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강 제자훈련과 성령충만
1. 제자훈련을 잘 하려면 3가지가 필요하다.
1. 사역의 뿌리가 든든해야 한다. 이것은 교회론에 관한 부분이다. 약 10페이지 가량 교회가 뭔지 쓸 수 있으면 개척해도 된다.
2. 제자훈련에 대한 테크닉이다. 연역적 방식은 익숙하지만 귀납적 방식은 어려워 한다. 연역적은 지적인 것이지만 귀납적은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잘 안되면 가정 예배 드리면서 연습하라.
3. 소위 성령 사역이다.
요한복음16장 13절에 성령이 오시면 진리를 알리라고 말씀하신다. 개척시절에 소그룹을 7개 하였다. 주보도 만들고, 작은 일까지 다 했다. 소그룹을 시작할 때도 성령을 의지하고, 질문을 할 때도 성령을 의지했다. 계속 고민했다. 2시간 나누고 1시간 기도했다. 균형잡힌 성령운동이 중요하다.
이 세가지가 제자훈련에서 너무 중요하다.
2. 균형잡힌 성령 사역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이유는 사역 자체가 균형이었다.
가. 사역은 제사장적 사역이 있고,- 양육을 하고 먹이는 것, 곧 아비의 심정을 가지는 것이다. 고전15장의 일만 스승은 있어도 아비가 없다는 것이다. 스승이 더 똑똑하지만 자녀는 아비가 키운다. 이것이 아비의 심정이다. 목양적인 부분을 말한다
나. 그러나 목회는 선지자적 사역이 필요하다. 도전하고, 징계하고, 채찍질 하는 것이다. 50명 모였는데 채찍질 자주하면 안된다. 1000명 모였을 때 사회적 책임 없는 것에 대해서 질책해도 된다. 여하튼 균형이 필요하다. 지성과 영성, 말씀과, 행위, 정직과 성실, 다음세대와의 관계 모든 상황에서 균형이 필요하다.
3. 영성도 균형잡힌 것이 필요하다.
영성을 추구하는 것에 다양한 접근이 있다.
2000년 교회사의 영성은 다양한 영성이 있다. 다양한 영성의 흐름 가운데 균형이 필요하다. 영성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7가지로 진단해 본다.
가. 첫 번째 영성은 묵상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도시의 삶을 피하고 고독과 기도를 강조한 것이다. 참 영성은 묵상을 통한 하나님과의 친밀함이다.
나. 두 번째로는 성결한 삶을 강조하는 영성이다. Holy Life이다. 거룩한 삶을 강조하는 요한 웨슬레, 홀리클럽이었다. 성결한 삶을 위한 독특한 방법론이 나왔다. 그래서 Methodist라고 말한다.
다. 세 번째는 성령을 강조하는 영성이다. 하나님의 성회, 퀘이커 교도들이 그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체험, 성령세례 그리고 두 번째 축복으로의 성령을 받아야 한다.
라. 네 번째 영성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영성이다. 프란체스코, 선명회, 이전의 풍요로운 삶을 포기하고, 고난의 행군을 패턴화 하려고 했다. 사회정의를 강조하려고 했다. 소위 인권운동도 관계되어 있다.
마. 다섯 번째로 말씀을 강조하는 영성이다. 칼빈과, 루터는 말씀에 직접 접근하는 것을 강조했다. 성경읽기와 적용을 강조했다. 카톨릭은 성경을 누가 해석하느냐가 중요했다.
바. 여섯 번째는 특정한 훈련을 계발하는 것이다. 로마 카톨릭의 사제 훈련을 통해 나왔다.
사. 일곱 번째는 공동체적인 삶을 강조한다. 중세 초기 베네딕트가 그렇다. 성 베네딕트회라는 수도원으로 공동체를 창설했다. 참 영성은 공동체 안에서 개발된다고 하였다. 떼제 공동체도 그렇다. 강원도 예수원도 그렇다.
여기 일곱 개의 모든 영성이 중요하다. 어느 것 하나만을 중요하다고 강조할 수 없다. 모든 접근법에 있어서 강점과 약점이 있다. 모두 노출되어 있다.
묵상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매일 부딪치는 현대의 삶을 잃어버릴 수 있다.
성결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죄에 초점을 맞추니 그리스도의 은혜에 민감하지 않다.
성령 중심하는 사람들은 은사를 강조하다가 은사를 주신 하나님을 잃어버릴 수 있다. 은사는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인데 우리는 윽박지른다.
사회정의를 강조하다가는 복음을 잃어버릴 수 있다.
말씀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사역을 간과할 수 있다.
고행 특정 훈련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행복을 잃어버리고
공동체를 강조하는 사람은 정체성을 잃어버린다.
어느 것 하나만을 강조하지 말고 항상 배우려는 자세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찬양을 하나 선택하더라도 영적으로 성령께 여쭈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1980년대 부흥을 한 이유는 한국교회가 지성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이다.
