때까지 교회는 로마 황제들에 의해서 박해 받아왔다. 그러나 AD312년 10월 28일 꿈을 꾸는 동안에 황제 콘스탄틴은 "이표로 정복하라"라는 말과 함께 하늘에 있는 십자가를 보았다. 그래서 그는 정복했다.
원인5: 믿는자들의 제사장직에 대한 재발견
가끔 교회는 군주적인 것에 붙잡혀 있는 것으로부터 그 자체가 자유로와 지려고 애 쓰기도 한다. 마틴루터에 의해 인도된 16세기의 종교 개혁은 단지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것을재 발견한 것이 아니라, 또한 '믿는자들의 제사장직'을 재발견 하였다. '제사장직'이란 두가지 역할들을 포함한다: 1)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을 대표하는 '제사장'; 그리고, 2)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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