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상 巨商
- ‘상도’와 ‘상술’의 귀재 온주상인,
세상은 그들을 ‘동양의 유태인’이라 부른다 -
자구어씨․장쥔링 지음 / 김태성 옮김
▣ 저자
자구어씨 - 1963년생. 1984년에 정저우鄭州대학교 역사학과와 1999년 중국 사회과학원 석사과정 졸업. 현재 정저우 경공업대학교 부교수이다. 저서로는 공저로『성세를 연 제왕의 도략』『현대 상업경영지혜총서』가 있다.
장쥔링 - 1959년생. 1983년 화둥華東사범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현재 허난재경대학교 부교수이다. 대규모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4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으며, 고등학교 교재 6종을 편찬했다. 저서로는 공저로『성세를 연 제왕의 도략』『현대 상업경영지혜총서』가 있다.
▣ 역자 김태성
1959년 서울 출생.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동대학원에서 문학 전공으로 석사학위 취득 동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중국학 연구공동체인 한성문화연구소 대표. 계간 <시평> 기획위원. 호서대학교 중국어과 겸임교수로 있으며, 한국외국어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동덕여자대학교에 출강하면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 및 저서로는『맑스 엥겔스 교육론』『홍정상인』『호설암』『중국사 뒷이야기』『정관정요에서 배우는 난세의 지혜』『양자강 저 너머』『담판병법』『상경』『고별혁명』『변경』『상성』『책 한 권 들고 파리를 가다』 등 40여 권이 있다.
▣ Short Summary
온주溫州는 중국 절강성 남부에 위치한 작은 소도시이다. 사람은 많고 땅은 협소한데다, 재해가 빈번해 농업마저 불안정하고, 천연자원도 거의 없어 주민 대부분이 오랫동안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온주인들이 택한 생존의 방법은 고향을 떠나 떠돌이 장사꾼이 되는 것이었다. 온주인들을 ‘온주객溫州客’이라 부르는 까닭이 바로 이것이다. 이들은 예로부터 실용사상을 숭상하여 상업을 중시하였고, 어디든 이들의 발길이 닿는 곳이라면 모두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중국의 경제 개혁개방 정책이 가속화되면서 마침내 부에 대한 갈망으로 목말라하던 온주인들에게 거대한 수문이 열렸다. 중국 각지에서 온주인들은 가장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고, 중국의 부를 상징하는 거대한 지역집단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동양의 유태인’이라는 미명美名을 얻으면서 세계 각지의 중국인 상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러한 온주인들의 피나는 분투와 개척의 실록은 점차 중국에 대한 경쟁력 우위를 상실해가는 우리의 경제 상황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현재 한국의 CEO들은 6가지 메가쇼크Mega-Shock에 직면해 있다. 세계화 쇼크, 정보화 쇼크, 각계각층의 욕구가 분출되는 민주화 쇼크, 원자재 가격 쇼크, 고용책임이 요구되는 고령화 쇼크 그리고 차이나 쇼크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한국 기업들이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차이나 쇼크이다. 특히 온주상인은 ‘최대나 최고가 아닌 시장의 최적주의’를 내세우며 상하이를 통해 무서운 속도로 세계의 상권을 석권하고 있다. 중국경제의 핵심 온주상인들의 상도商道와 상술商術을 파헤친 이 책은 한국 CEO들에게 권할 만하다. 또한 경제적 암흑기에도 전 세계에 퍼져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 화상華商의 뿌리를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 차례
1장 자생自生 - 자신의 운명과 미래는 스스로 개척한다
2장 혜안慧眼 - 정확한 정세와 시장의 흐름을 읽다
3장 선점先占 - 한 발 앞서 시장을 공략하다
4장 공생共生 - 대동하여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다
5장 확장擴張 - 장사수완을 발휘해 영역을 넓히다
6장 분투奮鬪 - 힘을 다하여 진정한 상인이 되다
7장 소상小商 - 작은 상품으로 큰 시장을 지배하는 민간경제
8장 실용實用 - 관습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소박한 사람들
9장 융통融通 - 한 길을 어두워질 때까지 달려서는 안 된다
1장. 자생 - 자신의 운명과 미래는 스스로 개척한다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분투하라
독립심이 강하여 의존할 줄 모르다 : 남의 부축을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손과 발이 돼라. 이것이 거대한 부를 창조하는 온주인의 보편적인 마음자세이다. 온주인들은 딸이 아버지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동생이 형에게 빌붙지 않으며 아내가 남편에게 기대지 않는다. 온주인들은 거의 천성적으로 이러한 자유의지와 자유정신을 갖고 있는데, 이러한 기질은 창업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다. 의존하는 마음을 버리고 자강불식(自强不息, 스스로 노력해서 힘을 기른다는 뜻)하는 것, 이것이 바로 창업자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심리적인 조건인 것이다. 중국인들은 지난 1990년대 후반의 몇 해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에는 적지 않은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거나 폐업했고, 기업간에 M&A가 성행했다. 퇴직자와 실업자들은 기업을 향해 부모관父母官(청대 말까지 지방의 관료들이 백성들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의미에서 ‘부모관’이라 불렸다)이 되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온주인들에게는 이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고, 심지어 이런 현실에 대해 원망을 늘어놓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럼 온주인들 중에는 퇴직자가 없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온주의 일부 기업들도 장기적인 불황에 시달렸고, 문을 닫거나 생산을 중단하는 기업도 다른 지역에 비해 적지 않았다. 관계 부서에서 조사해본 결과, 이들은 모두 자신이 직접 출자해서 공방을 차리거나 외지로 나가 소규모 사업을 시작했다. 외지 공무원들은 자기 지역의 퇴직자들도 온주 사람들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민영기업의 번영이 온주시에 200만 개가 넘는 일자리를 제공했는데, 이는 다른 지역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처럼 온주 퇴직자들의 자강불식하는 정신은 놀랄 만한 일이었다. 온주인들은 중국에서 독립심이 가장 강한 사회집단이다. 지나치게 빈궁한 자연 조건이 이들에게 외지 사람들에 비해 월등히 강한 생활력을 갖게 했다. 덕분에 이들은 천성적으로 철저한 독립정신과 뛰어난 상인 기질을 갖게 되었다. 온주인들에게서 자기 자신만을 의지한다는 것은 일종의 전통이다.
