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의 저주를 끊어야 산다'는 사이비성 禁書
예장 통합 이대위, 위험성 경고와 가르침 금지 결정
김성원 kerneli@newspower.co.kr
이윤호 목사의 '가계의 저주를 끊어야 산다'(베다니출판사)는 책으로 출판되어 기독교 서점가에서 장기간 베스트셀러로 팔려나가며 '가계 저주론'을 설파했던 이 책의 가르침이 사이비성이 농후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예장 통합(총회장 안영로)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위원장 황승룡)는 최근 회의를 갖고, 제91회 총회에서 보고할 이첩 안건 중 일부 알파코스 세미나의 필독서로 사용되고 있는 '가계저주론'과 관련된 도서에 대해 사이비성이 농후하다고 판단하고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 읽거나 가르치는 것을 금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대위는 또 삼보일배도 금지시켰다.
가계 저주론에 대한 예장(통합) 이단대책위원회의 결정문
이윤호 목사 등의 가계저주론(91회기)
2006-09-29
1. 연구 배경
서울북노회의 “이단성 여부 질의서”(서북노회 제45-40호, 2006.4.4) 의 건이 총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로 이첩(예장총 제90-584호, 2006.4.17)되어 연구에 착수하다.
2. 질의 개요
알파코스 세미나 참석자들에게 필독서로 제시된 메릴린 히키의 가계의 흐르는 저주를 끊어라(베다니출판사, 1997)와 이윤호의 가계에 흐르는 저주 이렇게 끊어라(베다니출판사, 1999)에는 예수를 믿어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저주가 있다는 가계저주론을 주장하고 있으며, 이 저주를 끊기 위해 동서남북을 향해 ‘저주받은 귀신아 물러가라’고 축사하도록 가르치고 있는 데, 이는 김기동 씨의 조상마귀론과 동일하므로, 우리 교단의 신앙과 신학에 위배됨이 없는지 질문하다.
3. 연구 결과
1) 가계저주론의 배경
가계저주론은 1972년 케니스 맥콜이란 미국의 정신과의사가 처음 주장했으며, 1986년 제이 헴프쉬에 의해 신학적 이론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메릴린 히키(가계의 흐르는 저주를 끊어라, 베다니출판사, 1997)와 이윤호의 저서(가계에 흐르는 저주 이렇게 끊어라, 베다니출판사, 1999)가 출판되어 국내에 널리 알려졌고 1997년 이후 「빛과 소금」, 「목회와 신학」, 「교회와 신앙」을 통해 가계저주론에 대한 수많은 비판이 제기되었다.
2) 신관의 문제
가계저주론은 하나님의 심판을 저주로 오해하고, 저주를 저주로 끊는 흑주술(黑呪術)을 주장한다. 이윤호 목사는 “하나님은 유전적인 복과 저주의 법칙을 선포”(92 쪽)하였으나 가계의 축복 보다 가계의 저주가 더 강하다고 주장한다. 성서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저주는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으로서 아버지가 자녀의 잘못을 채찍하는 사랑의 징계요 이를 통해 회개를 촉구하는 또 다른 구원과 은혜의 방편이임에도 불구하고 성서를 인용하되 삼사대의 저주만을 굵은 활자로 강조하고 수천대의 은혜는 약화시키며(출 20:4-6 등)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을 저주의 하나님으로 왜곡시킨다.
