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제자훈련

평신도 목회 훈련 장애

가디우스 2007. 9. 6. 17:27
평신도목회훈련

교회에서 평신도목회 훈련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데에 방해될 수 있는 몇가지 장벽들이있다.

장애물 1번: 어떤 목사들은 평신도 목회의 개념(concept)에 대해 위협을 느낀다.

목사들에 대한 해답:
목사들이여, 우리가 두가지 것에 대해 오해하기 쉽다. “평신도의 해방"(liberation of the laity)은 평신도를 사역에 해방시키는 것이지, 그들을 무질서로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다. 평신도 목회에 대해 강조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목사들은 그들의 평신도들이 교회의 삶에 있어 불필요하게 주장적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전혀 우리가 제안하는 것이 아니다. 평신도 목회는 평신도들로 하여금 그들의 은사를 활용토록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여러분의 목회를 성취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신의 목회는 평신도들을 훈련시키고 구비 시키는것에 따라서 많은 분야에서 증대될 것이다. 목사들은 평신도목회의 개념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평신도에 대한 해답:
평신도들이여, 목사들이 가끔 두려워하는 이유들 중의 하나는 어떤 교회들에서 평신도들이 너무 주장적이 되어 목사가 리더십의 은사를 실행할 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불행한 것이다. 여러분이 확실히 해야하는 방법들 중의 하나는 평신도 목회에 대한 훈련을 요구하는 것이 당신은 목회에서 함께 동역자가 되기를 바란다는 것을 당신의 목사가 알도록 하면서 당신의 목사를 위협하지 않는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목사가 당신의 은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을 사용하는 법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당신의 목사가 알도록 해야한다.

장애물 2번: 어떤 목사들은 평신도 목회에 대한 훈련을 제공하기에 하다고 느낀다.
목사에 대한 대답:
목사들이여, 이것은 이해가 가는 것이다. 학부나 신학교의 모든 가르침에서 대부분의 우리는 그들의 목회를 위해 평신도를 훈련시키는 방법에 대한 알맞은 훈련을 받지 않았다. 우리는 직업적인 성직자가되는 것에 대해서 배우긴 했지만, 목회하도록 다른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니었다. 우리가 부적합하다고 느끼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우리 목회 준비를 위해 여러 개의 신학교에 다닌다. 전부다 좋은 기관이고 좋은 학교였으며
또 함께 했던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방법에대해서는 별로 훈련을 받지 못했다. 우리는 목회를 해가면서 배우고 있다.

목회자들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 중에 하나는 정직해저는 것이다. 우리가 특별한 목회를 이루려고 노력 할때에, 그리고 우리가 부적합하다고 느낄때에,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좋다.

훈련과정을 위해 부적합하다는 느낌을 갖는 것은 전혀 문제가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우리의 부적합성을 부정하거나 감추려고 한다면 평신도들은 이해하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낫고, 그리고 목회를 위해 다른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우리의 능력을 개발하려고 애쓰는 것이 필요하다.

평신도에 대한 대답:
평신도들이여, 여러분은 우리 목사들에 대해 인내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들중에 어떤이들은 목회를 위해 당신을 훈련시키는 방법에서 충분한 훈련을 받지못했다. 만약 당신이 충분한 시간을 주고 우리의 실천에서 실패하는 것에 자유롭도록 허락 해준다면 우리는 여려분을 더 잘 훈련시키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다른 말로 여러분에게 우리에 대해 인내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 감사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러분의 다양한 사역들을 위해 여러분을 더 잘 훈련시키는 방법을 정말 배우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장애물 3번: 어떤 목사들은 평신도목회 훈련은 필요치 않다고 느낀다.

목사들에 대한 대답:
교회갱신이라는 것은 목사가 그것이 일어나기를 원치않거나 그렇게 할수없기에 그런 바램과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술의 부족이나 조심스런 선택을 통하여 목사는 평신도에게 그들의 목회를 충분히 실행도록 하는데 필요한 훈련을 제공하지 않았다. 만약 훈련이 필요치 않았다면 그들은 평신도들로 사역에 참여토록하는 기회들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회갱신에 대해 목말라함은 목회에 대한 평신도들의 어려움이다. 그것에 대한 책임들을 갖는 것에 대해 실패함보다도 성직자에 의해 더 방해받았다.

