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이 사람을 돌리다!
‘직장생활 15년만의 개가’라고 말하면 과장된 표현일까? 하여튼 도요타연수 명단에 올랐다는 회사의 통보를 받고 느낀 짤막한 나의 소회는 그랬다.
내돈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던 기억 속에는 직장생활 10년 정도 하면 회사에서 보내주는 해외연수 한 번 정도는 다녀오는데, 얼마나 못났으면 감격스럽기까지 할 정도일까 스스로 의문도 들었다. 여러 차례 기회가 있었지만 양보가 미덕이라 참았던 기억들이 얼핏 떠울랐다.
비행거리 1시간 20분 정도면 닿는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초일류기업을 방문한다는 연수프로그램은 나를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다꽝과 와리바시시대를 넘어 사무라이가 전국을 통일하고 가미가제로 세계를 놀라게 하더니, 패망후 개털이 된 이후 워커홀릭(일개미)으로 초일류 기업을 일군 나라. 본토 부동산값으로 전 미국대륙을 사고도 남는다는 부자나라에 대한 방문은 ‘녹차’와 ‘임진왜란’에 편집증적인 관심을 갖고 있는 나를 조금은 들뜨게 만들었다.
지인들끼리 나눠 마시며 즐기던 야생 작설차를 녹차라는 이름으로 대량 재배해 대중화한 나라, 풍신수길이 전국통일 이후 2천여 척에 달하는 아다케(안택선)와 세키부네(관선) 대선단을 급조해 20만명에 가까운 사무라이들에게 릿본도와 조총을 들려 조선땅에 상륙, 도륙을 일삼았던 나라, 일본을 5일간의 일정으로 돌아보며 그네들 구석구석을 샅샅이 훑고 오리라는 마음가짐이었다.
<덴소, 자동화와 완벽한 물류가 강점>
호텔에서 하루 휴식을 취한 우리는 이튿날 오전 첫 방문지로 나고야 인근에 위치한 도요타그룹의 덴소를 찾았다. 2차대전 패망이후 1949년에 1,500만엔으로 설립된 덴소는 2005년 23조원대의 매출과 1조1천억원대의 순이익을 내고 있었다. 스피드 미터 등 자동차 전장품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철저한 자동화와 완벽한 물류가 강점이었다.
현장에 일하는 작업자를 찾아보기가 드물어 첨단 전자산업의 고요함마저 느껴질 정도의 이 회사가 이런 매출과 순익을 달성한다니 믿기지 않았다. 구성원들이 자동화와 물류를 컴퓨터통합시스템에 연계해 생산라인을 구성하기까지 셀 수 없는 개선에 몰입했을 것을 생각하니 아득했다. 자동화와 물류의 개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이튿날 오후 도요다자동차공장을 방문한 우리 일행은 벌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공정을 돌아보는 동안 일행 모두는 ‘사람이 Line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Line이 사람을 돌리는 착시현상’을 목격했다. 근로자들은 각자 맡은 작업구역에서 기계보다 민첩하고 정확하게 움직였다. 56초에 한 대 꼴로 완성된다는 자동차조립은 종합예술에 가까웠다.
필요한 양을 정확한 시간에 정확하게 투입하는 자재조달시스템, 각자의 작업현장이 곧 품질관리의 최종단계에 이르는 완벽한 품질검증시스템, 작업공간을 최대한 축소해 공정이동 거리를 단축시키는 효율적 라인운영, 문제가 발생하면 곧바로 줄을 잡아당겨 알리는 라인 스톱제, 라인이 서자마자 5초 이내 팀장이 백업맨으로 투입되어 해결하는 치밀한 공정은 인력의 초 단위마저 낭비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스며 있었다.
우리가 보기에 지독스러울 정도로 업무에 혼신을 다하는데도 그날 생산라인의 전광판에는 목표지수 대비 94.5%라는 달성지수가 붉은 색으로 반짝거렸다. 동시에 그 옆에는 ‘잔업시수 30분’이 자동으로 계산되어 모든 작업자가 볼 수 있게 해놓았다.
분 단위 관리도 어려운데... 잔업시수의 산출도 이처럼 정확한 데이터로 산출해내다니... 원활한 공정진행을 위해 관리자급인 팀장을 백업맨으로 활용하는 역발상이 가능하다니 등의 의문이 일면서 ‘세계 제 1의 경쟁력을 가진 자동차기업’의 저력이 이런 데서 나오는 것 아닌가 생각되었다. 이런 저력이 올해 목표한 10조원의 이익달성을 가능하게 하고도 남을 것이란 믿음이 들게 했다.
