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양육/일반자녀교육

원로소설가 한말숙씨의 자녀교육법

가디우스 2007. 9. 7. 15:15

원로소설가 한말숙씨의 자녀교육법

 

“몸·정신 건강하면 성공 저절로 따라와요”

 

원로소설가 한말숙(76)씨와 국악인 황병기(71) 이화여대 명예교수 부부는 유명한 예술가 부부다. 한씨는 지난 93년 소설 ‘아름다운 영가’로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된 바 있고 황씨는 한국을 대표하는 가야금 명인이다.

 

여성단체로부터 ‘평등 부부’로 뽑혔을 만큼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이들은 네 자녀를 모두 인재로 키워내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한씨 부부의 두 아들은 서울대, 두 딸은 이화여대 출신이다.

 

문학박사인 첫째 혜경(45)씨는 남편을 따라 미국에 가 있다가 얼마 전 귀국했고, 둘째 준묵(44)씨는 고등과학원 교수, 셋째 수경(42)씨는 동국대 강사, 넷째 원묵(39)씨는 미국 MIT 바이오 메디컬 엔지니어링의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특히 아들 준묵씨는 지난 2001년 15년간 풀리지 않던 수학계의 난제 ‘라자스펠트 예상’을 증명한 세계적인 수학자다. “몸과 정신이 건강하면 성공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부부의 자녀교육론을 들어봤다.


공부는 아이들이 스스로 하게 놔둬야
 
한씨는 사석이나 공석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쳤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하지만 아이들 공부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대답할 말이 없어 난처할 때가 많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한자를 가르치고, 중학교 입학 전 1학년 1학기 영어 교과서를 미리 읽어준 것 외에는 따로 가르친 것이 없다. 한씨 부부는 1970년대 초반, 서울 아현동으로 이사 와 아이들을 모두 이곳에서 가르쳤다. 학교도 모두 강북의 공립학교를 보냈다. 걸어서 5분 거리에 공립학교가 있는데 굳이 먼 사립학교에 보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과외나 학원도 일절 몰랐다. 공부는 자기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게 부부의 생각이었다.

 

대신 연주회 등 일이 있어 외국에 나갈 때마다 아이들 책을 사왔다. 아이들은 ‘How does thing work?(사물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과학전집을 특히 좋아했다. 한씨는 “늘 책을 읽는 부모의 모습을 봐서인지 따로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저절로 책을 좋아하게 됐다”며 “독서는 부모가 모범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독서에 빠진 아이들은 고등학생 때 셰익스피어 원서를 읽을 정도의 수준이 됐다. 공부는 학교 선생님께 모두 맡겼다. 집에서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한 적도 없다. 남편 황 교수는 아이들이 밤 12시까지 시험공부를 하고 있으면 “건강에 나쁘다”며 불을 꺼버릴 정도였다.

 

 네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음악을 듣고, 책 읽고, 운동하고, 좋아하는 TV 프로그램까지 마음껏 봤다. 하지만 자유로운 생활 속에서도 아이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한씨는 “이런 변변치 않은 가정교육에도 아이들이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은 것은 모두 학교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이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신뢰 받는 아이로 키워야

부부는 자녀의 성적보다는 몸과 정신의 건강에 신경을 썼다. 학교에서 설문지를 보내 어떤 학교 교육을 원하는지 물었을 때도 “정신과 육체가 건강해지도록 교육시켜 달라”는 한 마디만 써 보냈다. 첫째 몸이 건강하고, 둘째 스승과 친구들이 신뢰하고 아껴줄 수 있는 인성 좋은 아이로 키우는 데 중점을 뒀다. 한씨는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하기 어렵고, 정신이 건강하지 않으면 만 가지의 지식도 소용이 없는 법”이라며 “아이들에게 남을 밟고 올라서서 성공하는 것보다 선후배와 동료들에게 신뢰 받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다”고 말했다.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라는 유교의 기본 덕목을 일찍부터 가르치고,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이려고 애썼다. 이런 가르침을 받은 아이들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부모에게 존댓말을 쓰고 행동거지 하나 함부로 하지 않았다. 특히 한씨는 친정어머니로부터 부모의 세수 수건을 쓰기만 해도 불호령이 떨어지는 엄한 교육을 받고 자란 터라 부모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지키도록 했다. 한씨는 “내가 먼저 시부모님을 예의 바르게 모시면서 모범을 보이니 아이들이 저절로 존댓말을 쓰고 바르게 행동했다”며 “자녀와 허물없이 친하게 지내는 것도 좋지만, 부모의 위엄을 분명히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으로 키워라

한씨는 아이들에게 겸손을 최고의 미덕으로 가르쳤다. 또 늘 1등만 하는 아이들이 자만심에 빠지지 않게 경계했다. 한씨는 아이들의 성적표를 보면서 항상 이렇게 강조했다. “참 잘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를 합해 6학년이니 너희 같은 아이들이 여섯 명은 있을 것이다. 또 서울과 우리나라에 학교가 얼마나 많으냐? 전 세계적으로 보면 너희 같은 아이들이 몇 천만 명 있을 것이다. 그러니 자만하지 마라.”

 

넉넉한 가정살림에도 학교에 갈 때 늘 수수한 옷을 입혀 보냈다. 옷은 단추가 제대로 끼워져 단정한 모습이면 그만이었다. 아버지는 대학 강사, 어머니는 소설가라고 했으니 아이들의 옷차림을 보고 선생님들이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이라고 오해한 적도 있었다.

 

어려서부터 ‘겸손’을 배우고 자란 아이들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자랑하는 법이 없다. 둘째 준묵씨가 ‘라자스펠트 예상’을 증명하고 큰 상을 받게 된 일도 신문을 통해 알았을 정도다. 한씨는 “요즘 부모들은 자식이 남에게 뒤질세라 급급한 나머지 평범하고 기본적인 자녀교육 원칙을 잊고 있다”며 “내 아이를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신뢰 받는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있는가를 스스로 한 번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