평신도-하나님의 전체 백성-는, 목회는 하나님의 전체 백성의 책임이라고 주장하는 성서적 유산의 입장에서 목회에대해 책임을 받아들이고, 성직자는 목회를 위해 평신도를 구비시키는 할수있게 하는 사람(enablers)이 되어야한다. “평신도의 문제”는 사실 평신도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성직자의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평신도를 위해 필요한 훈련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평신도에 대한 대답:
평신도들이여, 우리가 여러분의 앞길에 놓을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장애물들의 하나이다. 만약 여러분의 목사가 평신도목회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솔직히 말하고, 사실 당신이 할수있는 것은 거의 없다. 나는 여러개의 평신도들 그룹에 초청받아 평신도목회에 대해 세미나를 하였다. 나는 약간 주저함이 계속 있었는데, 왜냐하면 듣는 그들(평신도)은 너무 좋고 가능성을 가지지만 막상 교회에 돌아가서 담임목사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때 허탈감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목회를 위한 훈련된 평신도를 보기를 정말로 원하는 목사들을 갖는 평신도들은 사실 행운이다. 그러나 때때로 평신도들은 목회에 포함되는 방법에 대해 격려 받지 못한 입장에 있는 자신들을 발견한다.

만약 당신의 목사가 평신도목회훈련이 필요 없다고 느낀다면 나는 당신에게 이렇게 격려하겠다: (1)당신의 목사를 위해 진지하게 기도하라; (2) 당신의 관심을 나누기위해 당신의 목사와 만날 약속을 하라; (3) 당신의 목사에 대해 포기하지마라. 우리목사들은 변화될 수 있다; (4) 개혁 운동가가 되지 말라; 목사반대 운동을 하기위해 당신 주위에 다른 사람들을 모으려고 하지말라; (5) 기다림의 영적인 은혜를 배우라.

장애물 4번: 어떤 평신도들은 평신도목회 훈련에 대해 위협을 느낀다.
목사에 대한 대답: 목사들이여, 우리는 평신도들이 “이것이 목회에 대해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목사가 아닌데! 우리는 그것을 위해 월급을 주고 있는데”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평신도들은 “목사님이 하도록 해!”그가 봉급을 받잖아“ 라고 말할 것이다. 어떤 평신도들은 그들이 목회자들이고 그들은 목회들을 가지고 있다는 아이디어에 대해 단순히 놀라곤 한다. 만약 그런 경우라면 우리는 그들에게 감정적으로 동요되는 충분한 시간을 그들에게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에게 시간을 주라.

움직이는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라. 그것에 대해 위협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과 하라 두려움을 갖는 사람들은 그들 주위에서 작용되고 있는 의미있는 평신도목회를 보도록하라. 이것은 우리 어떤 말로 하는것보다도 그들의 두려움을 더 해결해줄 것이다. 그것을 단순히 하고, 인내하고, 그리고 중요한 목회훈련에 당신과 함께 할 사람들을 찾도록하라, 때가 되면 위협을 가졌던 사람들은 그들은 또한 목회자라는 아이디어대해 더 안정감을 느끼는 것을 배울 것이다.

평신도에 대한 대답:
평신도들이여, 당신들중에 어떤이들은 평신도 목회에 대한 토론에 의해 별로 위협을 안느낄 수 있다. 그러나 어떤이들은 사실 위협을 느끼기도 한다. 만약 당신이 이런 범주에 속한다면 당신은 당신이 사역에 포함되기를 주저한다는 것을 당신의 목사가 인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은 아마 과거에 어떤 특별한 사역을 하려하다가 실패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또는 당신이 사역에 동참되었다가 실망하거나 낙담한 경험을 겪었을 것이다. 당신의 과거 경험을 통해 평신도 목회는 깜짝 놀라게 하거나 또는 반감을 갖게 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장애물 5번: 어떤 평신도들은 부적합하다고 느낀다.