도요다 견학을 마친 일행 모두의 소감은 지독하고도 무섭다는 것이었다. 기계보다 더한 현장의 작업량을 묵묵히 수행해 내게 하는 기업문화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분분했다. 이미 강의로 소개받은 기업내 노조, 연공서열, 종신고용 등의 3 요소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결론은 수작업이 자동화를 따라올 수 없고 아무리 훌륭한 자동화시설이라도 사람의 의지와 노력이 더해지지 않으면 한낱 쇳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도요다를 돌아보는 시간은 ‘사람의 의지와 노력은 무한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는 신념이 뼈저리게 구체화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70년간의 끊임없는 개선>
방직산업으로 시작한 도요다가 오늘날 세계 초일류의 자동차기업으로 성장한 과정이 바로 끊임없는 개선과 기술개발이라는 점을 한 눈에 보여주는 곳이 셋째날 아침 일찍 방문한 <도요다 산업기술기념관>이었다.
기념관은 방직산업과 자동차산업을 시대별, 장치별 발전과정을 한 눈에 보게 할 뿐만 아니라 직접 기계를 가동하고 조작해 봄으로써 실감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유리벽 안에 진열된 우리나라의 각종 기념관류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에 왜 우리는 이런 기념관 하나 세우지 못하는가 하는 아쉬움마저 들었다.
1937년 제국주의 기치로 똘똘 뭉친 일장기 대열이 동아시아와 태평양을 넘나들 때 자그마한 방직기로 시작한 도요다가 2차대전 패망과 전후복구, 한국전쟁, 세계시장의 무한경쟁이라는 70년간 탈바꿈을 거듭하며 초일류기업으로 도약하기까지 산업기념관은 도요다인들의 한 걸음 한 걸음 좀 더 나은 생산성을 향해 끊임없이 진화해온 기계, 기술, 생산관리의 패러다임을 일목요연하게 압축해 놓은 셈이었다.
이런 기념관 하나가 자라나는 어린 세대에게 장인정신, 산업화 마인드의 좋은 교육장으로 활용되면서 미래 산업인력을 배출하는 훌륭한 요람이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오후엔 혼다기연을 방문했다. 도요다에서 받은 느낌이 워낙 강해서인지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무한경쟁시대, 한국 자동차산업의 미래는?>
도요다와 혼다의 두 자동차회사의 전시룸에서 나는 또 한 번의 놀라움과 씁쓸함을 맛봐야 했다. 놀라움의 근원은 쇼룸에 전시된 자동차의 가격표였다. 최하 5천만원에서 1억원대를 오갈 것이란 나의 짐작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국내 자동차 가격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국내 자동차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쌓아놓은 관세장벽의 높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즉, 국내 자동차회사인 H사, K사, S사 등의 유일한 경쟁력의 원천은 관세장벽인 셈이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런 회사의 노조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유로 걸핏하면 조립라인을 세우고 매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임금인상을 거듭하고 있으니 결국은 자국산업 보호라는 명분아래 질적으로 낮은 수준의 제품을 고가에 들이밀며 국민들의 주머니를 털어가다시피 하는 셈이니 씁쓸할 뿐이었다. 똑 같은 가격으로도 일본 소비자는 이처럼 좋은 품질의 자동차를 탈 수 있는데... 관세장벽이 무너지면 국내 자동차메이커들은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8할은 ‘절대불가’라는 판정이었다.
<정리정돈 생활화, 조직에 헌신하는 국민성>
국보급 투수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야구선수 선동열. 그도 일본에 진출해 2군 추락의 불명예를 딛고 와신상담, 노력한 결과 ‘나고야의 태양’으로까지 솟아올랐다. 그렇게 친근감을 가졌던 도시 나고야는 철저한 정리정돈과 질서가 깃들어 있었다. 오죽 이상했으면 숙박을 했던 중심가 호텔 인근의 거리에 담배꽁초를 다 찾아보았을까. 그런데 정말 눈에 보이지 않았다.
3만불이 훨씬 넘는 GNP를 달성한 부자의 나라, 일본이지만 사람들은 일터와 집을 오가는 대오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철저한 애사심으로 뭉쳐있는 듯 했다. 초단위의 미세한 시간과 한 뼘 남짓 되는 아주 작은 공간마저도 아껴 사용하는 그들이었다. 공항, 도로, 항만, 지하철, 건축물, 공공시설, 문화유적 등 SOC와 문화유산의 완벽한 시설과 관리는 그들의 저력을 느끼게 하고도 남았다.
출입구에서부터 방문차량이 시야에 사라질때까지 작별인사를 보내주던 그들의 친절에 무서움증마저 들었다. 방문기업 어디를 가도 홍보업무에 관련된 담당자의 몸에 밴 친절과 미소가 여운으로 남았다.
나의 숙제는 살아가는 재미가 오직 빠찡꼬를 하는 것 밖에 없을 정도의 일본 직장인들이 무슨 까닭으로 회사라는 조직목표 달성에 몰입하고 일체감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궁금증을 풀어 우리회사에 새로운 조직 마인드 조성에 일조하는 일일 것이다.
* 세발낙지, 현해탄을 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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