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목회혁명
1950년대에 엘톤 트루블라드(Elton Trueblood)는 이런 말을 하였다: "만약 교회가 모든 평신도는-남여를 막론하고-정말로 그리스도의 사역자라는 인식을 심각하게 취한다면,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에 뭔가 혁명과 같은 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점점더 많은 교회들이 이런 혁명을 경험하고 있다. 예를들어 경주동부교회(담임 정원옥목사)의 한 장로님은 평신도목회(LPM) 훈련이 끝나는 시간에, '이건 정말로 혁명입니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들에게 있어서 대부분의 성도들은 아직도 자신들을 사역자로서 보고 있지 않다. 그 결과로 목회자와 중직 몇 사람은 너무 많은 짐을 지고(20/80원리) 있는 반면, 많은 성도들은 변두리로 밀려나 있는 느낌을 갖는다.
무엇이 트루블라드의 혁명을많은 교회들로부터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가? 수세기동안 교회는 크리스챤들을 두가지 그룹으로 나누어 왔다-목회자(성직자)와 그 목회를 받는 사람들(평신도). 이런 구분은 네가지 목회신화(myth)에 의해 생겨진 것인데, 대부분의 크리스챤들이 어떻게 목회에 접근하느냐를 구성지어준 목회에 대한 비성서적인(unbiblical) 신념들이다. 혁명이 우리들의 교회에 오기전에, 이런 네가지 목회에 대한 그릇된 신화(ministry myths)가 부서지고 또 수정되어야 한다.
첫 번째 신화는, 소위 '목회'라는 것은 "목사들"에게만 해당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불러 교회 지도자로 세우셨으며, 그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지도자들의 부름을 설명함에 있어서 성서는 단지 그들만을 '사역자들'로 불러내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모든 믿는자들의 목회를 강조한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to equip the saints)하며 봉사의 일(the work of ministry)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두 번째 신화는, 목회란 단지 영적인 필요에만 부응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신학교때에 종종 4영리(Four Spiritual Principle) 소책자를 가지고 전도한적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기도하기도한다. 그리고 몇주후에 교회에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이런 것이 너무 무책임한 전도(cold-turkey witnessing)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한가지 예를들어 그것이 삶을 변화시키는 쪽으로 인도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게된다. 그러나 교회를 나감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목사의 설교를 통해 양육되어지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무서운 재판관으로 보다는 사랑의 아버지로서 보게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늘나라에 데려가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것이 아니라 그분은 또한 우리의 즐거움과 고통, 우리의 희망과 두려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고 계신다.
목회라는 것이 영적필요에만 부응하는 것이라고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이 믿을때에 하나님께서 신체적 또는 사회적필요에 부응하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은 목회를 하지않는다고 자신들이 느낄수도 있다. 이런 신화가 깨어질때에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안에서 그들의 위치를 발견할수 있게된다.
세 번째 신화는 대부분의 목회는 교회가 모였을때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교회는 마치 세일즈팀과 같다. 그팀이 모일때에 멤버들은 성취한것에 대해 축하하기도 한다. 세일즈 메니저는 팀에게 용기를 주고, 동기부여해주고, 실현 가능한 비전을 팀에게 주고, 그리고 훈련을 시킨다. 그룹멤버들은 서로 격려한다. 모임이 끝나고, 만약 멤버들이 팔려고(sale) 별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세일즈팀에 대해 어떻게 할것인가? 그들이 모임의 의도를 놓쳤다고 당신은 의아해하지 않겠는가? 교회안에서 우리는 목회팀이지 세일즈팀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이유들을 가지고 모인다-축하하고, 우리의 비전을 확장하고, 우리의 사명을 성취하려고 용기를 주고, 격려를 주고받으며 그리고 목회를 위해 구비되는 것(to become equipped)이다. 만약 그다음에 우리의 모임 끝에, 우리는 세상속으로 나가서 사역을 잘하지않는다면 어떡할것인가? 모인 진짜 의도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흩어지기위해(the church scattered) 모이는 것(the church gathered)이다. 만약 우리가 흩어진 교회로서 나머지 일주일동안 사역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이는 주요 이유들중의 하나를 놓친 것이다.
