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의 잠재력
평신도(laos)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최고의 존엄성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다(벧전 2:9-10). 평민에 해당하는 즉 성직자와 구별되어 '일반 백성에 속하다'는 의미의 일반적인 헬라어 라이코스(laikos)는 신약 성경에서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으며, 주후 95년에 로마의 클레멘트가 사용하기 전 까지는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지도 않았다.
교회를 가리키는 또 다른 단어인 '에클레시아'(ekklesia)는 모인 백성을의미한다. 회중이라는 단어에도 '에클레시아'의 의미 중 일부가 담겨 있다. 이 말은 또한 회중 공동체 안에서 사역의 보편성을 보증한다. '모인' 혹은 '함께 부름받은' 백성을 형성하는 '부르심'은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엡 4:1). 신약 성경에서 목양(pastoral care)은 '성도 상호간의' 책임이고, 회중 공동체를 향한 부르심의 일부분이다.
중요한 영적 부흥은 모두 신약 교회의 비전이 불을 붙였다. 이 비전의 중심은,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살게 하려고 성령이 일으킨하나님의 모든 백성이다. 이것은 침례교 운동, 영국 감리교 운동 그리고 플리무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의 경우에도 사실이다. 개신교 종교개혁 이전에도 다양한 부흥 운동은 이 평신도 원리를 되살렸다. 중세동안, 세속화된 교회와 복음의 순전함에 대한 갈망은, 평신도들이 [평신도 원리와 관련하여 무엇인가를 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카타리 파, 왈도 파, 롤라드 파들은 본질적인 면에서 볼 때, 참된 기독교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평신도 운동이었다. 유럽 대륙과 영국 모두에서 종교개혁의 추진력을 제공해 준 사람들을 살펴 볼 때 종교개혁은 일반적으로 평신도 운동이었다.
참으로 교회사에서 볼 수 있는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은 평신도들로 인한 경우가 많았다. 위대한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기독교 역사에서 자력으로 신학자가 되었던 평신도 중 가장 돋보이는 인물이다. 그이 유명한 「기독교 강요」는 성직자나 신학자의 작품이 아니라 평신도의 작품이었다. 17세기의 번연(Bunyan), 밀턴(Milton), 리이프니츠(Leibniz), 그리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같은 평신도 신학자들도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었다. 모라비안 형제단 (Moravian Brethern)에게 영향을 받은 평신도 니콜리우스 진젠도르프(Nicolaus von Zinzendorf)는 세계 선교를 위해 평신도 남녀로 구성된 작은 모임을 만들었다. 토머스 모어(Thomas More)경과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는 자신들의 기독교적 소명을 정치적인 영역에서 표현했던 두 명의 평신도였다.
20세기에 이르러 평신도 존 모트(John R. Mott)는 학생 선교의 불길을 일으키는 데 영향을 주었다. 또 다른 영국 출신의 평신도 하워드 기니스(Howard Guiness)는 자신의 운동 장비를 팔아 캐나다행 배삯을 지불하고, 기독학생회운등올 캐나다에 전해 주었다.
우리는 단지 전통적인 목회자의 역할인 목양(pastoral care)이라는 한 가지 측면에서 평신도를 활용하는(liberating) 방법을 살펴보고 있다. 작은 교회라 하더라도 그 교회에 필요한 목회 사역의 목록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심방, 목회 상담, 기도 상담, 결혼 사역, 영적 교제와 지도, 환자에 대한 치유 사역, 중재와 화해, 훈련 그리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보살핌.
오늘날 평신도의 목양 문제에 관해 다루는 책들은 대부분 모세의 원리에 근거해서 논의를 전개한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모세가 모든 사람의 필요을 충족시키느라 탈진해 있는 것을 보고는 단도 직입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대의 하는 것이 선하지 못 하도다" (출 18:17). 뒤이어 효과적인 교회 행정에 대한 성경적인 사례 연구가 나온다. 이드로는 천명, 백명, 오십명, 열명의 무리를 관할하는 '재덕이 겸비된 자'에게 모세의 일을 대부분 맡기게 된다. 바로 여기서 목회자에게 한 가지 해답이 주어진다. 그것은 바로 맡기는 것이다.
모세의 원리는 분명 커다란 진일보이다. 오늘날 과중한 업무로 지쳐 있는 목회자들에게 이것은 양적 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새 언약 아래 있는 목회 사역의 형태로는 모세의 원리도 적합한 것이 아니다. 의지있고 훈련받은 자원자들에게 신속하게 위임함으로써 자신의 목회 양육의 짐을 가볍게 하는 것이 목회자의 임무는 아니다. 오히려 에베소
서 4:11-12에 의하면 목회자-교사는, 성도들을 목회자의 사역이 아니라 성도 자신들의 사역을 하도록 구비시키기 위해 부름 받는다(to equip the saints).
전문화는 목회자와 평신도 모두의 기대를 바꾸었다. 전문가는 자신이 철저하게 훈련받은 부분에서 독특한 기능을 발휘한다. 인생은 너무 짧은 반면, 정보는 넘치기 때문에 한 사람이 한 영역 이상에서 앞서가기가 어렵다. 그와 같은 전문 기술 중의 하나가 바로 목양이
다.
