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교회가 정체되는가
평신도 사역의 분야에는 왜 좀처럼 진보가 없는 것일까? 지난 3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서구 교회에서는 평신도 사역을 강조하는 책들과 다른 자료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책이나 자료 외에도 이 주제에 관한 세미나, 비디오, 강의 테이프, 등을 흔히 볼 수 있다.
목회자들에게 평신도 세우기를 권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모든 성도들이 사역하지 않는 교회에서는 성경의 진리가 생명을 읽게 되며, 비 전략적인 리더십 배치와 아울러 자원들을 활용하지 못하고 방치해 버리게 되며, 그 결과 세계 복음화는 여전히 달성되지 못한 상태로 남을 수밖에 없다.
교회는 목사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사역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처럼 쏟아져 나오는 정보에 비하면 실제 교회에 미친 영향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것 같다. 신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목회자들은 평신도를 세우는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기 때문에 시도를 해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우리는 모두 거룩한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며,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소유하고 있다는 성경 진리로 인해 가슴이 뜨거워진 평신도들 역시 열정적으로 그리스도를 섬기고자 하지만 교회 내에서 활동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평신도는 교회에서 행해지는 분주한 일들을 보면서 자산은 半(반)실업자라고 느끼고 있는 반면, 목회자들은 혼자서 교회의 모든 사역을 감당하면서 지신이 지나치게 많은 일을 한다고 느끼고 있다.
정체된 교회
사역에 참여하는 기회가 적은 평신도들과 반면에 많은 사역으로 인해 지쳐 있는 목회자들이 동역 하는 것이 아주 쉬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성도들을 교회 사역에 동참시키기 위하여 아무 일이나 무조건 맡긴다고 되지 않는다. 모든 평신도들에게는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고유한 사명들이 있다. 깁스와 모턴에 의하면 이미 정체되어 버린 하나님의 백성들은 한 두 가지 새로 개발 된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만으로는 그 변화를 거두기가 어렵다고 한다. 정체된 교회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래에 열거된 것과 같이 조직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과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교회 지도자들 : 목회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은 교회의 새로운 프로그램 구상에서부터 밤에 교회 문을 잠그는 것까지 이 모든 일들 때문에 자신들이 침체되어 있다고 느끼고 있다.
▶동기 부여가 안된 평신도: 목회자가 평신도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는 하지만 동기까지 부여할 수는 없다. 평신도들은 받기만 원하는 사람들이어서 여전히 자기들 스스로 사역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목회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리더십의 소진: 목회자들은 지신이 소진하게 될 때 자책감에 빠진다. 성도들 역시 목회자들을 책임 추궁하지만 사실 실의에 빠진 목회자의 모습은 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겉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결국 목회자의 의욕 상실은 교회 내에 있는 뿌리 깊은 문제가 표면화 되어 나온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반복되는 문제들: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흘러가면서 무대에는 배우들이 바뀌며 새로운 무대가 설치되지만 문제들은 반복해서 끊임없이 나타난다. 교회의 분열은 멈출 줄 모른다. 교회의 핵심 인물들이 끼친 부정적인 사고와 분위기는 그들이 떠나거나 죽은 이후에도 계속 남아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내부 유지에만 초점을 맞춤: 대부분의 성도들은 시야가 안으로 고정되어 있어서 선교보다 자신들의 신앙을 유지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그들은 선교를 헌신된 자세가 투철한 소수의 사람에게만 국한된 아주 투철한 사명이라고 본다.
교회가 정체되어 있다. 성도들의 은사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목회자들이 자신들의 목회를 성역으로 만들어 놓고 성도들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것보다 더 심각하다.
평신도의 역할이 정체되어 있는 것은 기존의 교회 제도가 평신도들이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으로 물러나 있게 만들며,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는 평신도 사역을(엡 4;11-12)소홀히 하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성장하는데 필요한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목회자와 성도들간의 아름다운 동역이 필요하다. 교회는 변화가 필요하며, 그 변화는 유기체적인 변화이다.
