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제자훈련

제 10강 제자도 A - 옥한흠

가디우스 2007. 9. 6. 16:18

제 10강 제자도 A - 옥한흠


제자 만드는 것이 목회의 본질입니다.

본질을 붙드는 것에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만 하면 체질이 건강해집니다.

체질이 건강해지면 교회가 성장합니다.


말씀만 계승하는 소명자가 아니라 우리는 대 사명도 계승하는 소명자이다. 이것이 목회의 본질이다.


처음 평신도를 깨운다를 출간했을 때 공격하는 사람이 없었다. 웨스트민스터에서 박사 코스웍만 하고 포기하고 나왔다. 18년이 흐르고 그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그 과정을 마무리 하라는 것이었다. 격식만 차리면 학위를 주겠다고 했다. 첫해는 NO하고 두 번째는 부교역자들의 등살에 통과했다. 그때 논문을 검토한 교수가 웨스트민스터와 트리니티 교수였다. 트리니티 교수는 목회자로서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목회에 적용해서 성공했다는 것은 대단한 결과라고 칭찬해 주었다. 주임교수였던 하비 칸은 한국 선교사였고, 한국의 비판의 대상자였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웨스트민스터에서 명예신학박사학위를 주었다.


그리고 이 책을 미국판으로 번역하려고 했는데 경제성이 없어서 리턴되었다. 그래서 영국에서 출판했다. 칼빈신학교에서 5년전 교수들 앞에서 강의하고 호되게 검증된 적이 있다. 그래서 지금은 벌벌 떨지 않는다.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성경이 말하는 목회철학이어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은 특권만 말하고 있었다. 소명이 있기 때문에 교회를 남겨 놓았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사도성이다.


훈련받지 않으면 아무리 총을 가지고 사선에 나가도 총알 받기가 될 수 밖에 없다.


제자도는 평신도 훈련의 방향과 목적을 뚜렷하게 제시하는 전력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아무리 잘 쏘아도 전략을 가지고 쏘아야 한다. 왜 이것을 하는지에 대한 방향과 목적, 표준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제자도이다.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쓰신다.


Ⅰ. 목회철학이 목회전략을 낳는다.

예수님과 제자들 - 예수님이 제자들을 택하신 이유는 그의 선교 활동을 계속할 그의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필요한 것은 그의 말이 그대로 인쇄된 산 교본의 구실을 할 수 있는 제자들이었다.


Ⅱ. 왜 제자도가 전략인가?

   가. 두 전략의 비교

      1. 에큐메니칼 운동

세계 기독교계에 있는 세계 교회를 하나로 만들어서 20세기의 반 기독교적인 것에 대항하여 하나의 교회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존 스토트 같은 복음주의 학자들이 참여했다. 그리고 교회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교회는 평신도라는 정리를 하게 되었다. 교회의 주체는 평신도라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교회 밖에서 평신도가 구실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참여와 세속화이다. 이 두 용어를 중심으로 해서 평신도가 교회 안에서 주체로서 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웠다. 목회자가 독점하고 있는 부분을 상당 부분 오픈하고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적 수준이 있고, 성경을 아는 평신도들과 함께 설교의 내용을 만들고 검토하고 설교에 대한 피드백도 같이 하고 평신도도 강단 사역에 함께 쓰임을 받는 것이다.


세속화는 세상에 나가 있는 평신도를 피하게 하지 말고 죄가 아닌 이상은 적극적으로 뛰어가서 중심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회참여를 적극 참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WCC가 반세기 열심히 했고 손을 들었다. 실패했다는 것이다. 왜 실패인가? 전략을 잘못 세웠다.


    2. 캠퍼스 선교 운동

신학의 문턱에도 가지 못한 평신도들을 캠퍼스에서 일으키셨다.


네비게이토의 도슨 트로트 맨에게 영향을 받은 빌브라이트가 CCC를 일으켰고, 빌리그래함도 도슨과 함께 일했다. 이런 사람들의 90%가 신학교를 가지 않은 평신도였다. 이들은 WCC와 게임이 되지 않았다. 반세기가 지나고 나서 파라처치 미니스트리는 괄목할만큼 엄청난 부흥을 이루었다. 왜 성공이었는가? 전략을 바로 세웠다.


