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제자훈련

제 12강 교회훈련과 교회성장 - 옥한흠

가디우스 2007. 9. 6. 16:13

제 12강 교회훈련과 교회성장 - 옥한흠


교회성장을 너무 부담스럽고, 어렵게 생각하지마라. 건강하면 자란다.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지역교회가 질과 양에 있어서 균형있게 성장하는 것이 교회성장이다.


양적성장도 성장이다. 예루살렘 교회가 구제문제가 다 해결되자 양적인 성장이 있게 된다. 헤롯이 세상을 떠난 후에 교회를 든든히 세워갔다는 말이 있다.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서 양적인 성장이 필수적이다. 특수한 목회현장을 제외하고는 교회가 성장해야 정상이다. 일년에 한사람도 없다면 안된다. 성장은 항상 중요한 과제이다. 지이 높아질 수록 교회는 성숙해 진다. 그러나 양적으로 성장하면 성숙해지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질이 좋아지면 양이 자연스럽게 늘게 되어 있다.


박희석 목사님...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님을 키워주신 내수동 교회의 목사님이시고 사랑의 교회 개척했을때 월20만원 지원해주신 분이시다.


숫자가 늘어야 목회자가 기쁨도 있고, 힘도 생긴다. 이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일본교회와 옥목사는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일본의 평균 교회수가 40-50명이다. 양적인 성공을 위해서 시도했는데 약 10여 교회만 성공했다. 나머지는 지쳐버렸다. 이것은 짐이다. 양적인 성장을 하지 않으면 진이 빠진다. 만약 성장이 안되면 진지하게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이다. 자라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하나님 앞에 다시 서야 한다.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왜 성장하지 않느냐에 대한 냉정한 분석도 있어야 한다.


성장은 종합 예술과도 같다. 한가지만 잘한다고 해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정도 수준이상 갖추어야 성장한다.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한 사람은 크리스챤 슈바르츠이다. 이사람의 이론은 대단한 이론이다. 한번 읽으면 안된다. 몇 번이고 읽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추측을 하니 8가지 요소가 60점 이상을 받은 교회가 성장한다. 만약 하나라도 낙제가 되면 성장하지 않는다. 사람의 몸도 한가지가 나쁘면 건강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따라서 교회성장은 종합예술과도 같다. 


요즘 많은 목회자들이 셀과 제자훈련과 다른점을 묻는다. 제자훈련은 사람을 만드는데 초점을 두고 있고 셀은 소그룹이란 환경에 초점을 맞춘다. 제자훈련은 소그룹 안에 말씀을 연구하는데 초점을 맞추지만 셀은 전도에 초점을 맞춘다.


제대로 사람이 준비가 되고, 말씀 위에 세운 건강한 셀은 이웃을 초청해도 무리가 없다고 본다. 소그룹 리더를 키우는데 많은 투자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말씀의 나눔에서 끝나고, 은사 중심으로 모이던지...길게 못간다고 생각한다. 좀 힘이 들어도 사람부터 키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연구하는 것이 기초라고 생각한다. 이 때 셀운동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소그룹의 좋은 점들을 배울 필요가 있다.

제자훈련을 알곳 싶은 제일 좋은 길은 한국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기성교회에 접목해서 성장한 교회에 찾아가서 물어라. 이야기를 나누라. 그렇다면 성장을 장애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우리 스스로 짚어 낼 수 있다. 변화가 된다.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 변화이다. 이것이 교회 문화, 교회 중직, 평신도, 혹은 목회자 자신에게도 있을 수 있다. 성장이 될 수 있도록 시도하는 것이 좋다. 계속 도전 받고 배워라. 교회가 성장할 수 있다면 배워라.


교회성장에 해당하는 요소 두가지는 설교, 그리고 제자훈련이다.

설교에서 어려운 것은 자기가 하는 말을 자신이 못 따라가는 것이다. 목회설교는 같은 강단에서 10년 20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씀을 전한 대로 따라가지 못가는 것이 죄책감이다. 설교를 부담스러워 해야 한다. 즐기면 안된다. 즐기는 사람의 공통점은, 낙천적, 달변가이다.

선한양심을 가졌다면 설교를 하지 말고 차라리 돌이 가득한 수레를 끌어야 한다. - 루터


설교는 하나님의 은혜로 해야 한다. 내 행위가 완벽해서 설교하는 사람이 없다. 질그릇 같은 존재인데 하나님은 은총을 주셔서 설교하게 하신다. 설교만큼 하나님의 은혜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은 없다. 그리고 설교 앞에 은혜를 받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은총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그 가책이 되는 설교를 듣고 살아나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영광스런 특권을 주신 것을 감사드려야 한다.


설교와 제자훈련은 함께 가야 한다. 제자훈련을 잘해서 평신도들의 10명이 생겼다고 하자. 이때 교역자는 설교에 부담감을 가져야 한다.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옛날 목사의 설교에 만족하지 않을 수 없다. 제자훈련과 함께 설교가 발전해야 한다. 훈련 받은 평신도가 영적으로 신이 나서 밖에서 전도를 하고 오는 것이다. 제자훈련은 설교를 대체하는 수단이 아니다. 오히려 설교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잘못하면 부작용이 일어난다.