그리고 조상들의 죄가 저주가 되어 후손에게 대물림 된다는 가계에 흐르는 저주는 “하나님의 영적 원리”(92 쪽)로서 “하나님 자신도 자신이 정한 법칙을 지킬 수 밖에 없다”(108 쪽)고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은 자신이 정한 우주의 법칙에서 자유하므로 죽은 자도 살릴 수 있고, 자신이 정한 율법에서 자유하므로 율법을 범한 자일지라도 무조건 용서하시는 절대 자유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가계저주론은 자신이 자신에 대한 무의식적인 저주나, “부모가 자녀들에게 무심코 한 말은 자녀를 통해 저주의 효력을 나타낼 수 있다”(104 쪽)고 한다. 그리고 메릴린 히키는 마귀와 마귀의 역사를 저주하고, 포르노를 저주하고, 근친상간을 저주하라고 가르친다(159 쪽). 가게에 흐르는 저주는 저주로 끊으라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만이 인간의 범죄에 대한 심판의 방법으로 저주하실 수 있는 분으로 가르친다. 그리고 성서는 “하나님이 저주치 않으신 자를 내 어찌 저주하리요”(민 23:8)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한 다른 사람에게 행한 저주는 실제적인 효력이 없다고 가르친다. 사람이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행한 저주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가계의 저주로 실행된다거나, 저주를 저주로 끊을 수 있다는 주장은 인간도 하나님처럼 의로운 심판의 저주를 행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는 전형적인 흑 샤만(black Shaman)의 흑주술(black magic)로서 비성서적이고 비기독교적인 것이다.
3) 기독론 및 구원론의 문제
가계저주론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불완전한 영적 구원으로 제한하고 왜곡한다. 이윤호 목사는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았다고 해서 모든 저주에서 해방된 것은 아니며”(151 쪽), 신자가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은 영이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이요 “조상의 죄 및 저주에서 우리의 혼과 몸은 완전히 해방된 것이 아니다”(132 쪽)고 한다.
이러한 가계저주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을 영적인 것으로 제한하지만, 예수는 분명히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눅 3:6)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갈 3;13) 우리를 심판하실 그리스도께서 저주의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인류의 모든 저주와 심판을 친히 담당하심으로 우리의 영혼육의 온전한 구원을 약속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계저주론은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불완전한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혼과 육신은 세상과 사탄의 공격 및 조상의 죄로 인하여 대물림된 저주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할 필요”(131 쪽)가 있고 그 방식은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저주로 끊는 축사의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육신과 혼의 구원은 영의 구원과 다른 방식으로 얻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이중구원론은 구원론의 왜곡이다. 성경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롬 8:1-2)이라고 가르친다.
우리가 이미 영육 간에 전적으로 구원을 받았으나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곤고함과 환란과 핍박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3)고 하였다. 그래서 날마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고 했으며, 저 천국의 완전한 구원을 소망함으로서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는다”(롬 8:24, 요 5:24)고 하였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내가 주님의 품에 안기기 전에는 참된 안식이 없나이다”고 고백하였다.
따라서 가계저주론은 사죄의 확신과 구원의 기쁨과 천국의 소망을 약화시키고, 그리스도 안에서 옛 사람은 죽고 날마다 새사람으로 사는 복음적인 신앙의 도리를 가계의 저주를 끊는 일시적이고 편협하고 도구적인 미신으로 전락시킨다.
4) 귀신신앙의 문제
가계저주론은 영적 미혹과 귀신신앙을 부추긴다. 이윤호 목사는 “가계 영들은 세대를 걸쳐 한 가계에 비슷한 감정적 문제, 뇌, 질병 혹은 중독증 등의 문제를 야기”(118 쪽) 시키는 ‘영적 쓰레기’라고 한다. 가계의 영은 가문의 영, 성씨의 영 또는 가문귀신 또는, 성씨 귀신(185 쪽)으로도 불리며, 가계에 흐르는 ‘영적 쓰레기’가 이러한 영들을 불러들이는 모이이므로 이를 제거하면 쥐에 해당하는 악한 영은 무력해 진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가문 귀신이나 성씨 귀신’은 성서에 없는 표현이며, 이러한 귀신을 저주하고 쫒아내어야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무당적인 조상귀신 신앙을 부추겨 복음적인 신앙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가문의 영이나 성씨의 영’ 외에도 공유의 영, 복수의 영, 마약의 영, 죽음의 영, 슬픔의 영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잡다한 영들의 존재 역시 성경에도 없는 비기독교 주장이며 이로 인해 영적인 불안감과 영적 미혹에 빠지게 한다.