1950년대에 엘톤 트루블라드(Elton Trueblood)는 이런 말을 하였다: "만약 교회가 모든 평신도는-남여를 막론하고-정말로 그리스도의 사역자라는 인식을 심각하게 취한다면,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에 뭔가 혁명과 같은 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점점더 많은 교회들이 이런 혁명을 경험하고 있다. 예를들어 경주동부교회(담임 정원옥목사)의 한 장로님은 평신도목회(LPM) 훈련이 끝나는 시간에, '이건 정말로 혁명입니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들에게 있어서 대부분의 성도들은 아직도 자신들을 사역자로서 보고 있지 않다. 그 결과로 목회자와 중직 몇 사람은 너무 많은 짐을 지고(20/80원리) 있는 반면, 많은 성도들은 변두리로 밀려나 있는 느낌을 갖는다.
무엇이 트루블라드의 혁명을많은 교회들로부터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가? 수세기동안 교회는 크리스챤들을 두가지 그룹으로 나누어 왔다-목회자(성직자)와 그 목회를 받는 사람들(평신도). 이런 구분은 네가지 목회신화(myth)에 의해 생겨진 것인데, 대부분의 크리스챤들이 어떻게 목회에 접근하느냐를 구성지어준 목회에 대한 비성서적인(unbiblical) 신념들이다. 혁명이 우리들의 교회에 오기전에, 이런 네가지 목회에 대한 그릇된 신화(ministry myths)가 부서지고 또 수정되어야 한다.
첫 번째 신화는, 소위 '목회'라는 것은 "목사들"에게만 해당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불러 교회 지도자로 세우셨으며, 그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지도자들의 부름을 설명함에 있어서 성서는 단지 그들만을 '사역자들'로 불러내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모든 믿는자들의 목회를 강조한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to equip the saints)하며 봉사의 일(the work of ministry)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두 번째 신화는, 목회란 단지 영적인 필요에만 부응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신학교때에 종종 4영리(Four Spiritual Principle) 소책자를 가지고 전도한적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기도하기도한다. 그리고 몇주후에 교회에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이런 것이 너무 무책임한 전도(cold-turkey witnessing)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한가지 예를들어 그것이 삶을 변화시키는 쪽으로 인도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게된다. 그러나 교회를 나감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목사의 설교를 통해 양육되어지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무서운 재판관으로 보다는 사랑의 아버지로서 보게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늘나라에 데려가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것이 아니라 그분은 또한 우리의 즐거움과 고통, 우리의 희망과 두려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고 계신다.
목회라는 것이 영적필요에만 부응하는 것이라고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이 믿을때에 하나님께서 신체적 또는 사회적필요에 부응하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은 목회를 하지않는다고 자신들이 느낄수도 있다. 이런 신화가 깨어질때에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안에서 그들의 위치를 발견할수 있게된다.
세 번째 신화는 대부분의 목회는 교회가 모였을때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교회는 마치 세일즈팀과 같다. 그팀이 모일때에 멤버들은 성취한것에 대해 축하하기도 한다. 세일즈 메니저는 팀에게 용기를 주고, 동기부여해주고, 실현 가능한 비전을 팀에게 주고, 그리고 훈련을 시킨다. 그룹멤버들은 서로 격려한다. 모임이 끝나고, 만약 멤버들이 팔려고(sale) 별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세일즈팀에 대해 어떻게 할것인가? 그들이 모임의 의도를 놓쳤다고 당신은 의아해하지 않겠는가? 교회안에서 우리는 목회팀이지 세일즈팀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이유들을 가지고 모인다-축하하고, 우리의 비전을 확장하고, 우리의 사명을 성취하려고 용기를 주고, 격려를 주고받으며 그리고 목회를 위해 구비되는 것(to become equipped)이다. 만약 그다음에 우리의 모임 끝에, 우리는 세상속으로 나가서 사역을 잘하지않는다면 어떡할것인가? 모인 진짜 의도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흩어지기위해(the church scattered) 모이는 것(the church gathered)이다. 만약 우리가 흩어진 교회로서 나머지 일주일동안 사역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이는 주요 이유들중의 하나를 놓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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