4. 성령충만의 의미
가. 인격과 삶으로 평가되는 성령충만(Preloo) 행6:5, 엡5:18 - 오랜 시간을 통해 꽉 찬 상태가 Preloo이다. 이것이 인격적 충만이다. 장기적 충만이다. 이것이 소위 존재적 충만이다.
나. 능력과 은사로 평가되는 성령충만(Pimplemi) 행 4:30-31 - 단기적인 충만이다. 갑작스런 바람이 들어간, 외적, 능력충만, 사역에 있어서의 성령 충만이다.
이 둘의 균형이 잡혀야 한다. 한국교회가 두 성령충만 사이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가?
성령에 대한 실제가 있는가? 설명은 있을 수 있어도 실제는 거의 없다. 실제가 있는 사람이 영성의 사람이다.
균형감각을 가져야 한다. 찬양을 하더라도, 말씀을 준비하더라도 성령의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지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모든 균형이 필요하다.
우리는 제자훈련 자체가 성령의 일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을 등한히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이미 성령의 능력을 일어버린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성령충만과 제자훈련은 끊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감동과 능력을 찾아보기 어려운 제자훈련이 없지 않다. 우리는 예민하게 이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 잘못하면 틀에 박힌 프로그램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 삭막한 성경공부를 제자훈련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예수님은 3년이 넘도록 자기 제자들을 가르치고 훈련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으로 제자만드는 일이 완성된 것으로 말씀하지 않았다. 마무리 작업을 할 단계가 남아있음을 미리 알려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이 오셔서 해야할 일이었다. 성령이 오셔야 제자들에게 진리를 깨닫는 눈이 활짝 열릴 수 있고, 증거하 권세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기 전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 다시 말해서 성령 충만은 제자훈련의 완성을 위한 필수 요건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문제에 관해서는 신학적인 견해 차이가 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성령의 충만한 은혜 없이 제자훈련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성령은 기도하는 자에게 힘 있게 역사하신다. 성경공부만 하고 기도를 등한히 하면 성령의 은혜를 체험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제자훈련을 받은 자들이 아는 것은 많으나 성령의 영감이 부족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제자훈련의 끝손질은 반드시 성령이 하셔야 한다. 많은 지도자들이 이 중대한 사실을 과소평가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성령께 전적으로 의탁해야 한다. 전적으로 찬양하라.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시대에 있기에 마지막은 성령께서 하신다. 성경공부를 하고 기도를 등한히 하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무엇을 이루어 달라는 기도만으로 영성은 충만하지 않다.
5. 성령에 대한 성경적 고찰
가. Para(요14장 11절) 함께 계셔서 16장 13절 모든 진리로 인도하신다.
나. En 내 안에 계셔서 주를 닮아가게 하신다. 요16장18절 심판에 대하여..눈을 뜨게 한다. 성령이 오셔서 주의 형상을 닮게 하는 것이다.
다. Epi 위로 부어주시는 성령.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이다.
6.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는
가. 나 자신은 깨끗한가? (하루 아침에 망하는 사람은 없다)
나. 성령의 존재와 은혜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강조하라.
다. 특별한 체험이나 은사만을 성령충만인 것처럼 생각하는 버릇을 버리라
라. 메마른 성경공부와 영성이 넘치는 말씀 나눔의 차이를 바로 파악하라.
소그룹하면서 정말 조심해야 한다. 거룩함을 지켜라. 아직은 제자훈련을 하면서 스캔들 일어난 적은 없다. 몇 개월만 몇 시간동안 함께 앉아 있으면 제자들이 목사의 영적인 상태를 다 안다. 영적인 거룩성을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소그룹은 교회가 커져도 놓지 마라 안테나가 죽는다.
7. 성령충만을 방해하는 간교한 유혹들..
가. 무리한 스케줄
나. 탈진
다. 영적자만
성령충만이 되면 자기의 약점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의욕이 앞서지 마라. 과열하면 제일먼저 줄어드는 시간이 기도시간이다. 기도시간이 줄어들면 목사가 영적으로 다운된다. 영성이 낮아지면 허세가 커진다. 그리고 자신의 약점을 엄청 강조한다.
탈진하면 보통 2가지 양상이 나타난다.
가. 독재적이고 딱딱해진다.
나. 또 하나는 7계명 간음을 저지른다. 심각하다.
8. 결론
지성과 영성의 균형을 이루라.
교회사에서 어거스틴은 지성과 영성을 모두 구비하려고 했다.
베드로는 지성과 영성을 겸비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지성과 영성을 새롭게 하고 균형을 일으키는 핵심은 마인드이다. 생각이다. 따라서 제자훈련을 강조하는 교회는 로마서 8장 5절을 강조한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마음을 새롭게 하고 생각을 성령께 바치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이 성령께 장악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여는 것이다.
너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원래 의는 육이 육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영이 육을 지배하는 것이며 영이 육을 지배하는 증거는 성령의 기름부으심은 무엇이냐면 보통 사역자들이 경험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을 주관하는 것이다. 생각을 성령이 주최하는 것이다. 성령이 지금도 우리의 생각을 장악할 수 있도록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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