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위치
합법화시키는 것. 목사는 다른 용어로 말하면 "합법화시키는 자"이다. 영적인 지도자는 사람들에 의해서 독특한 방법에서 보여지는 것이며, 그리고 이것은 성서에 일치하는 것이다 히1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요청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 받으라......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7, 17절)
[상담과 가치] 라는 책에서 밀러와 엣킨슨(Miller and Atkinso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많은 회중의 눈으로 볼 때에 성직자의 역할은 하나님(신)에 대한 성도의 느낌과 관련 있는 어떤 독특한 정서적 상음(emotional overtones)을 가지고 있다." 목사는 목회를 하는 사람들을 순수하게 하고, 그들이 하는 목회를 합법화시키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이것이 바로 왜 만약 목사가 그것을 좋아하지 않고 그것에 그의 지원을 주지 않으면 그것은 갈수 없다고 종종 말하는 이유이다.
[Action Information/ 1990]이란 잡지에서 에르니 코디에(Ernie O, Codie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자격있고 권위 있는 성직자를 위한 씨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평신도 사역을 동등히 그리고 심각하게 여기는 씨스템을 우리는 가지고있지 않다." 설교, 파송, 개인적인 지원을 통해 그리고 단지 이론에서 아니라 실천에 있어서 목회를 양도하는 목사는 평신도 사역자들과 그들의 사역에 신임을 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내가 합법화시킨다는 것을 성직자적인 그리고 신적인 면허(허가)라고 본다. 이런 새로운 역할에서 목사는 "합법화시키는 자"가 되는 것은 거의 필연적이다. 단지 권위를 가지고있는 사람만이 확신시키는 허가를 해줄 수 있다.
목회자. 모세의 모델은 결코 목사를 개인적인 목회에서 제거하지 않는다. 모세는 더 큰 일을 해야했다. 우리는 모든 목회를 하는 것으로부터 목회를 전혀 하지 않는 것까지의 흔들리는 추에 대해주의해야 한다. 목사는 역시 목양(pastoral care)을 해야한다. 가끔 평신도와 함께, 그리고 가끔 그들의 위치에서 하게된다. 목회를 주는 것은 목사에게 있어서 자신을 "묶어놓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누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확실하게 쓰여진 리스트의 과학보다도 예술인 것이다. 사람, 상황, 그리고 시간적인 차이는 그 리스트에 변화를 요청할 것이다. 또한, 목사는 어떻게효과적으로 구비시키는지를 자로 알기 위해 함께 목회(hands-on-ministry)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새로운 운동이 목사의 역할을 변두리로 밀어내는 경향이 있다고 어떤 사람이 믿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닌가? 어떤 이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부름의 중요성을 깍아 내리고 그리고 그들은 대치되었다고 보여지기도 한다. 세가지 성서적 모델이 목회를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그것을 변두리로 밀어내기보다 역할을 극대화시킬 것이라고 분명히 해준다.
출 18장. 모세의 모델 모세는 중심인물에서 점점 축소되기보다, 그는 더 크게 되었다. 그는 선생이고, 선택권 자이고, 그리고 모델이다. 그는 더 큰 문제들을 다룬다. 그는 영적지도자이다. 당신이 출18장을 넘어가서 읽으면서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고민하는 것에 대해 그의 역할이 점점 더 분명해지는 것을 보게된다. 그들은 중보자가 필요했으며 하 나님을 결정적으로 그리고 정규적으로 찾는 사람을 가졌다. 목회를 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 모세의 새로운 역할에서 중요차이는, 그는 이제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라고 부른 것- 사람들을 인도-을 하기 위해 자유로와 졌다.
엡 4장. 목사/교사로서 성직자는 봉사(목회)의 일을 위해 하나님의 사람을 준비(구비)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하라고 부른 일을 하는데 있어서 사람들을 돕는, 종의 역할(a servant role)이다. 더 전략적인 역할이 교회안에 있을 수 있다!
히 13장. 하나님은 교회안에 단지 촉진자들이 아니라 지도자들(leaders)을 두셨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지도자들은 그들의 지도에 있어서 질적인 면과 효과성에 있어서 하나님께 책임이 있다.
이런 새로운 역할은 목사의 직책의 중요성을 감소시키는 대신에, 그것은 그것을 더 강화해준다. 그리고 그것은 신분에 역(반대)-생산(counter-productive) 상승이 됨이 없이 이것을 하게된다. 사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그의 사람들에 대해 더 위대한 종이 되도록 하는데, 목회를 그들에게 줌으로서 그들의 크리스챤 삶의 더 완전한 성취로 그들이 들어가도록 풀어놓으면서 그렇게된다.
