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제자훈련

제 4강 교회론 B

가디우스 2007. 9. 6. 16:51

제 4강 교회론 B

 

전통적인 교회론은 불가견적인 교회의 정의는 잘 내리고 있지만 지상교회의 명확한 본질과 소명을 흐리게 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부름 받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특권만을 강조하는데 치우쳐버린 경향이 없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오늘날 많은 교회가 목회상 균형을 잃고 있는 이유가 아닌가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회가 세상을 향한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평신도가 교회 안과 밖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알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A에서 평신도가 교회의 주체라는 사실을 말했다.

이제는 평신도가 소명받은 자라는 사실을 말한다.


Ⅰ. 전통적인 교회론의 취약점


가. 종교개혁자들의 관심(주로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개혁성이다. 그들이 말한 모든 것을 우상시 하면 안된다. 신성로마는 모두 기독교 천지였다. 여기서 종교개혁자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진짜 교회였다. 진짜 교회를 찾으려고 한다.


말씀, 성례전, 권징: 이것이 교회의 표지, 참 교회였다.


이것 때문에 지상 교회에서 보냄을 받았다는 소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강조하지 못했다. 교회천지, 기독교가 가득한데 어떻게 보내라는 것을 강조할 수 있는가?


한스큉은 교회의 이미지가 시대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예수님 시대가 지난 후 교회는 전투적인 교회이다. 초대교회의 이미지는 전투이다. 300년이 지나고 콘스탄틴대제가 기독교 국가를 세운 이후, 상생의 교회로 달라졌다. 화해이다. 서로 살기 위한 시대...암흑시대에서 카톨릭의 교회는 세상과 교회를 구분 못하는 혼탁했다. 세상에 동화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이 깃발을 들면서 교회의 이미지는 분리였다. 거짓교회에서의 참된 교회를 발견하는 것이다.


나 . 20세기의 교회의 모습

지금 얼마나 안티 기독교가 많이 있는 줄 아는가? 기독교의 통계가 엄청나지만...얼마나 무섭게 반 기독교적인 현상이 일어나는지 보라. 살아남기 위해서 전투적인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교역자가 전투하는가? 아니면 천만명이 넘는 평신도가 되어야 할 것인가? 평신도가 정답이다. 그들이 전투해야 한다. 평신도가 군인이 되어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의 교회론에서 문제점은 무엇인가?


스테판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참 교회 신학이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교회론은 전부 부적당하고 낙후된 것이다. 그것은 이미 주어져 있는 무엇, 이미 존재하고 있는 무엇을 의미하는 정적 개념에 비추어 만들어진 것이다. 관심의 대부분이 교회의 외적표지에 집중되어 있다.” 참 교회 거짓교회만 구별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헤리 보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로버트슐러가 소속되어 있는 교단의 선교사이다. 아프리카에서 신학교를 세웠다. 오순절과 선교란 책을 썼다.


“ 종교개혁자들과 다수의 17세기 신학자들의 생각에는 대사명이 사도들에게만 국한된 것이었따. 사도들이 죽자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도 함께 죽어 버렸다. 그 대사명이 사도들이 세운 교회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


종교개혁자들의 교회론이 평신도의 선교적 소명에 대해서 등한히 했다.


존 피터란 사람은 헤리 보우와 같은 교단이고 하버드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그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이 두 세계(종교 개혁 당시과 지금의 세계)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종교 개혁 당시에는 회 구조가 대부분 정적이고 교착되어 있었다. 반면에 오늘은 그 구조가 유동적이며 동적이다. 문제는 이전 시대의 산물인 ㅈ어적인 사고 방식이 우리가 사는 현대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


“ 종교 개혁자들의 교회 정의는 그 나름대로 잘된 것이지만 오늘을 사는 신자들에게는 적합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선교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종교 개혁자들의 모든 정의가 성경에서 그 출발점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꼭 성경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적인 교회론은 선교를 전제로 한 상황에서 나온 것인데 반해 종교 개혁자의 교회론은 사회의 주어진 상황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신약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는 신성 로마 제국이란 것은 생각 속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 존재하는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이교적인 로마 제국의 통치였던 것이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고린도전서 12:28

평깨 82쪽 참조하라.


칼빈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주석했다.

“ 주님꼐서 사도직을 제정하셨다. 그것은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모든 족속과 방언 가운데서 대사직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 점에서 사도와 목사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목사는 어느 한 지역 교회에 매여 있는 사람이다. 주님께서 목사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시지 않고 그가 맡은 교회를 목양하게 하셨다.”


루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도들은 낯선 집에 들어가 말씀을 전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그렇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 목적을 위해 지명을 받아 부름을 입었으며 또 보냄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예수께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 고 명령하신 그대로 어느 곳에서나 복음을 전해야 했다. 그러나 그 후에는 아무도 다시 그와 같은 사도적인 명령을 받은 일이 없다. 감독이나 목사는 다 자신이 맡은 특정 교구를 가지고 있다.”


다. 결론은

   전통적인 교회 정의에는 지상교회의 소명이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


라. 그 후유증이

교회의

1. 내향적 성격

2. 평신도의 무력화

3. 교역자의 권위주의

4. 시대적응의 취약성

으로 남겨졌다.

Ⅱ. 지상교회의 소명을 위한 신학적 근거

사도성이란 무엇인가? 평깨 89쪽 참조하라.

사도성은 예수님께서 그의 사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그들의 터 위에 그의 몸된 교회를 세우셨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2:20)


사도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으로 목격하였던 증인으로서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교회는 이 사도들의 증거와 사역 위에 세워졌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는 교회의 시작이며 영구한 기초석이 되었다. 이 사실에 근거해서 교회는 사도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한스큉

“다양성 중의 통일성, 개체성 중의 보편성, 죄성 중의 성성에 대해 연구하면서 언제나 마음 속에 담아 두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표준에 관한 문제이다. 어느 정도로 교회가 하나되고 거룩하고 보편적일 수 있는가? 참된 통일성, 보편성, 성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판단하는 결정적인 표준은 교회의 사도성에 나타나 있다.


사도직은 계승할 수 없다. 사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은 사도의 교훈과 사역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한스 큉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직 한 가지의 기본적인 대답이 있는데 그것은 교회라는 것이다. 소수의 개인이 아닌 전 교회가 그 계승자다. 결국 우리는 사도적 교회를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가. 사도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필요


나. 사도성에 대한 오해


다. 교회의 네가지 본질

1. 성성

2. 통일성

3. 보편성

4. 사도성


라. 사도성이란 무엇인가? - 요20:21; 엡2:20

지상의 참 교회는 사도들의 터위에 세워진 교회다.


마. 사도성의 계승

사도의 계승은 증거의 말씀 뿐 아니라 증거의 사역도 계승해야 한다. 이것을 전 교회가 계승해야 한다. 이것을 일부의 목회자와 선교사만 계승한다고 생각했지 전교회가 계승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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