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양육/일반자녀교육

[스크랩] 전남일보 12월 5일자 칼럼 <서석대>-자녀교육

가디우스 2007. 9. 12. 12:13
자녀 교육
 요즘은 공공 장소에서 남의 이목을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는 청소년들을 보고도 타이르기가 겁난다. 한 마디 했다가 공연히 낭패를 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뭔데' 하면서 눈 치켜들고 대들기라도 한다면…. 그러다 보니 뻔히 지적해야 할 것도 못본 척 스쳐 지나간다. '애들 기(氣)살린다'는 이유로 웬만한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어도 꾸중조차 하지 않는단다.

 조선 정조의 나이 11살 때, 아버지 사도세자는 할아버지 영조에 의해 쌀뒤주에 갇혀 숨을 거뒀다. 그러나 정조는 그 불우한 환경을 딛고 조선 후기 최고의 왕이 됐다. 조선 전기에 왕조의 체계를 완성한 성종은 연산군을 낳았다. 그 위대한 왕에게서 포악한 연산군이 태어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차이가 생길 수 있을까. "어질고 현명한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있었기에 정조는 성군이 됐고, 질투와 분노로 일관한 어머니 폐비 윤씨 탓에 연산군은 폭군이 됐다."('조선 왕실의 자녀교육법' 중에서)는 것이다.

 강진 출신인 동원산업 김재철 회장의 자식 교육은 이랬다. 대졸 장남은 참치잡이 배를 태웠고 차남은 통조림 공장에 생산직으로 보냈다. 동료들이 회장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모르게 했다. 두 딸은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는 교육 이념을 가진 가나안학교에 보냈다. 밑바닥 애환을 알지 못하면 대기업을 이끌어갈 수 없다는 경영철학에서다.

 현대 정주영 회장은 새벽 5시면 출가자녀들까지 집으로 불러 함께 식사를 했다. '근면'과 '성실'이란 가풍을 일깨우기 위해서였다.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한결같이 부지런하면 천하에 어려움이 없는 법이다)라는 '밥상머리 교육'이었다.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희아 어머니 우갑선 씨의 자녀교육은 감동을 준다. 우씨는 희아의 신체적 결함을 한 번도 탓해 본 적이 없다. 희아의 신체 가운데 남아 있는 부분에 철저하게 감사하도록 교육시켰다.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하루 10시간씩 5년간 손에 피가 나도록 연습시켰지만 절망을 했을지언정 장애를 원망하지 않았다. 결국 희아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냈다.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강한 믿음과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학벌과 학연이 중요한 사회. 혹여 옆집 아이가 다니는 학원에 안 보내기라도 하면 나중에 '무능한 부모'라는 원망을 들을까 봐 허리띠를 조인다. '인성이 중요한데… ' 라는 생각은 그야말로 생각 뿐이다. 명문가들의 자식 농사를 보면 한결같이 자신에게는 혹독하면서 남을 '배려' 하도록 교육시켰다. 내 자식에게는 어떻게 하고 있나 생각해 볼 일이다.
 나종경 논설실장
출처 : 민족유산연구회
글쓴이 : 배려(나종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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