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자녀들이 안식년 동안 겪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미리 생각해 봄으로써 변화과정을 순조롭게 하고 안식년 기간 동안 만나게 될 사람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할있는 방안을 생각해 보려 한다. 해외에서 선교사 자녀들을 가르치는 교사들과 선교사 부모들이 안식년에 대해 생각해 보고 안식년 기간이 가족 전체에게 바람직한 경험이 되게 하려면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함께 연구해 본 적이 있다. 그때 나눈 이야기의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집(home)”에 관하여
10여 년을 사역한 선교사가 오래 전에 첫 안식년을 앞두고서 흥분되었던 심정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아이와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세살 난 아들은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꼬마가 버럭 화를 내더니 “아빠, 지금 우리가 있는 여기가 바로 집이잖아요!”라고 내뱉았다. 선교사들은 “집”에 대해 생각할 때 으레 자녀들도 똑같은 뜻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교사 자녀들은 안식년이란 낯선 나라로 가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생활 방식을 배워야 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이별”에 관하여
선교사 자녀들이 흔히 겪는 어려움 중에 선교사의 삶이라는 특성상 불가피하게 경험하는 해결되지 않는 아픔이 있는데, 이 마음의 상처는 이별함으로 생긴 것이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집”으로 가는 것이 기뻐해야 할 일이고 떠나는 것을 섭섭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함으로써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 수 있다.
신나고 기대할 일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슬퍼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아이들이 느끼는 진정한 슬픔을 스스로 부인하도록 만든다. 급작스런 죽음으로 친구를 잃게 될 경우 이 일로 슬퍼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마찬가지로 선교사 자녀들이 이별을 경험하는 것은 단숨에 모든 친구를 잃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비행기를 타고 빠른 속도로 여행을 하고 나서, 선교사 자녀들이 이들의 행복을 바라는 친지들에게 둘러싸일 때쯤이면 친구들을 잃은 슬픔이 가실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아이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도록 격려해 주고, 사역지를 떠나기 전에 거기서 알던 사람들뿐 아니라 애완동물이나 그들에게 중요했던 장소에 대해서도 적절하게 작별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갖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이것은 아이들이 슬퍼할 때 이들이 느끼는 감정이 정당하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이들은 이별의 고통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고국으로 돌아온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변화"에 관하여
최근에는 안식년을 짧게 갖는 것이 유행하고 있는데 이것은 가족이 적응하는 것을 힘들게 만들 수 있다. 안식년 기간에는 복잡한 변화의 과정을 거친다. 초문화적 재입국에 대해 연구한 사람들은 성공적인 재입국 과정을 갖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별개의 단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선 각각 나름대로 고국의 문화에 적응하면서 친숙한 관계들을 발전시키고 사람들을 알아 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질러가려 할 때 아이들이 “내 집같은” 느낌을 갖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확보할 수가 없다. 그리고 안식년 기간 동안의 대부분을 한 장소에서 머무를 때 친구를 사귀거나 부모의 고향 문화에서 생활하는 것에 대해 실제적인 감을 갖기가 훨씬 용이하다.
“선교사 자녀로서의 정체성”에 관하여
선교사 자녀들은 보통 그 또래 아이들에 비해 여러 가지 경험을 했기 때문에 보다 광범위한 지식과 안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들은 선교사 자녀가 아닌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보다 좀더 주목을 받는다는 사실을 즐기기도 하지만 자신이 진열대에 올라 있다는 그런 느낌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정상적인” 아이로 대우받고 사랑받으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이들의 필요에 민감해야 한다.
부모들은 “고국”에서 참된 기독교의 본을 따르는 일을 할 뿐 아니라 이와 동시에 자기 아이들을 사랑하고 수용해 줄 수 있는 성숙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아이들이 안식년 기간 동안 집에 있는 것 같이 느낄 것이고 또 나중에 혼자 고국에 돌아오게 되더라도 스스로 소중한 관계들을 형성해갈 수 있을 것이다.
"관계"에 관하여
종종 선교사들은 자기 아이들이 친척들에 대해 친밀한 감정을 갖지 못하는 것을 보고 통탄해한다. 그러나 먼 곳에 있으면서 관계를 쌓기는 어렵다. 단지 엄마, 아빠가 할머니나 할아버지, 삼촌, 이모, 고모들과 가깝다고 해서 아이들도 이들과 친밀해지지는 않는다. 선교사 자녀들은 고국에 돌아와도 사촌들을 거의 모르기 때문에 특별히 그들과 친하려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기회가 필요하고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동역자 관계를 개발하는 데 있어 기도해야 할 부분은 선교사 자녀들과 유대를 맺게될 “의미 있는 타자(significant others)”에 대한 것이다. 선교사 자녀들은 이들을 통하여 자기 또래 아이들을 둔 어른들을 이해함으로써 사역지와 고국 사이의 틈을 메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세상"에 관하여
선교사 자녀들은 차양이 둘러쳐진 환경에서 자라는 경우가 자주 있다. 부모들은 당연히 자기 자녀가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보호받기를 원하지만 아이들이 세상과 접촉하게 되리라는 것은 불가피한 사실이다. 이런 변화는 사전 예측과 부모의 지도 없이는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교사 자녀들에게 안식년 기간은 “기독교적이고 선교사적인 세계”와 “비기독교적인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할 것이다.
김동화/ GMT 본부 선교사
출처/ 중국어문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