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와 목회자의 동역
평신도와 목회자는 교회안에 하나님이 주신 은사에 근거하여 역할에 의한 구분이다. 목회자와 또 목회자가 아닌 성도를 지칭하는 말이다. 둘 다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말은 하나님의 백성, 즉 성도란 말이다.
그런데 흔히들 목회자와 평신도란 말은 교회에서 계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평신도는 낮은 계층이며 목회자는 높은 계층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적인 뜻이 아니다. 이 말의 기원은 로마시대에 행정관을 의미하는 "클레로스(clergy)" 와 교육받지 못한 평민(laos)를 구분하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세속적인 구분은 중세교회의 1000여년 동안 사용되어 오다가 종교개혁자들에 의하여 그 잘못이 지적되었다.
다른 하나는 구약의 제사장과 일반 하나님의 백성의 관계를 오늘날 교회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일반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직접 제사 드리러 나가지 못하였다. 하나님이 지정하신 제사장이 백성들을 대신하여 속죄물의 피를 제단에 가지고 가서 뿌리게 하였다. 예수님이 오시기전 까지 제사장들이 하나님과 백성사이의 중보자 역할을 하였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더 이상 예수님 외에 다른 사람을 중보자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 누구나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직접 나갈 수 있다.
성경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벧전 2:9절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한다. 종교개혁자들은 성직자 중심의 교회구조를 개혁하면서 모든 성도가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권리를 “만인 제사장”이란 말로 설명하였다. 우리에게는 오직 한 분의 대제사장이 계신다. 곧 그리스도이시다.
엡4:11-12절을 보면, 교회안에는 분명히 성도들과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도하는 목회자의 구분이 나와있다. 11-12절: “그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이러한 구분은 교회가 임의로 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님이 하신 것이다. 왜 이러한 구분을 하신 것인가? 그것은 12절에서,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신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목회자와 평신도의 이중적 계층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온전케되며, 봉사의 일을 하며,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하여 목회자를 따로 세우신 것이다. 이것은 교회안의 지체들의 역할분담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동일한 성도인데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바르게 살아가기 위하여 목사-교사(헬, 동일인)를 두신 것이다. 이러한 구분이 잘못 이해되면, 목회자는 잘못된 권위의식을 갖게 되며, 교인들은 자신에게 주신 소명을 상실하고 소극적이거나 의존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이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은 교회안에 다양한 은사를 주셨다. 이것은 주님이 주신 선물이다.
우선 목회자의 역할에 대하여 살펴보자. 목회자는 성도를 온전케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온전케” 한다는 말의 본래의 뜻은 “준비시킨다”는 말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연장 사용법(equipping)을 가르친다는 뜻이다(김상복목사, 2001 평신도목회컨퍼런스에서). 무엇을 준비시키는 것인가? 성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위해 준비시키는 것이다.
그 다음에 성도들을 각각 자신을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준비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저 교회출석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를 발전시켜 하나님의 일에 봉사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이러한 준비과정은 단지 기능적인 면(skill) 뿐 아니라 성도의 인격과 삶에도 성장을 가져와야 한다.(Robert Slocum, Maximize Your Ministry). 현상유지의 소극적 자세가 아니라 믿음과 인격에 있어서 계속적으로 성장하려는 소망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준비과정을 통해서 봉사의 일을 하게 된다. 봉사는 교회안의 봉사와 교회 밖의 일에 봉사로 구분할 수 있다. 이 둘은 물론 모두 하나님의 일이다. 세계 어느 교회를 보더라도 우리만큼 성도들이 교회안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것이다. 교회안에서 목회자와 평신도의 동역은 매우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에 대한 봉사는 교회안에 일로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의 일에서도 적용되어야 한다. 그것은 곧 사회생활속에서의 성도의 봉사일것이다. 성도들이 준비된다는 것은 교회안의 사역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교회 밖, 즉 세상속에서의 봉사의 일을 위해 준비되어야 한다(Paul Stevens, 21세기를 위한 평신도신학).
우리의 생애속에서 주중에 살고 있는 시간을 생각하면 교회에 나오는 시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 모든 시간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즉, 주님이 이 세상에 주(Lord)가 되신다는 고백은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 과학, 예술, 기술, 사업, 교육, 의학, 경제, 정치영역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도록 새롭게 변화시켜가는 일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이 세상의 구석구석에서 소금의 맛을 내어야 하는 것이다. 성도의 봉사는 주일뿐 아니라 주중의 삶에서 실현하는 것입니다. '세상 구석 구석이 믿는 자들의 개인 사무실이 되어야 한다'는 슬로컴(Slocum)의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평신도와 목회자는 교회안에 하나님이 주신 은사에 근거하여 역할에 의한 구분이다. 목회자와 또 목회자가 아닌 성도를 지칭하는 말이다. 둘 다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말은 하나님의 백성, 즉 성도란 말이다.
