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양육/신앙안에서 자녀교육

[스크랩] 선교사와 자녀교육 (1): 모국어

가디우스 2007. 9. 12. 12:17
선교사의 삶 중...
사역보다도 더 힘든 것이 자녀교육이다.
내가 한국 선교사로서 경험하기로는 자녀 교육중 가장 힘든 것이 모국어 교육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선교사 자녀(Missionary Kids) 들을
"선교지에 도착한 시기"를 기준으로 5개의 그룹으로 나누고자 한다.

1) 선교지에서 태어난 아이,
2) 아주 어렸을 때(두세살~유치원) 선교지로 간 아이,
3) 초등학교 시절에 선교지로 간 아이,
4) 중고등 학교 시절에 선교지로 간 아이,
5) 대학시절에 선교지로 간 자녀 등...

대부분 모국어(Mother Language)의 문제가 생기는 층은
첫째와 둘째 그룹에 속하는 자녀들이다.

선교지에서 태어났든지 아니면 아주 어렸을 때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선교지로 간 자녀들은 모국어 문제와 한국인의 정체성 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나타난다.

여기서는 먼저 모국어 교육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나의 첫 선교지인 필리핀에 갔을 때 개인적으로 적지않은 충격적을 받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먼저 필리핀에 선교하러 온 선배 선교사 자녀들이 한국말은 잘 못하고 영어로만 대화하고 알아듣는 특이한 장면을 목격한 것이었다.

마땅히 한국 아이는 한국말을 가장 잘 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선입견이 있었던터라
모습은 전형적인 한국아이인데 언어를 영어만 쓰는 한국 선교사 자녀들을 보면서
난 심각하게 우리 딸의 모국어 교육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딸이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영어로만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면
너무 피곤하고 슬픈 일임이 분명했다.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지 위해 부모로서 뭔가를 해야한다는 강한 의식이 나를 사로잡았다.

어떻게든 우리 아이에게 먼저 한국말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예원이가 필리핀에 도착했을 때는 돌을 막 맞이한 아주 어린 아기였다.
난 그때부터 예원이의 교육을 위해 진지하게 생각하며 기도하기 시작했고
내 기도 내용은 선교지에서 어떻게든 예원이가 한국말을 잘 할 수 있는 교육을 받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깊이 생각하며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남다른 지혜를 주셨고 그것을 실천할 수있는 강한 믿음도 주셨다. 이번에도 주님은 내가 이 부분을 위해 기도했을 때 분명한 지혜를 주셨고 나는 주님이 주시는 지혜와 생각대로 철저히 따랐다.

가장 먼저 실천한 것은,
가정에서는 철저히 한국말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남편도 이 점을 100% 찬성해서 우리는 예원이에게 집에서 한국말로만 대화했다.

두 번째는 예원이가 한국 말을 제대로 할 때까지는 영어과외는 절대 안 하는 것이었다.
다른 한국 선교사 부모들은 무조건 영어 투터(Tutor)부터 구해서 한국 말을 겨우 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강제적인 영어 공부를 시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아직 한국말에 대한 개념도 없는 아이에게 영어 공부를 더 많이 시켜서
영어를 우선시하는 것은 나중에 후회할 일이 뻔했으므로 철저히 배제했다.

세 번째는 일년에 한 번씩 한국을 방문한 것이었다.
예원이는 영국에서 태어나 한 살 때 필리핀에 왔으므로 한국인의 정체성이 필요했고
그것은 고국을 방문해서 한국 문화와 한국을 보여 주고 한국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 번째는 선교지에서 할 수 만 있다면 다른 한국 선교사 자녀들과 자주 교제하게 하는 것이었다. 사역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리는 예원이 또래의 한국 선교사 자녀들과 서로 어울려 놀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할애했다. 형편이 허락되면 선교지에 있는 한인 교회에 자녀들이 참석하게 해서 한국인 자녀들과의 충분한 교제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섯 번째는 집에서 한국 말로 가정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다.
예원이가 서너 살 됐을 때부터 한국 말을 쓸 줄은 몰라도 말을 할 수 있었으므로
대표 기도도 하게 했다. 처음엔 힘들어했지만 예원이는 곧 한국 말로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나중엔 제법 잘 했다.