심지어 개인상담과 기도를 통해 5대 조상의 유배로 인한 복수의 영이 가계에 흐르는 것을 알게 되었다(28 쪽)고 하는데, 본인도 모르는 다른 사람의 5대조 조상의 문제를 알아내는 것은 점쟁이나 복술가의 행동이며,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자들을 가증하게 여긴다고(신 18:9-14) 가르친다.
5) 축사기도문의 문제
가계저주론의 축사방법이나 축사기도문은 주술적 유사 주문(呪文)으로 보인다. 이윤호 목사는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는 방법으로 조상들의 모든 죄를 공개적으로 대신 회개하거나, 동서남북을 향해 ‘저주받은 귀신아 물러가라’고 축사하도록 가르친다. 그러나 가계에 흐르는 그 많은 저주 목록들이 단지 ‘저주받은 귀신아 물러가라’고 인간이 외친다고 그 모든 저주가 실제로 끊어져서 모든 문제가 일시에 해결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의지하기 보다는 ‘귀신아 물러가라’는 무력한 인간적인 외침에 의존하게 만든다.
가계 저주를 끊는 처방으로 제시된 여러 기도문에는 성씨 귀신 등을 ‘대적하노라, 선포하노라, 추방하노라, 금하노라, 명령하노라’(185 쪽) 등등의 명령형의 유사 주문(呪文)이 뒤섞여 있다. 메릴린 히키의 기도문에도 이와 유사하게 하나님 아버지와 동시에 ‘사단과 귀신의 세력들’ 그리고 여러 종류의 악령들이 기도의 대상으로 묘사된다(282-283 쪽). 무엇보다도 이들이 제시한 기도문에는 기도의 대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과 성씨귀신을 비롯한 온갖 악한 영과 귀신들이 번갈아 등장하고, 하나님에 대한 간구와 귀신에 대한 저주가 동일한 기도문에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하나님 신앙과 귀신신앙을 혼돈하도록 만들고 하나님의 절대성에 대한 확신 보다는 비정상적인 영적 두려움과 미신적 귀신신앙으로 미혹할 우려가 있다.
그리고 저주의 성격에 다라 서로 다른 무수한 기도문을 제시하여 마치 이러한 기도문 처방이 주님이 가르치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다만 악에서 구합소서”라는 주기도문 보다 더 효력이 있는 일종의 유사 주문(呪文)과 같이 사용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
6) 운명론의 문제
가계저주론은 인간의 모든 질병과 고통 등을 조상의 탓으로 돌리고, 성서가 가르치는 유익한 고통도 부정하는 운명론이다. 이윤호 목사는 제시하는 가계저주의 목록에는 육체적 정신적 질병, 가난, 실패, 불임, 유산, 가정불화, 동성애를 비롯한 성적 문제, 각종 사고, 주술적인 행위, 모든 종류의 중독, 거식과 폭식, 과소비와 낭비벽, 성격장애 등이 포함된다. 메릴린 히키는 안경을 쓴 것(110 쪽)과 딸만 낳는 것도 조상의 저주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인간의 여러 고통에는 유전적 기질적 요인과 가정 환경적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모두 조상들의 죄의 결과인 저주라고 단순화할 수 없다. 자연 생태적 환경적 요인과 사회 정치 환경적 요인도 허다하다. 무엇보다도 개개인의 잘못이나 범죄(犯罪)로 인한 것이 더 많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가계저주론은 자신의 잘못을 조상의 탓으로 돌려 운명론을 부추기며, 자신의 죄책을 회피하여 예수께서 요구하신 ‘회개’를 거부하고 오히려 죄악 된 생활에 안주하게 한다.