목사에 대한 대답:
목사들이여, 이것은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 한다. 대부분의 평신도들은 여러분이 그들에게 하기 원하는 목회를 위해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다. 목사들이여, 우리는 첫 번째 설교 할때를 잠시 되돌아볼 수 있다. 우리는 설교에 대해 어느 정도의 훈련은 받았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두려워하고 있다. 대부분의 목사들은 학부에서 4년, 석사과정에서 3년을 훈련받았다. 그러나 처음 부임한 교회에서 몇 주간은 두려움에 쌓여있다. 왜 그런가? 그것은 새로운 경험이기 때문이다.

많은 평신도들은 다양한 사역들에 대해 놀라게 되는 이유가 더 많은데, 왜냐하면 그들은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일을 하도록 요구는 되었지만, 그들이 기대하는 도움은 별로 받지 못하고 있다. 모든 평신도가 부적당함은 느낀다고 생각지 말라. 어떤이들은 지나친 확신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할수 없다. 나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될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나는 훈련이 필요하고 나는 도움이 필요하다. 당신(목사)은 그것을 나에게 제공할 수 있는가?”이다.


평신도에 대한 대답:
평신도들이여, 당신이 부적합하게 느끼는 것은 정상적이다. 우리모두 다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할때에 그런 느낌을 갖는다. 폴 크레델(Paul Cladell)은 그의 책 [세이틴 슬리프 (The Satin Slipper)]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하나님은 굽어진 선으로 똑바로 쓴다.” 내가 생각하기로 하나님은 우리의 부적합성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를 통해 역사할 수 있다 라는 것을 그는 말했다고 본다. 당신은 바로 그 분이 당신을 통해 확실히 성취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부적합하다고 느끼는 것은 오히려 그분께 당신을 통해 역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나타내는 기회를 드리는 것이다.

당신을 평신도목회자로서 효력있게 만드는 것은 당신의 달란트나 부적합의 느낌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그분께 드리는 것이고 그래서 그분이 당신을 통해 역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평신도로서 평신도목회에 포함되는 것에 대해 부적합성을 느끼고 있다면 당신의 목사에게 말하라. 당신의 목사로 하여금 당신이 목회에 동참되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하라. 그러나 당신이 어떻게 부적합성을 느끼는지 알게해야 한다.

장애물 6번: 어떤 평신도들은 훈련이 불필요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목사에 대한 대답: 우리는 젊어서 ccc 훈련을 받고 또 사역을 해본 경험들이 있다. 내가 전도하고 훈련시킨 한 사람은 헌신적이었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어느 누구에게 말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이 방면에서 하나님께 사용되기를 바란다고 표현했다. 나는 전도훈련이 그에게 정말 도움이 된다고 느꼈다. 내가 그에게 그런 훈련을 받으러 같이 가자고 말했을 때 “내가 모르는 것을 가르치지는 않을 것이다.” 라며 가기 싫어했다.

그의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혹시 다른 교회에 가서 잘 알지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훈련받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로 그는 너무 지나치게 자신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의 믿음을 잘 나누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훈련은 근본적으로 불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런 장애물에 부딪칠 때 목사로서 우리는 어떻게해야 하는가? 어떤 경우에는 이슈에 대해서는 별로 논의하지 않고 목회의 현장으로 가도록하는 것이 최선일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의식적으로 인식치 못하는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어려울 경우도 있다. 평신도가 바램을 표현하거나 훈련의 필요성을 얘기할 때 당신은 조직화된 훈련 프로그램을 얘기할 수 있다.

평신도에 대한 대답;
아마도 여러분중 거의 대부분은 이런 장애물을 잘 확인치 못할 것이다. 능동적인 평신도 여러분은 당신이 목회에 가능할 뿐만 아니라 구비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중에 저항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여러분을 저항하는 것은 우리 목사들에게 있어 어려운 일이다. 여러분은 어떤 특별한 사역에 있어서는 우리가 하는 것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느낄때 가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당신의 아마 맞기도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당신의 목사는 다른 많은 교회 상황에서 겪은 그의 경험과 배운것에 의해 당신을 상당히 도울 수 있다.

'신앙 > 제자훈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존웨슬레의 평신도목회  (0) 2007.09.06
은사의 발견  (0) 2007.09.06
알맞은 사역을 발견하기  (0) 2007.09.06
사역에로의 파송  (0) 2007.09.06
평신도목회에서 우선권  (0) 2007.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