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백성인 평신도 2001. 6. 18
로마(Graeco-Roman)사회에서는 행정적인 조직에 있어서 두 가지로 분류되어 있었는데 하나는 라오스(보통사람/the people)이고 다른 하나는 크레로스(행정장관/the magistrate)이었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라오스를 하나님의 전체백성이라는 독특한 계약범주로 바꾸어 놓는데, 이방인과 유태인에 의해 형성된 '새로운 사람'(행 15:14),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에 대한 한 몸 안에서 화해된 것으로(엡4:16, 골 3:15) 표현한다. 세속적이고 종교적인 범주들에 의해 문화적응에 대해 많은 논쟁들이 있긴 했지만, '평신도'는 세상의 소금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성분(요소)으로서 기능을 하도록 계속 유혹되어왔다. 그것의 순례적인 본질은 물질주의와 성공일변도 세속적 타락에 의해 위협받았는데, 라오스는 아직도 그분이 모은 자녀로서 하나님의 소유안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다. 시내산에서 구속적인 모임안에 사람들을 구성한 것인데, 그것의 모습은 하나님의 큰 축제의 모임에서 이방인의 모임이고(이사야 2:2-4; 56:6-8; 시87), 미래는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에 의해 실제화되고(히 12:18-24), 교회는 그리스도의 오심에서 마지막 모일 때까지(살후 2:1) 모임속에 모이게 될 것이다(고전 11:8; 14:26-28).
그러나 또한 모이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성서적인 묘사에 대한 필수적인 것은 이제 돌의 성전(temples of stone)에 의해서 방해받지 않는 모이는 자들, 여행하는 자들, 흩어진 공동체로서 라오스의 이미지인 것이다(행 7:44-47). 그들은 그 자신이 "거룩한 제사장직을 위한 영적인 집으로서 세워질 산돌"인 것이다(벧전 2:4-5). 시내산에서 "사람들의 가운데에서 사람으로서 제사장직 역할을 이루라"고 부름 받았으며 열 왕국의 세계 안에서 하나님을 나타내라고 부름 받았을때(출 19:6), 그 부름은 그리스도의 구속적인 귄위 안에서 갱신되었다(마28:18-20).
"넓게 퍼져있던 12지파"처럼(야1:1; 벧전 1:1) 새로이 넓게 퍼져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온 족속에게 선포하도록" 헌신된 사람들이다(눅 24:47).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은 그들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그들을 흩으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의 그의 새로운 이스라엘을 모으신다(행 1:8). 앞으로 올 그리스도의 왕국에 의해 시작되는 마지막날에(고전 10:11; 히1:2),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구세주의 구속사적인 죽음에 의해 이미 시작된 새로운 출애굽을 시작하는 것이다(눅 9:31).
하나님의 백성의 이런 출애굽 사역은 성직자계급을 향한 신학적 또는 문화적인 것이 아니다. 오순절때에 성령은 주님의 집의 모든 사람들에게 예언적인 목회를 위해 세례주었다(행2:4). 하나님의 새로운 신정제국에서, 증인을 위한 성령의 은사는 단순히 사사(삿 3:10; 6:34; 15:14)나, 왕(삼상16:13)이나, 선지자들(삼상 10:6; 벧후1:20-21)에게 해당되었다. 디아스포라(Diaspora)의 새로운 시대에는, 하나님의 모든 아들과 딸들은 선지자가 될 것이다(요엘 2:28, 행2:16-21). 즉 성령의 부어주심에 대한 이사야의 약속과 주님의 이름의 고백은(사 44:3-5) 선포의 선지자적인 직책으로서 실제가 되고 하나님의 전체 백성의 중심적인 직책이 된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혼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해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천막제조자, 루디아와 같은 상인, 브리스길라/아굴라와 같은 장사하는 사람-이런 사람들은 "세상을 뒤집을 정도로 위협을 주는 사람들이다(행17:6). 평신도의 권리는 평신도의 의무(책임)의 측면에서 정의되었지 전문적인 훈련 또는 월급받는 고용의 측면에서 된 것이 아니었다.
교회안에서 직책이나 더 나아가서 월급 받는 직책들이 있다는 것을 결코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성령의 은사의 향기는 그런 은사들이 행사되는 곳에서 정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직책들 안에서, 그것이 과부의 것이든지(딤전 5:3), 또는 지도라는 장로이든지 "명예(존경)"는 수여하는 것 이상이다.
평신도사역자란 누구인가? 서방문화에서는 제 3세계와 함께 두 가지로 분류했는데 하나는 리더십 개념이었고; 또 하나는 일단의 그룹인데 전체교회의 사역, 믿는자들의 일반적인 직책의 실행으로부터 사역을 줄이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목회(사역)"는 교회관리들, 행정가들, 고관들, 귄위자들을 위한 제 3세계 동의어가 되 버렸다. 이 패턴은 앵글로색션(Anglo-Saxon) 세계에서는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규율이나 힘이나, 지식이나 고관직이 아니라 제자화를 근거로 한 섬김(service)이다(Hans Kung, The Church, 1967). 성령에 의해 교회에 그리스도의 은사를 주신 카리스마(Charisma)는 봉사라는 개념과 구별지을 수 없다.