아마추어(amateur)라는 단어는 본래 의미로, '어떤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사람에게는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은 깊은 욕구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사람의 직업상의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친구가 필요하지만, 정신과 의사나 직업 상담가를 '전문가 친구'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사랑이란 결코 전문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평신도(laos)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최고의 존엄성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다(벧전 2:9-10). 평민에 해당하는 즉 성직자와 구별되어 '일반 백성에 속하다'는 의미의 일반적인 헬라어 라이코스(laikos)는 신약 성경에서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으며, 주후 95년에 로마의 클레멘트가 사용하기 전 까지는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지도 않았다.
교회를 가리키는 또 다른 단어인 '에클레시아'(ekklesia)는 모인 백성을의미한다. 회중이라는 단어에도 '에클레시아'의 의미 중 일부가 담겨 있다. 이 말은 또한 회중 공동체 안에서 사역의 보편성을 보증한다. '모인' 혹은 '함께 부름받은' 백성을 형성하는 '부르심'은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엡 4:1). 신약 성경에서 목양(pastoral care)은 '성도 상호간의' 책임이고, 회중 공동체를 향한 부르심의 일부분이다.
중요한 영적 부흥은 모두 신약 교회의 비전이 불을 붙였다. 이 비전의 중심은,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살게 하려고 성령이 일으킨하나님의 모든 백성이다. 이것은 침례교 운동, 영국 감리교 운동 그리고 플리무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의 경우에도 사실이다. 개신교 종교개혁 이전에도 다양한 부흥 운동은 이 평신도 원리를 되살렸다. 중세동안, 세속화된 교회와 복음의 순전함에 대한 갈망은, 평신도들이 [평신도 원리와 관련하여 무엇인가를 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카타리 파, 왈도 파, 롤라드 파들은 본질적인 면에서 볼 때, 참된 기독교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평신도 운동이었다. 유럽 대륙과 영국 모두에서 종교개혁의 추진력을 제공해 준 사람들을 살펴 볼 때 종교개혁은 일반적으로 평신도 운동이었다.
참으로 교회사에서 볼 수 있는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은 평신도들로 인한 경우가 많았다. 위대한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기독교 역사에서 자력으로 신학자가 되었던 평신도 중 가장 돋보이는 인물이다. 그이 유명한 「기독교 강요」는 성직자나 신학자의 작품이 아니라 평신도의 작품이었다. 17세기의 번연(Bunyan), 밀턴(Milton), 리이프니츠(Leibniz), 그리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같은 평신도 신학자들도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었다. 모라비안 형제단 (Moravian Brethern)에게 영향을 받은 평신도 니콜리우스 진젠도르프(Nicolaus von Zinzendorf)는 세계 선교를 위해 평신도 남녀로 구성된 작은 모임을 만들었다. 토머스 모어(Thomas More)경과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는 자신들의 기독교적 소명을 정치적인 영역에서 표현했던 두 명의 평신도였다.
20세기에 이르러 평신도 존 모트(John R. Mott)는 학생 선교의 불길을 일으키는 데 영향을 주었다. 또 다른 영국 출신의 평신도 하워드 기니스(Howard Guiness)는 자신의 운동 장비를 팔아 캐나다행 배삯을 지불하고, 기독학생회운등올 캐나다에 전해 주었다.
우리는 단지 전통적인 목회자의 역할인 목양(pastoral care)이라는 한 가지 측면에서 평신도를 활용하는(liberating) 방법을 살펴보고 있다. 작은 교회라 하더라도 그 교회에 필요한 목회 사역의 목록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심방, 목회 상담, 기도 상담, 결혼 사역, 영적 교제와 지도, 환자에 대한 치유 사역, 중재와 화해, 훈련 그리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보살핌.
오늘날 평신도의 목양 문제에 관해 다루는 책들은 대부분 모세의 원리에 근거해서 논의를 전개한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모세가 모든 사람의 필요을 충족시키느라 탈진해 있는 것을 보고는 단도 직입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대의 하는 것이 선하지 못 하도다" (출 18:17). 뒤이어 효과적인 교회 행정에 대한 성경적인 사례 연구가 나온다. 이드로는 천명, 백명, 오십명, 열명의 무리를 관할하는 '재덕이 겸비된 자'에게 모세의 일을 대부분 맡기게 된다. 바로 여기서 목회자에게 한 가지 해답이 주어진다. 그것은 바로 맡기는 것이다.
모세의 원리는 분명 커다란 진일보이다. 오늘날 과중한 업무로 지쳐 있는 목회자들에게 이것은 양적 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새 언약 아래 있는 목회 사역의 형태로는 모세의 원리도 적합한 것이 아니다. 의지있고 훈련받은 자원자들에게 신속하게 위임함으로써 자신의 목회 양육의 짐을 가볍게 하는 것이 목회자의 임무는 아니다. 오히려 에베소
서 4:11-12에 의하면 목회자-교사는, 성도들을 목회자의 사역이 아니라 성도 자신들의 사역을 하도록 구비시키기 위해 부름 받는다(to equip the saints).
전문화는 목회자와 평신도 모두의 기대를 바꾸었다. 전문가는 자신이 철저하게 훈련받은 부분에서 독특한 기능을 발휘한다. 인생은 너무 짧은 반면, 정보는 넘치기 때문에 한 사람이 한 영역 이상에서 앞서가기가 어렵다. 그와 같은 전문 기술 중의 하나가 바로 목양이
다.
아마추어(amateur)라는 단어는 본래 의미로, '어떤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사람에게는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은 깊은 욕구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사람의 직업상의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친구가 필요하지만, 정신과 의사나 직업 상담가를 '전문가 친구'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사랑이란 결코 전문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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