그들의 전략은 제자만들기였다. 그들은 사람 먼저 만들고 일을 시켰다. 이것이 전략이다. 유식하지도 못한 선교단체의 지도자들은 도슨이 스타트를 해서 주님이 가르쳐 주신 전력대로 하였다. 사람이 준비되지 않으면 우린 절대 이야기 하지 않는다. 투자는 사람 만드느데 사용하였다.


WCC는 사람을 만드는 데 투자를 안했다. 똑똑하면 일 시켰다. 이러다 보니 교회에서 일을 먼저 한사람이 문제를 일으키고, 사회에서는 동화되어 버렸다. 그러나 선교단체는 성공했는데 말씀으로 사람을 빚었고, 시간은 느리지만 결국 사람이 만들어지면 뭔가 해 내었다. 이것은 분명한 대조이다.


WCC는 사회참여 밖에 안했다. 그러나 선교단체는 엄청난 목사들을 배출했다. 이렇게 비교하는 이유는 전략이다.

[마 28:18-마 28:20]

(18)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8)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20)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도슨 트로트맨은 이 구절을 읽고 사도행전과 복음서를 집중적으로 읽었다. 이것은 막연히 전도하란 말이 아니고 3년동안 자기 닮은 사람을 만드는 훈련을 하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샌디에고에서 전도했다. 2차대전에 6개월동안 해군들이 훈련을 받고 샌디에고에서 하선하면 전도했다. 그리고 그들을 데리고 집에 와서 동거하면서 나누고 메모리 카드를 만들고 중요 성경구절을 외웠다. 큐티를 하고 적어 오전동안 공부하고, 오후에는 전도하였다. 저녁에 전도받으면서 받은 은혜를 나누었다. 그 사병들이 배우고, 자기가 기록한 것들을 가지고 올라갔다. 선상에서 똑같이 하라고 도슨 트로트맨이 명령했다. 선상에서 전도했다. 진주만에서 폭격당할 때 묵상하면서 메모리 하면서 죽은 사병이 많았다. 어설픈 청년 하나가 말씀하나에 눈을 뜨고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도슨 트로트맨은 매일 52개주를 짚어가면서 기도하고 세계지도를 두고 짚어가면서 기도했다. 제자가 벌떼처럼 일어나게 해 달라고 말이다.


제자라는 말이 사도행전에서는 보편화 되었다. 그래서 신앙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다 제자이다. 그런데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서신서에서는 사라졌다.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의견은 서신서에 있는 교회들은 모두 헬라 가운데 있는 교회이다. 헬라문화권의 특징은 철학이 대단하다. 그 밑에는 제자라는 추종자가 있었다. 그래서 제자라는 말에 대한 고정관념들이 있었다. 그 철학을 배우고 따라다니는 사람을 제자라고 하는 통념이 있었다. 지혜를 배우고, 지식을 배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 자신을 배우는 것이다. 이 세상 누구도 나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한 사람은 예수님 한 사람이다. 요한의 제자가 많이 있었지만 추종자들에게 자신을 따르라는 말을 안했다. 엘리야도 안했다. 소크라테스도 안했다. 예수만이 나를 따르라고 말했다. 그래서 제자라는 말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성경의 계시는 통전적이다. 모두 통하고 발전적이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제자는 시대적인 것에 의해서 어디에서는 유효하고 어디에서는 유효하지 않는다는 말은 말이 안된다. 그 제자를 대신하는 말이 서신서에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 그 발전된 용어가 있다고 확신한다. 그렇지 않다면 성경 자체가 충돌할 수 있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


그 용어가 온전한 자이다. (고전14:20; 엡4:12; 골1:28; 딤후3:17)

네가지 헬라어 용어는 그 의미가 대동소이하다.

[고전 14:20-고전 14:20]

(20)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엡 4:12-엡 4:13]

(12)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골 1:28-골 1:28]

(28)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딤후 3:17-딤후 3:17]

(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눅 6:40-눅 6:40]

(40)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장성한 분량은 모든 면에서 어른을 말한다.