성서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고후 5:17) 하였음으로 불구하고 가계저주론은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앙인도 과거의 죄, 그것도 조상의 죄에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갇혀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가계저주론은 모든 고통을 가계의 저주로 돌리고 성서가 가르치는 유익한 고통, 자기 십자가를 지는 고통조차 부정한다. 예수는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에 대해 조상의 죄나 자신의 죄 때문이냐는 바리세파의 저주론을 거부하고, 그 소경된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다고 가르쳤다(요 9:2-3). 가계저주론에 의하면 무수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헬렌 켈러는 저주 중의 저주를 받은 자이겠지만, 헬렌 켈러는 자신의 장애를 통해 그 누구보다도 크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것이다. 이처럼 성서는 가계저주론과 다르게 고난은 모두 저주가 아니며, 믿음 안에서는 현재의 고난이 장차의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롬 8:18)고 가르친다.
7) 연구결론
이윤호 목사와 메릴린 히키의 가계저주론의 신관, 기독록 및 구원론, 귀신신앙, 축사기도문, 운명론의 문제점 등을 살펴 볼 때 성서의 가르침과 교회의 신앙과 신학에 위배됨이 현저하고 사이비성이 농후 하므로 이들의 책을 읽거나 가르치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금해야 한다.
8) 참고문헌
메릴린 히키(1997),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 베다니출판사.
이윤호(1999),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 베다니출판사.
이윤호, 크레프트(2005), 가계의 복과 저주전쟁에서 승리하라, 베다니출판사.
소재열(1999), 가계에 흐르는 저주 성경적인가, 말씀사역.
김홍기(2003), 가계저주론, 그 실체를 밝힌다, 예영.
김정우, “언약의 저주에서 본 소위 ‘가계에 흐르는 저주 신학’의 문제점”, 「목회와 신학」 1999년 3월호.
김철홍, “이윤호 목사의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에 대한 비판”, 「교회와 신앙」 1999년 8월호.
도한호, “죄악은 개인의 책임, 연대성은 없다.” 「빛과 소금」 1997년 7월호.
목창균, “세대에 흐르는 저주는 성경적인가”, 「빛과 소금」 1998년 9월호
송제근, “모세오경에 나타난 저주에 대한 신학적 접근”, 「목회와 신학」 1999년 3월호.
이관직, “‘가계저주론’에 대한 목회상담학적 이해와 비평”, 「목회와 신학」 1999년 3월호.
이문식, “가계 치유에서의 ‘조상 탓 신앙’의 문제점”, 「목회와 신학」 1999년 3월호.
이성훈, “복음의 능력을 재발견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목회와 신학」 1999년 3월호.
장운철, “‘가계저주론’을 차단하라”, 「교회와 신앙」 1999년 10월호.
정훈택, “하나님의 사역인 축복과 저주”, 「목회와 신학」 1999년 3월호.
오광만, “‘가계에 흐르는 저주 이론’은 과연 성경적인가”, 「교회와 신앙」 1999년 10월호.
정훈택, “이윤호의 가계저주/치유론 비판”, 「교회와 신앙」 1999년 10월호.
예장 합신측 총회, “이윤호 목사 가계저주론은 위험하고 악한 사상”으로 규정(1996년 86회 총회)
(편집자 주)
알파코스는 빈야드 운동과 동일한 사역의 철학을 가지고 합력하고 있으며, 또한 알파코스는 가계저주론을 사역의 중요한 원리로서 채택하고 있습니다.
'알파관련자료 > 알파(ALPHA) -요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파코스 금이빨 등 성령사역 중단 (0) | 2007.09.05 |
---|---|
[스크랩] 알파코스와 은사주의 (0) | 2007.09.05 |
[스크랩] 알파/PK/펜사콜라/빈야드/PK/관상/뜨레스/신사도/G12/다 한통속들.... (0) | 2007.09.05 |
[스크랩] 알파를 해부한다. (신길교회 카페 펌) (0) | 2007.09.05 |
[스크랩] 통합총회 앞둔 알파코스 봐주기 좌담 행각 (0) | 2007.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