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양육/일반자녀교육

때로는 이야기꾼이 되자

가디우스 2007. 9. 7. 14:38
때로는 이야기꾼이 되자

화를 못 참는 소년이 있었다.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누구에게나 화를 내고 떼를 부렸다. 어느 날 아버지가 소년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얘야, 앞으로는 화를 낼 때마다 저 울타리에다가 못을 하나씩 박아라.” 아버지는 못이 가득 든 자루를 주었다. 첫날 소년은 17개의 못을 박았다. 다음 날은 12개 박았다. 매일 못을 박으면서 소년은 화를 내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러다 마침내 어느 날 소년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오늘은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어요. 그래서 못을 박지 않았지요.”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구나. 지금부터는 네가 한 번씩 화를 참을 때마다 저 울타리에 박힌 못을 하나씩 빼 내거라.”

다음날부터 소년은 못을 빼내기 시작했고, 어느 날 울타리의 못을 모두 빼내게 되었다. 소년이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말하자 아버지는 소년을 데리고 울타리로 나갔다. “얘야. 못을 모두 빼내었지만, 보이지? 울타리의 못 자국은 없어지지 않는구나.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것도 그렇단다. 나중에 네가 사과를 해도 마음 속 상처는 저 자국처럼 남는 거야.”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가. 사람들은 충고나 훈계보다는 이야기 듣기를 좋아한다. 멋진 이야기에 매료되었던 경험 없이 성장하는 아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두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좋아하는 이야기에도 어떤 패턴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네댓 살 이전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대목이 있는 단순한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듣고 싶어 하던 아이는 좀 크더니 재미있는 이야기, 무섭거나 희한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학교에 들어간 후는 제법 기승전결이 있고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마 그때마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통해 공감·유머·슬픔·동정·정의감 등의 정서를 발달시켰을 것이다.

스토리텔링이 강력한 것은 이야기가 듣는 사람의 마음에 연결돼 지워지지 않는 인상을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야기꾼이 되어 이야기를 들려줄 때, 듣는 사람은 그 의미를 자유롭게 탐색하고 적용점까지 발견하게 된다. 상대에게 필요한 멋진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코칭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부모로서 아이에게 하고 싶은 충고나 훈계가 매우 옳게 느껴지더라도, 그것을 내려놓고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는 것으로 대신해보자. 이야깃거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사실 우리의 삶 그 자체가 이야기의 보고다. 초등학교 아들에게도 나는 사회생활에서 보고 겪은 일들을 자주 들려준다. 어떤 실수담, 특이한 사람, 감동적인 이야기 등등. 물론 이솝우화를 비롯한 이야기책과 영화, 신문기사 등이 모두 훌륭한 소재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소재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센스에 있는 것이 아닐까.

또 한 가지, 스토리를 말할 때 주의할 점이 있다. 이야기를 할 때 교훈까지 정리해주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 그것은 듣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두자. 원래 이야기꾼은 가르치려 들지 않아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다.
(글:고현숙,한국코칭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