로마(Graeco-Roman)사회에서는 행정적인 조직에 있어서 두 가지로 분류되어 있었는데 하나는 라오스(보통사람/the people)이고 다른 하나는 크레로스(행정장관/the magistrate)이었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라오스를 하나님의 전체백성이라는 독특한 계약범주로 바꾸어 놓는데, 이방인과 유태인에 의해 형성된 '새로운 사람'(행 15:14),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에 대한 한 몸 안에서 화해된 것으로(엡4:16, 골 3:15) 표현한다. 세속적이고 종교적인 범주들에 의해 문화적응에 대해 많은 논쟁들이 있긴 했지만, '평신도'는 세상의 소금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성분(요소)으로서 기능을 하도록 계속 유혹되어왔다. 그것의 순례적인 본질은 물질주의와 성공일변도 세속적 타락에 의해 위협받았는데, 라오스는 아직도 그분이 모은 자녀로서 하나님의 소유안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다. 시내산에서 구속적인 모임안에 사람들을 구성한 것인데, 그것의 모습은 하나님의 큰 축제의 모임에서 이방인의 모임이고(이사야 2:2-4; 56:6-8; 시87), 미래는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에 의해 실제화되고(히 12:18-24), 교회는 그리스도의 오심에서 마지막 모일 때까지(살후 2:1) 모임속에 모이게 될 것이다(고전 11:8; 14:26-28).
그러나 또한 모이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성서적인 묘사에 대한 필수적인 것은 이제 돌의 성전(temples of stone)에 의해서 방해받지 않는 모이는 자들, 여행하는 자들, 흩어진 공동체로서 라오스의 이미지인 것이다(행 7:44-47). 그들은 그 자신이 "거룩한 제사장직을 위한 영적인 집으로서 세워질 산돌"인 것이다(벧전 2:4-5). 시내산에서 "사람들의 가운데에서 사람으로서 제사장직 역할을 이루라"고 부름 받았으며 열 왕국의 세계 안에서 하나님을 나타내라고 부름 받았을때(출 19:6), 그 부름은 그리스도의 구속적인 귄위 안에서 갱신되었다(마28:18-20).
"넓게 퍼져있던 12지파"처럼(야1:1; 벧전 1:1) 새로이 넓게 퍼져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온 족속에게 선포하도록" 헌신된 사람들이다(눅 24:47).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은 그들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그들을 흩으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의 그의 새로운 이스라엘을 모으신다(행 1:8). 앞으로 올 그리스도의 왕국에 의해 시작되는 마지막날에(고전 10:11; 히1:2),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구세주의 구속사적인 죽음에 의해 이미 시작된 새로운 출애굽을 시작하는 것이다(눅 9:31).
하나님의 백성의 이런 출애굽 사역은 성직자계급을 향한 신학적 또는 문화적인 것이 아니다. 오순절때에 성령은 주님의 집의 모든 사람들에게 예언적인 목회를 위해 세례주었다(행2:4). 하나님의 새로운 신정제국에서, 증인을 위한 성령의 은사는 단순히 사사(삿 3:10; 6:34; 15:14)나, 왕(삼상16:13)이나, 선지자들(삼상 10:6; 벧후1:20-21)에게 해당되었다. 디아스포라(Diaspora)의 새로운 시대에는, 하나님의 모든 아들과 딸들은 선지자가 될 것이다(요엘 2:28, 행2:16-21). 즉 성령의 부어주심에 대한 이사야의 약속과 주님의 이름의 고백은(사 44:3-5) 선포의 선지자적인 직책으로서 실제가 되고 하나님의 전체 백성의 중심적인 직책이 된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혼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해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천막제조자, 루디아와 같은 상인, 브리스길라/아굴라와 같은 장사하는 사람-이런 사람들은 "세상을 뒤집을 정도로 위협을 주는 사람들이다(행17:6). 평신도의 권리는 평신도의 의무(책임)의 측면에서 정의되었지 전문적인 훈련 또는 월급받는 고용의 측면에서 된 것이 아니었다.
교회안에서 직책이나 더 나아가서 월급 받는 직책들이 있다는 것을 결코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성령의 은사의 향기는 그런 은사들이 행사되는 곳에서 정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직책들 안에서, 그것이 과부의 것이든지(딤전 5:3), 또는 지도라는 장로이든지 "명예(존경)"는 수여하는 것 이상이다.
평신도사역자란 누구인가? 서방문화에서는 제 3세계와 함께 두 가지로 분류했는데 하나는 리더십 개념이었고; 또 하나는 일단의 그룹인데 전체교회의 사역, 믿는자들의 일반적인 직책의 실행으로부터 사역을 줄이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목회(사역)"는 교회관리들, 행정가들, 고관들, 귄위자들을 위한 제 3세계 동의어가 되 버렸다. 이 패턴은 앵글로색션(Anglo-Saxon) 세계에서는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규율이나 힘이나, 지식이나 고관직이 아니라 제자화를 근거로 한 섬김(service)이다(Hans Kung, The Church, 1967). 성령에 의해 교회에 그리스도의 은사를 주신 카리스마(Charisma)는 봉사라는 개념과 구별지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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