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스티븐스의 평신도목회론
질문: 이제 평신도 해방이라는 주제에 관해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참으로 해방된 평신도」와 「평신도 계급 폐지론」 등 평신도 신학에 관한 책들을 저술하셨는데요. 왜 해방이고 폐지인지 궁금합니다.
답: 이 책을 쓰는 데 20년이 걸린 것 같습니다. 평신도 해방이라는 것은, 성직자들만이 거룩한 사역을 주도적으로 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되고, 평신도들은 이류 계급으로 인식되는 교회의 억압적인 상황으로부터, 이러한 비성격적이고 이단적인 실제 상황으로부터 평신도들을 해방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약 성경은 성도를 두 종류로 분류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후 95년에 교황 클레멘트는 성직자가 아닌 신앙인을 평신도라는 말로 지칭하고 구약의 제사장 개념을 들어 이를 해명하지요. 기독교가 세속의 계급주의 영향을 받으면서, 또 성만찬의 집전권이 특정 성직자들의 전유물이 되면서 이런 경향은 더해졌습니다. 종교개혁을 통해 잠시 극복한 듯 했습니다만. 폐지론이라 명한 것은 이렇듯 진리에 속하지 않은 것은 없애 버려야 한다는 의미에서였습니다.
질문: 교수님께서는 성직자의 권위와 역할을 다른 많은 성령의 은사들 중의 단지 하나로서 이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성도들을 인도하고 온전케 함으로써 모두가 하나님의 사역자(ministers)가 되도록 하는 은사 말입니다.
답: 앞에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 12절 말씀을 보면 목사와 교사는 성도들을 온전케 하여 그들로 하여금 사역을 하도록 돕는 은사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교회는 이 성직을 권위주의적인 직제로 이해합니다.
그들은, 성직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얘기하는 절대적인 권위의 사람이고, 일반 성도들은 하나님과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요. 이것은 마치 머리가 자신은 기능하지 않고 오른손에게 왼쪽다리를 들도록 시키라고 명령하는 것과 같습니다. 실상 머리는 온 몸과 연결되어 있는데 말이죠.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성직자의 임무는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반응하며 직접적인 관계를 맺어가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저의 이러한 견해를 반성직주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저는 성직에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직자가 교사로서 사역하는 것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저는 분명히 찬성하고 있으며 저 또한 그렇게 활동해 왔습니다.
제가 반대하는 것은 성직자와 교사만이 전임 사역자이며 그들이 공급하는 자요, 성도들은 받는 자들이라고 하는 관점입니다.
끝으로 한국 교회를 향한 조언의 말씀을 해주시지요.
예, 먼저 한국 교회의 목사님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일 년에 두 주 정도는 시간을 내어 성도들의 일상 현장을 둘러보시는 게 어떨까요? 그들이 일터에서 자신의 영성을 어떻게 일구고 조화시키는지 점검해 주고 그 과정에서 갖게 되는 의문점들을 주의깊게 들어주고 함께 기도한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목사님들이 기꺼이 이러한 투자를 할 수 있다면 사역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또한 목사님들이 모든 것을 대표하고 책임져 주기를 요구하는 성도님들에 대해서 조금은 단호해져야 되겠습니다. 성도님들도 목사님께 그러한 기대를 갖지 않길 바랍니다. 목사님은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서 성도들을 온전히 세워가는 데에 힘쓰십시오. 모든 모임마다 목사님이 참석하고 주도해야 한다는 그릇된 관행에서 모두들 해방되시기를 바랍니다.
의도적인 만남의 시간을 줄여간다면, 그래서 주일 저녁부터 다음 주일까지의 모임에서 목사님이 해방된다면 그들은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고 또 일터에서 성도들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성도님들도 힘을 얻을 수 있겠지요.
질문: 이제 평신도 해방이라는 주제에 관해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참으로 해방된 평신도」와 「평신도 계급 폐지론」 등 평신도 신학에 관한 책들을 저술하셨는데요. 왜 해방이고 폐지인지 궁금합니다.
답: 이 책을 쓰는 데 20년이 걸린 것 같습니다. 평신도 해방이라는 것은, 성직자들만이 거룩한 사역을 주도적으로 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되고, 평신도들은 이류 계급으로 인식되는 교회의 억압적인 상황으로부터, 이러한 비성격적이고 이단적인 실제 상황으로부터 평신도들을 해방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약 성경은 성도를 두 종류로 분류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후 95년에 교황 클레멘트는 성직자가 아닌 신앙인을 평신도라는 말로 지칭하고 구약의 제사장 개념을 들어 이를 해명하지요. 기독교가 세속의 계급주의 영향을 받으면서, 또 성만찬의 집전권이 특정 성직자들의 전유물이 되면서 이런 경향은 더해졌습니다. 종교개혁을 통해 잠시 극복한 듯 했습니다만. 폐지론이라 명한 것은 이렇듯 진리에 속하지 않은 것은 없애 버려야 한다는 의미에서였습니다.
질문: 교수님께서는 성직자의 권위와 역할을 다른 많은 성령의 은사들 중의 단지 하나로서 이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성도들을 인도하고 온전케 함으로써 모두가 하나님의 사역자(ministers)가 되도록 하는 은사 말입니다.
답: 앞에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 12절 말씀을 보면 목사와 교사는 성도들을 온전케 하여 그들로 하여금 사역을 하도록 돕는 은사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교회는 이 성직을 권위주의적인 직제로 이해합니다.
그들은, 성직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얘기하는 절대적인 권위의 사람이고, 일반 성도들은 하나님과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요. 이것은 마치 머리가 자신은 기능하지 않고 오른손에게 왼쪽다리를 들도록 시키라고 명령하는 것과 같습니다. 실상 머리는 온 몸과 연결되어 있는데 말이죠.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성직자의 임무는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반응하며 직접적인 관계를 맺어가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저의 이러한 견해를 반성직주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저는 성직에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직자가 교사로서 사역하는 것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저는 분명히 찬성하고 있으며 저 또한 그렇게 활동해 왔습니다.
제가 반대하는 것은 성직자와 교사만이 전임 사역자이며 그들이 공급하는 자요, 성도들은 받는 자들이라고 하는 관점입니다.
끝으로 한국 교회를 향한 조언의 말씀을 해주시지요.
예, 먼저 한국 교회의 목사님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일 년에 두 주 정도는 시간을 내어 성도들의 일상 현장을 둘러보시는 게 어떨까요? 그들이 일터에서 자신의 영성을 어떻게 일구고 조화시키는지 점검해 주고 그 과정에서 갖게 되는 의문점들을 주의깊게 들어주고 함께 기도한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목사님들이 기꺼이 이러한 투자를 할 수 있다면 사역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또한 목사님들이 모든 것을 대표하고 책임져 주기를 요구하는 성도님들에 대해서 조금은 단호해져야 되겠습니다. 성도님들도 목사님께 그러한 기대를 갖지 않길 바랍니다. 목사님은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서 성도들을 온전히 세워가는 데에 힘쓰십시오. 모든 모임마다 목사님이 참석하고 주도해야 한다는 그릇된 관행에서 모두들 해방되시기를 바랍니다.
의도적인 만남의 시간을 줄여간다면, 그래서 주일 저녁부터 다음 주일까지의 모임에서 목사님이 해방된다면 그들은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고 또 일터에서 성도들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성도님들도 힘을 얻을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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