어머니가 아무리 아가를 사랑해도 자기 젖이 모자라면 어쩔 수 없다. 아이는 울게 되어 있고, 고통스러워한다. 우리는 설교에 힘을 주어야 한다. 교회가 부흥하는데 제자훈련 해서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처음 올 때 설교를 보고 오지 제자훈련 때문에 오는 사람은 없다. 제자훈련을 받은 사람이 사람들을 데리고 올 때 그 사람들에게 감동의 설교를 해야 한다.


설교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은혜를 받아야 한다. 젊은 목사들은 은혜가 뭔지 모른다. 사선을 넘나든 사람은 은혜가 뭔지 안다. 사선 앞에 서있을 때 주님을 찾게 된다. 은혜를 받으면 설교를 잘할 수 있다. 말씀을 준비하는 사람은 매일 매 순간 말씀이 저절로 내 인격에서 울려야 한다.


설교를 잘하고 싶으면 최선을 다해라. 성령의 능력과 자신의 능력이 합해질 때 파워가 나타난다. 설교 준비하는데 얼마나 하는가?


미 상원을 담당하는 목사 오지빌이 은퇴할 때 기자 앞에서 질문을 받았다.

“다시 목사님께서 사역하실 수 있다면 설교에 대해서 어떤 점을 새롭게 하고 싶습니까?”

“설교를 위해서 연구하는 것과 준비하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싶습니다. 강단의 1분을 위해서 서재에서 준비를 위해 1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빨리 알아야 했습니다. ”

성경만 가지고 씨름하는 설교는 발전을 안 한다. 하나님께서 말하시는 자연적인 법칙을 무시한 것이다. 단어, 언어구사력에 한계가 있다. 그 한정된 단어와 구사력의 사이클이 돌고 돈다.


설교의 본문은 이미 월요일에 결정이 되어야 한다. 적어도 주석도 보고 본문의 배경도 봐야 한다. 바쁜 와중에도 새벽에서 아침시간까지 매일 씨름해야한다. 그래서 적어도 금요일 오전까지는 설교의 마무리가 되어야 한다. 원고가 끝나야 한다. 금요일부터 주일 설교까지 그 준비된 원고를 가지고 청중의 입장에 서서 듣는다는 가상 아래 그 설교를 검토해야 한다. 왜냐하면 설교자로서의 전문가의 위치에 서기 때문에 우리가 즐기고, 습관적으로 전개하는 논리가 있다. 그 중에는 회중에서 이해가 안되는 것도 있다. 그래서 하루 만큼은 회중의 위치에서 그 설교를 들어야 한다. 검토가 필요하다. 그래서 많이 고치게 된다. 해석도 잘못�다는 것을 안다. 항상 쉽게 표현해야 한다. 그만큼 설교가 회중에게 들리는 것을 중시하는 것은 원고를 쓰는 것만큼 중요하다.


존 맥스웰이 프리칭이라는 잡지 기자들과 이야기 하는 과정에서 “위대한 리더는 위대한 전달자이다.”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훌륭히 전달하지 못하면 훌륭한 리더가 되지 못한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설교자가 신경쓰지 말고 회중이 지금 어디에 있는 사람인가 인식을 먼저 해야 한다. 그 청중에게 합당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을 적절성이라고 한다. 그 적절성이 제대로 되면 회중은 어디로 새지 않는다. 적절성이 살아 있는 설교를 준비하는 데는 엄청난 시간 투자를 해야 한다.


제자훈련을 잘하면 이 적절성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 제자훈련을 하면서 그들의 수준이 어디에 있고, 그들에게 적절한 메시지가 뭔지도 알게 된다. 제자훈련을 잘하면 설교가 발전한다. 청중과 매치가 되는 설교를 할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의 다른 방향에서 평신도들이 은혜를 받을 수 도 있다. 그래서 제자훈련을 해야 한다. 청중이 있는 자리로 인카네이션 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처럼 사는 사람으로서 설교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의 귀를 끈다. 설교가 쉬우면서도 끌린다. 이것은 노력해야 한다.


설교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타날 때 메모를 해라. 무조건 메모를 하라. 이것을 설교에 반영하라. 발전한다.


연역적인 방법은 추상적일 수 있다. 그래서 박윤선 박사는 좀더 젊어진다면 더 구체적인 설교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설교는 적절성을 말하고 있다.


자기설교를 찾으라. 처음에는 서툴고 모르니까 카피도 할 수 있고, 모방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얼마동안의 과정이다. 자기 설교를 찾아야 한다. 감동을 주는 설교자는 자기설교가 있다. 특징이 있다. 무엇을 하든지 자기 것을 해야 한다. 방법도 그렇고, 구성도 그렇다.


교회성장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설교, 그리고 제자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