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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907년 한국의 부흥운동 (2)

가디우스 2009. 11. 2. 15:03

1907년 한국의 부흥운동 (2)

 

 박 기 호 박사 플러신학대 선교대학원 한국학부 원장/아시아 학부 교수

그 큰 각성이 한국교회의 영적인 재생을 가져왔다. 백성의 종교적 경험은 한국의 기독교회에게 독특한 성격을 지어주었다. 부흥에 이어 새로운 종교적 경험이 극도로 시련을 받았지만 도덕적이고 영적인 세력으로 존속되었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 그 부흥을 그들의 영적인 삶의 자원으로 되돌아보고 있다(Paik, History, 374).

 

한 선교사는 다음과 같이 보고 하였다: "우리 교회는 (죄)고백들로 순화되었고, 죄의 자각으로 강화되었으며 편만한 사랑의 성령으로 한 단계 상승되었다. 성령의 능력이 약한 사람들을 강하게 만들었고, 뒷걸음치던 여인들을 거룩한 삶을 영위하도록 만들었으며.... 잘못된 것들이 교정되고, 도둑질한 돈을 돌려주고,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종교적 재생의 시간들이 되었다"(Paik, History, 376; Northern Presbyterian Report for 1908, 302).

 

1) 영적인 재생과 도덕적인 삶의 변화: 요나단 고포드 (Jonatha Goforth)는 그의 책 "성령의 불이 한국을 휩쓸었을 때"(When the Holy Spirit's Fire Swept Korea, Jonathan Goforth, When the Spirit's Fire Swept Korea, Cavite, Philippines: Presbyterian Theological Seminary, n.d.)에서 남자 사경회에서 성령이 강권적으로 그들에게 임하였을 때 한국 성도들이 죄를 고백한 몇 개의 예를 들어주고 있다:

 

한 의사는 자기가 한국에서 가장 정직한 요리사들 가운데 한 사람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였으나(동양에서는 요리사가 모든 시장을 봄), 그 요리사가 죄의식을 갖게 되었을 때 그는 "나는 항상 의사를 속였고 내 집과 토지는 의사를 속여서 얻게 된 것이다"고 고백하였다. 그 요리사는 그의 집을 팔아서 그 의사에게 모두 돌려주었다.

 

한 선생은 선교부를 위하여 약간의 토지를 사도록 부탁받았는데, 그는 그 값이 500달러라고 말하고 그 땅을 샀다. 땅 값이 너무 비싸다고 반대하면서도 그 선교사는 돈을 지불하였다. 그 부흥운동에서 그 선생은 그 땅을 자기가 80달러에 샀다고 고백을 한 후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팔아 선교부를 속인 돈 420달러를 그 선교사에게 돌려주었다.

 

전쟁 통신원 메켄지 씨에게는 4달러를 속인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죄에 대한 책망을 받았을 때 80마일을 걸어서 한 선교사로 하여금 메켄지 씨에게 보내주도록 하였다. 메켄지 씨가 한국 기독교로 말미암아 더 좋은 신자가 되었다면 이상한 일일까?

 

어떤 사람은 의주에 자기 아내와 한 아들을 두고 다른 도시에 가서 부자가 되었다. 거기서 그는 다른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두 딸을 낳았다. 그의 영이 소생되었을 때 그는 그 여자와 그의 딸들을 후원할 대책을 마련해주고 의주로 돌아와 그의 합법적인 아내와 화목하였다. 만일 한국의 부흥과 같은 부흥이 이혼이 흔한 기독교 국가들에게 임한다면 사회적인 변혁이 일어날 것이다.

 

어떤 집사는 거의 완벽한 사람으로 떠받듦을 받았으나 부흥이 진행되는 동안 매우 불편한 듯하였다. 그는 구제헌금 중 일부를 훔쳤다고 고백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놀랐으나 평안을 되찾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그는 깊은 비탄에 빠져 있다가 7계명을 범한 사실을 고백하였다.

 

어떤 여인은 수일동안 지옥의 고통을 지나는 듯 하였는데 하루 저녁에 공적인 모임에서 자신의 간음죄를 고백하였다. 그 집회를 맡았던 선교사는 크게 놀랐다. 그녀의 남편이 그 집회에 출석 중이었고, 그 남편이 그 사실을 알면 그녀를 죽이는 것이 한국의 법에 저촉되는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 남편은 눈물을 흘리며 그 죄지은 아내에게 다가가서 무릎을 꿇고 그녀를 용서하였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그 여인에게 말씀하셨을 때 주 예수께서 어떻게 영광을 받으셨겠는가?

 

그와 같은 비범한 사건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교회들은 차고 넘쳤다. 많은 사람들이 조롱하러 왔다가 두려움 가운데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강도 두목이 호기심을 가지고 왔다가 죄 책망을 받고 개종하여 곧 바로 관리에게 찾아가 자수하였다. 그 놀란 관리는 말하기를, "고소한 사람이 없이 스스로 고소하였으나 한국에서는 당신의 건을 고소할 법이 없다"고 말하고 그를 돌려보냈다.

 

부흥운동 기간에 한 일본인 장교가 평양에 배속되었다. 그는 서양의 불가지론에 빠졌던 사람이었기에 영적인 일들을 경멸하였다. 여전히 그 이상한 변화들이 수많은 한국인들 뿐 아니라 심지어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했을 몇몇 일본인들 가운데서도 일어나고 있었을 때 그 장교도 놀라서 조사를 벌이기 위하여 집회들을 참석하였다. 결국 그의 불신은 사라지고 그는 주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되었다(Goforth, n.d., 12 14).

2) 관계 회복: 부흥의 또 다른 흥미

출처 : 남미선교문화원 "선교사의 집"
글쓴이 : Paulo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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