평신도 사역의 분야에는 왜 좀처럼 진보가 없는 것일까? 지난 3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서구 교회에서는 평신도 사역을 강조하는 책들과 다른 자료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책이나 자료 외에도 이 주제에 관한 세미나, 비디오, 강의 테이프, 등을 흔히 볼 수 있다.
목회자들에게 평신도 세우기를 권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모든 성도들이 사역하지 않는 교회에서는 성경의 진리가 생명을 읽게 되며, 비 전략적인 리더십 배치와 아울러 자원들을 활용하지 못하고 방치해 버리게 되며, 그 결과 세계 복음화는 여전히 달성되지 못한 상태로 남을 수밖에 없다.
교회는 목사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사역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처럼 쏟아져 나오는 정보에 비하면 실제 교회에 미친 영향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것 같다. 신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목회자들은 평신도를 세우는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기 때문에 시도를 해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우리는 모두 거룩한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며,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소유하고 있다는 성경 진리로 인해 가슴이 뜨거워진 평신도들 역시 열정적으로 그리스도를 섬기고자 하지만 교회 내에서 활동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평신도는 교회에서 행해지는 분주한 일들을 보면서 자산은 半(반)실업자라고 느끼고 있는 반면, 목회자들은 혼자서 교회의 모든 사역을 감당하면서 지신이 지나치게 많은 일을 한다고 느끼고 있다.
정체된 교회
사역에 참여하는 기회가 적은 평신도들과 반면에 많은 사역으로 인해 지쳐 있는 목회자들이 동역 하는 것이 아주 쉬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성도들을 교회 사역에 동참시키기 위하여 아무 일이나 무조건 맡긴다고 되지 않는다. 모든 평신도들에게는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고유한 사명들이 있다. 깁스와 모턴에 의하면 이미 정체되어 버린 하나님의 백성들은 한 두 가지 새로 개발 된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만으로는 그 변화를 거두기가 어렵다고 한다. 정체된 교회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래에 열거된 것과 같이 조직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과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교회 지도자들 : 목회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은 교회의 새로운 프로그램 구상에서부터 밤에 교회 문을 잠그는 것까지 이 모든 일들 때문에 자신들이 침체되어 있다고 느끼고 있다.
▶동기 부여가 안된 평신도: 목회자가 평신도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는 하지만 동기까지 부여할 수는 없다. 평신도들은 받기만 원하는 사람들이어서 여전히 자기들 스스로 사역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목회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리더십의 소진: 목회자들은 지신이 소진하게 될 때 자책감에 빠진다. 성도들 역시 목회자들을 책임 추궁하지만 사실 실의에 빠진 목회자의 모습은 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겉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결국 목회자의 의욕 상실은 교회 내에 있는 뿌리 깊은 문제가 표면화 되어 나온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반복되는 문제들: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흘러가면서 무대에는 배우들이 바뀌며 새로운 무대가 설치되지만 문제들은 반복해서 끊임없이 나타난다. 교회의 분열은 멈출 줄 모른다. 교회의 핵심 인물들이 끼친 부정적인 사고와 분위기는 그들이 떠나거나 죽은 이후에도 계속 남아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내부 유지에만 초점을 맞춤: 대부분의 성도들은 시야가 안으로 고정되어 있어서 선교보다 자신들의 신앙을 유지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그들은 선교를 헌신된 자세가 투철한 소수의 사람에게만 국한된 아주 투철한 사명이라고 본다.
교회가 정체되어 있다. 성도들의 은사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목회자들이 자신들의 목회를 성역으로 만들어 놓고 성도들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것보다 더 심각하다.
평신도의 역할이 정체되어 있는 것은 기존의 교회 제도가 평신도들이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으로 물러나 있게 만들며,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는 평신도 사역을(엡 4;11-12)소홀히 하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성장하는데 필요한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목회자와 성도들간의 아름다운 동역이 필요하다. 교회는 변화가 필요하며, 그 변화는 유기체적인 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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