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제자훈련

은사에 관련되는 위험

가디우스 2007. 9. 6. 17:34
은사에 관련되는 위험

영적인 은사에 대해 공부할 때 관련되는 몇 가지 위험이 있다. 문제 중에 하나는 어떤 사람이 특정한 은사를 갖고있을 경우 다른 사람들도 같은 것을 가져야된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그리스도 몸에서 아주 눈에 띄는 은사를 가지고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흔히 있는 일이다. 또 다른 위험은 우리의 은사 이해에 대해 너무 빠져서 크리스챤 성숙을 향한 기본 단계(basic steps)를 무시하게되는 경우이다. 그것은 나의 은사에만 너무 많이 관심을 기울여 그리스도와의 매일의 동행에 제대로 관심을 같지 않는 경우이다.

또 다른 위험은 나의 은사가 당신의 은사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는 때이다. 첫째 그 은사는 나의 것도 여러분의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그것들을 주셨다. 둘째, 우리는 단지 어떤 은사들이 크리스챤 몸에 있어 더 눈에 띄기에 그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은 종종 전도의 은사에서 일어나는 경우다. 전도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일반적으로 교회 안에서 아주 눈에 잘 띤다. 그 은사는 다른 은사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누구도 전도의 은사의 중요성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그것이 모든 다른 은사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데 있다.

또 다른 경고가 있는데 영적인 은사에 관련되어있는 것이다. 그들은 정말 [은사]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들에서 별로 유익을 얻지 못하여 그것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별로 인정을 안 하려고 한다. 은사에 대해 연구하는데서 가장 최악의 일 중의 하나는 우리의 은사들을 발견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우리에게 그것들을 주신 그분을 위한 봉사에 그들을 배치하는 것에 실패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은사를 공부하는 전체 목적을 방해하기도 한다. 은사는 그분의 명예를 위하여, 그분의 봉사에서 사용하도록 주어졌다.

은사와 사역사이에는 구별이 있다. 하나님은 사역에서 실행될 수 있는 특수한 은사를 당신에게 주신다. 예를 들어, 환대(친절한 대접)는 은사이다. 당신이 그 은사를 사용하는 방법이 친절한데 당신의 사역이다. 당신은 당신의 집에 성경공부를 초청함으로 그것을 사용할 수도있다. 당신은 숙소가 필요한 사람을 위해 짧은 기간동안이라도 그것을 제공하면서 그것을 사용할 수도 있다. 당신의 집은 당신의 이웃이 모여서 커피를 마시기 위한 장소가 될 수도있다. 이런 것들이 곧 당신의 사역이 될 것인데, 같은 은사(환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당신의 사역은 당신의 은사를 사용하는 단순한 그런 방법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흥미 있는 얘기를 하고 있다: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고전 12:6, RSV). "working" 이라는 말을 주목하라. 그것은 때때로 “활기 띄게 하다”로 번역되었다. 레이 스테트먼(Ray Stedman)에 따르면 이 말은 다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은사가 특수한 경우에 있어 입증되거나 또는 사용함에 의해 생겨지는 힘의
정도이다 ......영적인 은사의 모든 실행은 각각 같은 결과를 산출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다른 상황에서 주어진 같은 멧세지는 같은 결과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선택이다. 그는 항상 같은
결과를 산출하려고 하지 않으신다. 그는 그렇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분은
항상 그렇게 하기를 바라지 않으신다. 은사의 각 사역에서 얼마만큼 성취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께 달려있는 것이다.

다른 학자는 “일하는 것(working)" 또는 “활기 띠게 하는것”의 단어의 정의에 대해 약간 다른 입장을 취한다. 그는 그 단어를 “결과” 로 번역한다. 킹혼(Kenneth Kinghorn)은 [가르침]의 은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예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 은사는 설교, 글쓰기, 그리고 상담과 같은 그런 사역에서 실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이런 세가지 각각은 다른 결과들을 가져온다. 바울에 의해 언급된 “일하는 것” 또는 “활기를 띠게 하는 것”. 예를 들어 설교사역의 결과는 크리스챤 ‘개종’이 될 수 있다. 글쓰기 사역의 결과는 크리스챤 ‘성장’이 될 수있다. 상담사역의 결과는 크리스챤 ‘일치’가 될 수 있다. 은사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그 은사가 사용될 수 있는 곳은 적어도 세 가지 다른 사역들이 있다. 그런 세가지 사역들로부터 결과는 모두 다르다: 개종, 성장, 그리고 일체감.

'신앙 > 제자훈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폴스티븐스의 평신도목회론  (0) 2007.09.06
종교개혁과 평신도목회  (0) 2007.09.06
은사에 대하여  (0) 2007.09.06
평신도목회의 기초  (0) 2007.09.06
존웨슬레의 평신도목회  (0) 2007.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