여섯 번째는 한국 동화책과 비디오같은 것을 한국 방문할 때마다 가져 와서 읽어주고 틀어주는 것이었다. 한국 말에 대한 흥미와 한국인에 대한 뿌리를 어릴 적부터 형성하는데는 이와같은 것들이 아주 효과적이다.

일곱 번째는 자녀가 한국말을 막 배우기 시작할 때 집에서 한국말로 일기를 쓰게 하는 것이다. 예원이는 1학년때부터 집에서 한국 말로 일기를 쓰게 했다. 한 줄이라도 쓸 때까지 인내하며 부모로써 기다렸고 다음엔 두 줄을 쓸 수 있도록 격려했다. 말하는 것 뿐만 아니라 쓰기까지 마스터 하도록 부모가 끊임없는 관심과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여덟 번째는 필요하면 영어 담당 선생님과 면담하는 것이었다.
예원이가 유치원 들어갈 나이가 되었을 때 너무나 기적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최초로 필리핀에 한국 선교사 자녀학교를 세우셨다. 이 학교는 지리적으로 뉴 마닐라에 있어 거리적으로는 우리 집에서 너무나 멀었지만 난 내가 기도한 것의 응답이었다고 믿었으므로 필사적으로 이 학교에 예원이를 보냈다.

이 학교는 오전에는 한국 말로, 오후에는 영어로 수업을 했다. 그런데 이 때는 예원이가 아직 한국 말을 쓰지도 못했으므로 난 영어 담당 선생님을 찾아가 예원이가 영어 수업은 들어도 예원이의 영어 숙제는 집에서 도와 줄 수가 없음을 설명했다. 주님이 주시는 지혜가 분명하고 부모가 확실한 신념에 찬 믿음으로 이야기하면 통한다는 것을 난 믿는다. 아마 이런 내 생각은 선교사 사모 중 전무후무한 제안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잘 이해해 주었고 예원이는 영어 숙제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되었다.

예원이가 같은 학교 초등학교에 올라갔을 때도 난 학년이 바뀔 때마다 영어 과목 선생님을 학기 초에 찾아 가, 예원이는 먼저 한국말을 배워야 함으로 영어 수업은 듣되, 영어 숙제는 집에서 도와줄 수가 없음에 대한 양해를 친절히 구했다. 지금 예원이에게 한국 말을 가르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며 한국인으로서 한국 말은 부모가 마땅히 가르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아무리 무뚝뚝해 보이는 선생님도 내 말에 동의를 해 주었고 나의 의견을 순수히 받아들이는 것을 보았다. 주님께 기도해서 얻은 지혜로운 말에는 권세가 있게 마련이다. 그냥 보통 말이 아니라 그 언어에 영권(spiritual power) 이 부과 되어 믿지 않는 자라도 어떤 힘을 느끼며 순수히 수긍하게 되는 능력이 나타난다. 이성적으로는 아니라고 말을 하고싶어도 이해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동의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예원이의 모국어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과감하게 믿음으로 대처한 것은 참으로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앞 날이 어떻게 될 지는 아무 것도 몰랐지만 부모인 내가 확실한 주관을 가지고 예원이에게 먼저 모국어 교육을 시킨 것은 분명 주님이 주신 지혜요 믿음이었다.

예원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남편이 예성 교단 선교국장으로 선임되어 한국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예원이는 한국 말 때문에 문제를 겪지도 않았고 왕따를 당하지도 않았다(그 당시 한국은 왕따 문제가 학교마다 심각하게 불거져 많은 염려를 했었다). 어떤 선교사 자녀는 안식년 겸 한국에 들어왔는데 학교에서 영어로 말하는 그 선교사 자녀를 따돌리고 왕따를 시켜 그 아이 부모가 맘 고생을 많이 한 것을 잘 알고 있다.

예원이도 필리핀에서는 한국 말을 읽고 쓰고 하는 것에 부담을 많이 느끼고 힘들어 하더니
한국에 들어와서야 모든 것이 부모님 덕이라며 한국말에 대한 중요성을 철저히 느끼는 듯 했다.

내가 이런 철칙을 가지고 예원이의 모국어 교육을 시킨 것은 내 안에 어떤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한국 말은 배울 때가 있지만 영어는 언제든지 배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 영어를 잘 하게되면 한국 말을 쓰지 않게 되고, 쓰기도 싫어지는 습성이 있다는 것을 그 때 이미 난 직감했었다.