그런데 흔히들 목회자와 평신도란 말은 교회에서 계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평신도는 낮은 계층이며 목회자는 높은 계층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적인 뜻이 아니다. 이 말의 기원은 로마시대에 행정관을 의미하는 "클레로스(clergy)" 와 교육받지 못한 평민(laos)를 구분하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세속적인 구분은 중세교회의 1000여년 동안 사용되어 오다가 종교개혁자들에 의하여 그 잘못이 지적되었다.
다른 하나는 구약의 제사장과 일반 하나님의 백성의 관계를 오늘날 교회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일반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직접 제사 드리러 나가지 못하였다. 하나님이 지정하신 제사장이 백성들을 대신하여 속죄물의 피를 제단에 가지고 가서 뿌리게 하였다. 예수님이 오시기전 까지 제사장들이 하나님과 백성사이의 중보자 역할을 하였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더 이상 예수님 외에 다른 사람을 중보자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 누구나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직접 나갈 수 있다.
성경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벧전 2:9절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한다. 종교개혁자들은 성직자 중심의 교회구조를 개혁하면서 모든 성도가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권리를 “만인 제사장”이란 말로 설명하였다. 우리에게는 오직 한 분의 대제사장이 계신다. 곧 그리스도이시다.
엡4:11-12절을 보면, 교회안에는 분명히 성도들과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도하는 목회자의 구분이 나와있다. 11-12절: “그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이러한 구분은 교회가 임의로 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님이 하신 것이다. 왜 이러한 구분을 하신 것인가? 그것은 12절에서,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신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목회자와 평신도의 이중적 계층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온전케되며, 봉사의 일을 하며,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하여 목회자를 따로 세우신 것이다. 이것은 교회안의 지체들의 역할분담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동일한 성도인데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바르게 살아가기 위하여 목사-교사(헬, 동일인)를 두신 것이다. 이러한 구분이 잘못 이해되면, 목회자는 잘못된 권위의식을 갖게 되며, 교인들은 자신에게 주신 소명을 상실하고 소극적이거나 의존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이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은 교회안에 다양한 은사를 주셨다. 이것은 주님이 주신 선물이다.
우선 목회자의 역할에 대하여 살펴보자. 목회자는 성도를 온전케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온전케” 한다는 말의 본래의 뜻은 “준비시킨다”는 말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연장 사용법(equipping)을 가르친다는 뜻이다(김상복목사, 2001 평신도목회컨퍼런스에서). 무엇을 준비시키는 것인가? 성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위해 준비시키는 것이다.
그 다음에 성도들을 각각 자신을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준비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저 교회출석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를 발전시켜 하나님의 일에 봉사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이러한 준비과정은 단지 기능적인 면(skill) 뿐 아니라 성도의 인격과 삶에도 성장을 가져와야 한다.(Robert Slocum, Maximize Your Ministry). 현상유지의 소극적 자세가 아니라 믿음과 인격에 있어서 계속적으로 성장하려는 소망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준비과정을 통해서 봉사의 일을 하게 된다. 봉사는 교회안의 봉사와 교회 밖의 일에 봉사로 구분할 수 있다. 이 둘은 물론 모두 하나님의 일이다. 세계 어느 교회를 보더라도 우리만큼 성도들이 교회안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것이다. 교회안에서 목회자와 평신도의 동역은 매우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에 대한 봉사는 교회안에 일로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의 일에서도 적용되어야 한다. 그것은 곧 사회생활속에서의 성도의 봉사일것이다. 성도들이 준비된다는 것은 교회안의 사역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교회 밖, 즉 세상속에서의 봉사의 일을 위해 준비되어야 한다(Paul Stevens, 21세기를 위한 평신도신학).
우리의 생애속에서 주중에 살고 있는 시간을 생각하면 교회에 나오는 시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 모든 시간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즉, 주님이 이 세상에 주(Lord)가 되신다는 고백은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 과학, 예술, 기술, 사업, 교육, 의학, 경제, 정치영역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도록 새롭게 변화시켜가는 일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이 세상의 구석구석에서 소금의 맛을 내어야 하는 것이다. 성도의 봉사는 주일뿐 아니라 주중의 삶에서 실현하는 것입니다. '세상 구석 구석이 믿는 자들의 개인 사무실이 되어야 한다'는 슬로컴(Slocum)의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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