합법화시키는 것. 목사는 다른 용어로 말하면 "합법화시키는 자"이다. 영적인 지도자는 사람들에 의해서 독특한 방법에서 보여지는 것이며, 그리고 이것은 성서에 일치하는 것이다 히1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요청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 받으라......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7, 17절)
[상담과 가치] 라는 책에서 밀러와 엣킨슨(Miller and Atkinso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많은 회중의 눈으로 볼 때에 성직자의 역할은 하나님(신)에 대한 성도의 느낌과 관련 있는 어떤 독특한 정서적 상음(emotional overtones)을 가지고 있다." 목사는 목회를 하는 사람들을 순수하게 하고, 그들이 하는 목회를 합법화시키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이것이 바로 왜 만약 목사가 그것을 좋아하지 않고 그것에 그의 지원을 주지 않으면 그것은 갈수 없다고 종종 말하는 이유이다.
[Action Information/ 1990]이란 잡지에서 에르니 코디에(Ernie O, Codie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자격있고 권위 있는 성직자를 위한 씨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평신도 사역을 동등히 그리고 심각하게 여기는 씨스템을 우리는 가지고있지 않다." 설교, 파송, 개인적인 지원을 통해 그리고 단지 이론에서 아니라 실천에 있어서 목회를 양도하는 목사는 평신도 사역자들과 그들의 사역에 신임을 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내가 합법화시킨다는 것을 성직자적인 그리고 신적인 면허(허가)라고 본다. 이런 새로운 역할에서 목사는 "합법화시키는 자"가 되는 것은 거의 필연적이다. 단지 권위를 가지고있는 사람만이 확신시키는 허가를 해줄 수 있다.
목회자. 모세의 모델은 결코 목사를 개인적인 목회에서 제거하지 않는다. 모세는 더 큰 일을 해야했다. 우리는 모든 목회를 하는 것으로부터 목회를 전혀 하지 않는 것까지의 흔들리는 추에 대해주의해야 한다. 목사는 역시 목양(pastoral care)을 해야한다. 가끔 평신도와 함께, 그리고 가끔 그들의 위치에서 하게된다. 목회를 주는 것은 목사에게 있어서 자신을 "묶어놓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누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확실하게 쓰여진 리스트의 과학보다도 예술인 것이다. 사람, 상황, 그리고 시간적인 차이는 그 리스트에 변화를 요청할 것이다. 또한, 목사는 어떻게효과적으로 구비시키는지를 자로 알기 위해 함께 목회(hands-on-ministry)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새로운 운동이 목사의 역할을 변두리로 밀어내는 경향이 있다고 어떤 사람이 믿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닌가? 어떤 이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부름의 중요성을 깍아 내리고 그리고 그들은 대치되었다고 보여지기도 한다. 세가지 성서적 모델이 목회를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그것을 변두리로 밀어내기보다 역할을 극대화시킬 것이라고 분명히 해준다.
출 18장. 모세의 모델 모세는 중심인물에서 점점 축소되기보다, 그는 더 크게 되었다. 그는 선생이고, 선택권 자이고, 그리고 모델이다. 그는 더 큰 문제들을 다룬다. 그는 영적지도자이다. 당신이 출18장을 넘어가서 읽으면서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고민하는 것에 대해 그의 역할이 점점 더 분명해지는 것을 보게된다. 그들은 중보자가 필요했으며 하 나님을 결정적으로 그리고 정규적으로 찾는 사람을 가졌다. 목회를 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 모세의 새로운 역할에서 중요차이는, 그는 이제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라고 부른 것- 사람들을 인도-을 하기 위해 자유로와 졌다.
엡 4장. 목사/교사로서 성직자는 봉사(목회)의 일을 위해 하나님의 사람을 준비(구비)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하라고 부른 일을 하는데 있어서 사람들을 돕는, 종의 역할(a servant role)이다. 더 전략적인 역할이 교회안에 있을 수 있다!
히 13장. 하나님은 교회안에 단지 촉진자들이 아니라 지도자들(leaders)을 두셨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지도자들은 그들의 지도에 있어서 질적인 면과 효과성에 있어서 하나님께 책임이 있다.
이런 새로운 역할은 목사의 직책의 중요성을 감소시키는 대신에, 그것은 그것을 더 강화해준다. 그리고 그것은 신분에 역(반대)-생산(counter-productive) 상승이 됨이 없이 이것을 하게된다. 사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그의 사람들에 대해 더 위대한 종이 되도록 하는데, 목회를 그들에게 줌으로서 그들의 크리스챤 삶의 더 완전한 성취로 그들이 들어가도록 풀어놓으면서 그렇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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