외국에서 선교사 부모들이나 TCKs(Third Culture Kids) 부모들의 가장 큰 시행착오적인 생각은, 자신들이 영어에 한이 맺혀 있어 자녀라도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영어만 빨리 잘하기를 소망하며 한국 말은 무시한 채 집에서도 영어를 쓰고, 영어 과외 투터(tutor)를 붙이고, 그것도 불안해 영어를 사용하는 교회에 나가게 하고, 외국 친구를 사귀도록 권면하며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녀가 어느 정도 한국 말에 대한 자신감과 수준 높은 한국어 구사능력이 있으면 괜찮다. 그러나 그렇지않은 경우에는 한국 말부터 정확하게 가르침이 옳다고 본다.

어느 선교사 사모의 고백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자녀들이 초등학교 때 필리핀에 왔는데 그 분은 영어에 한이 맺혀 자녀들을 국제 학교에 빨리 넣으려는 욕심으로 아이들에게 영어만 죽도록 공부시켰고 집에서도 영어로만 대화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식탁에서 자녀들이 대화를 하는데 이 사모도 알아 들을 수 없는 영어로 자기들끼리만 대화를 하더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저 아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었고 자신만 이상하게 그 대화에서 열외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면서 허탈해졌다고 한다.

이 사모는 그제서야 자신의 교육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집에서는 한국 말로 대화하자고 제안했지만 그 때는 이미 아이들이 영어가 너무 익숙해져 전혀 협조하지도 않았고,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도 없어서 아무도 이 제안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했다. 너무 후회스럽기만 하다고 했다.

선교사 부모가 아무리 영어를 잘 한다해도 나중에 자녀들이 하는 영어를 거의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자녀들이 성장하여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상담을 해 주려 해도 언어적 한계에 부딪혀, 같은 집에서 살고 같은 한국인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처럼 느껴져 피상적인 이야기만 하고 끝나게 된다.

모국어 교육은 시기가 중요하다.
심리학 용어로 Critical Period(결정적 시기)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자녀들에게 뭔가를 가르칠 때는 그 적절한 시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 시기를 놓치면 절대로 가르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모국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다른 나라 언어가 들어가면 평생 모국어는 가르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내 나라 말은 자녀가 어릴 때 확실히 가르쳐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언어는 그 안에 힘이 있어 자녀들의 생각과 행동과 사고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어는 자녀의 정체성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이런 후회를 하지 않도록 예비 선교사들에게 진정으로 당부하고 싶다.
절대 조급해 하지 말고 인내심을 가지고 먼저 한국말을 잘 하게 한 다음, 제 2 외국어를 시켜야 한다. 그러나 한국말을 가르칠 때 가능하면 영어도 조금씩은 배우게 하는 것도 좋다. 너무 극단적으로 한국 말만 고집해도 안 된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자녀의 능력을 고려하면서 7(한국 말):3(영어)정도로 비율을 해서 가르치면 될 것 같다. 내가 개인적으로 믿고 알기로는, 한국말을 잘 하는 아이들은 때가 되면 다른 언어도 잘 하게 되어있다.

지금 우리 예원이는 한국 말도 잘 하고 영어도 잘 한다.
우리 모녀는 이틀에 한번씩 전화로 통화하며 수다를 떤다.
난 우리 딸과 대화하는 이 시간이 너무 좋고 행복하다.
서로 울고 웃으며 마음껏 대화하다 보면 가족 간의 유대관계도 돈독해지고 사랑이 더 강해짐을 느낀다. 우리 딸도 유창한 한국 말로 나랑 대화하는 이 시간을 아주 좋아한다.
난 이런 시간을 통해 우리 딸의 모든 전반적인 생활을 점검할 수 있다. 특히 영적인 부분들을 많이 조언해 주고 상담자 역할도 톡톡히 한다. 예원이가 내 말을 잘 알아듣고 이해하고 더욱 커 가는 것을 난 느낀다.

모국어 교육은 선교사인 부모들이 확실한 기준을 갖고 철저하게 자녀들을 교육시켜야 한다.
이것은 자녀들이 어떻게 해야 할 부분이 아니다.
반드시 이 부분은 선교사 부모가 책임지고 해야 할 영역이다.

자녀가 어릴 적에 모국어를 확실히 가르치는 것은
선교사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신앙 다음의 아름다운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출처 :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
글쓴이 : 열방의 빛 성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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