-teleios-

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품고 계셨던 목적이 있었다. 예수님 닮은 거룩한 백성을 만드는 것을 원하셨다. 그러나 죄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 여기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긴 역사를 통해서 자신의 목적을 완성하기 위해서 준비하시고, 그리고 예수를 보내셨다. 그리고 믿음으로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셨다. 원래 창조때 가지고 있었던 목적을 이루려고 하셨다. 원래 목적을 일치하려고 하는 것이 teleios이다. 헨리 나우엔이 하나님을 닮는 것이 가장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목적에 일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teleios이다.


지금부터 4년전쯤 칼빈신학교에서 요청이 되었다. 졸업하고 20년이 지나고 처음으로 3일동안 교수와 학생들을 상대로 특강을 했다. 매년 한번씩 중요한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을 모시고 갖는 프로그램이 있다. 책과 사역을 검토했는데 제자훈련과 목회라는 주제로 해달라는 것이다. 감사하지만 불안했다. 학교다닐 때 한국 학생이 옥목사 혼자였는데 일본 신학자를 모시고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첫날 강의를 학생들이 가득 나와 들었는데 나중에는 옥목사까지 딱 3명, 동양인들만 앉아 있었다. 교수들도 안들어 오고, 학생들도 없어졌다. 그래서 자신이 가면 어떻게 될까 불안했다. 그런데 옥목사가 갔을 때는 한국학생들이 35명이 있었다.


오전에 2시간, 오후 2시간 강의했다. 주로 세미나 내용이었다. 그리고 매 시간마다 질문시간이 있었는데 6시간 이후 질문을 해달라고 했다. 질문시간이 왔다. 모든 질문을 무사히 다 지났는데 마지막 백인 여학생이 질문했다. “예수님의 제자를 서신서에 온전한자와 비슷하다고 하셨는데 더 설명해 주세요” 사실 만약 이것을 어떤 학자들의 사고에서 나왔으면 소개하면 되는데 이것은 옥목사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난감했다. 아직 검증이 안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순간 귀한 것을 깨닫게 하셨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


“자매에게 온전한 사람과 제자란 말이 일치한다는 것에 부담스러워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깨달은 진리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도 안될 일을 되라고 허락하셨을까요? 그 정상은 끝이 보이지 않는데 누가 예수님처럼 됩니까? 예수님께서 깨닫게 하시기를 ‘내가 니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의 심정은 자식에게 최고의 것을 원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부모의 본능이다. 차선을 원하시지 않는다.


맥스 루카도의 “예수님처럼”을 꼭 읽어라. 예수님은 뜯어 고치신다. 목수이시다. 전세인 사람은 도배로 만족한다. 그러나 주인은 모두 다 고친다. 그분은 나의 주인이시기 모두 뜯어 고치신다. 만족할 때까지이다.


CS루이스 순전한 기독교에서 “교회는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어서 작은 그리스도로 만드는 것 때문에 존재한다. 만약 이것을 하지 않는다면 건물, 설교, 성경, 선교, 모든 것이 시간 낭비이다. ” 32페이지이다.


헨리 나우엔 “우리의 영적 생활에 있어서 가장 큰 도전은 우리 자신이 예수님과 같다고 주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 살고 있는 예수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구원은 그리스도와 같이 되어야 한다. ”


만약 이렇게 살았다면 세속화되지 않았다. 우리는 목회의 본질을 놓친 것이다.


오늘의 설교는 물탄 설교이다. 복잡한 이야기 듣기 싫은 사람 앞에서 어려운 말해야 통하는가? 알아듣도록 하기 위해서는 물을 타야 한다. 감동은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목표를 두고는 역부족이다. 예수님도 설교하셨지만 무리를 피해 다니면서 제자들을 손질하셨다. 예수님도 설교하셨지만 예수님의 목적은 제자를 키우는 것이었다. 건물을 남기는 목회를 하지 마라. 사람을 남기는 목회를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