온주상인에게 배우는 경영전략 - 자기 운명의 주인 되기 : 사회학에서는 ‘천부적 요인’과 ‘자생적 요인’이라는 표현을 흔히 사용한다. 천부적 요인이란 출신․성별․출생 지역 등 선천적인 자연 요소들을 의미하고, 자생적 요인이란 성장하면서 스스로 노력해 얻는 능력을 가리킨다. 전자가 주도적 작용을 하는 메커니즘은 비시장화된 상황으로 불공평한 측면들이 돌출될 수밖에 없는 반면, 후자는 시장화된 메커니즘으로 공평과 경쟁의 기제가 된다. 기업이 도태되어 직업을 잃은 사람들이 이러한 분위기에서 탈피하지 못해 기억 속의 과거를 사수하려 한다면, 이 또한 고착화되고 건강치 못한 기제의 소산인 것이다. 어떤 처지에 놓이든지 간에 신속하게 자신의 위치를 찾아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사회의 중견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경제 분야에서는 누구나 자발적이고 지위적인 의식을 지녀야 한다. 온주인들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부를 쌓아나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생적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한 덕분이다.
세계를 온통 ‘china' 물결로 만들다
'Made in China'의 중심에 선 온주상인들 : 온주인들이 타지 사람들과 다른 점은 전 세계를 무대로 돈 벌 기회를 찾는다는 것이다. 온주인들은 예로부터 사해四海를 집으로 삼아 “천하의 돈을 천하가 쓴다”고 생각하면서 어디를 가든 생존의 공간을 개척했다. 중국인이 처음 유럽에 들어간 것은 약 3,4백 년 전이라고 한다. 그들은 마카오 때문에 포르투갈을 거쳐 유럽에 들어간 것이다. <화교경제연감>의 기록에 따르면, 청 광서 연간에 호북 천문 사람들과 절강 청전 사람들이 이탈리아에 처음 정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편, 청전 사람들은 1900년부터 프랑스 파리의 크고 작은 거리와 골목을 누비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중국은 동맹국에 가입해 독일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면서 수만 명의 중국인 노동자들을 유럽으로 보내 참전하게 했다. 그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대로 남아 유럽 화교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유럽에 남아 있던 이들의 영향으로 1920,30년대에는 중국 연해 지역, 특히 온주 지역을 중심으로 출국 붐이 일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유럽 경제의 재건에 화교들과 현지 국민들의 공동 창업이 주요 현상으로 나타나면서, 중국인들의 생존 수단 확보에도 중대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피혁 제품과 의류제조, 식당업 등이 크게 발전하면서 제2의 출국 붐이 일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정식으로 수립되자 중국에 새로운 분위기가 일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도 출국 행렬의 흐름은 꾸준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1978년 출국 러시가 정점에 이르면서 이미 외국에 나가 있던 화교들의 자제와 친척들이 해외로 진출하게 됨에 따라, 기존의 화교 사회는 엄청난 무상 노동력을 공급받게 된 것이다. 그때 청전․문서․서안 등지의 온주인들이 대거 출국 행렬에 가세함에 따라, 기존 유럽 화교들의 지역 분포가 완전히 바뀌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국의 개혁개방이 본격화되었고, 크고 작은 규모의 장사를 위한 사람들의 출국이 잦아졌다. 오늘날 온주상인들의 경영 촉각은 전 세계 각지로 뻗어 있다. 이미 ‘Made in China'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인쇄된 온주의 소형상품들은 온주상인들의 경영지혜를 나타내는 지표가 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Made in China'라는 표시를 부착한 온주의 소형 상품들은 거센 불길처럼 이집트 시장을 장악해나갔다. 일부 완구나 문구에 국한되어 있던 중국 상품들이 지금은 일용품과 가전제품으로까지 범위가 확대되어 엄청난 수량으로 이집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2001년 말, 이집트인들이 연말연시에 쓸 다양한 물건들을 중국에 주문해놓고 있을 때였다. 한 신문에 ‘메이드 인 차이나가 이집트를 침략하고 있다’는 제목의 칼럼이 게재되어 카이로에서 공부하고 있던 중국 유학생들을 긴장하게 만든 일도 있었다. 알고 보니 이집트의 명절용품 시장을 대부분 중국 상품이 점령하고 있었던 것이다.
온주상인에게 배우는 경영전략 - 하늘 아래 시장 아닌 곳 없다 : 미국에서도 온주인의 인구는 이미 23만 명을 넘어섰고, 이들이 운영하는 크고 작은 사업도 각 도시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온주인들은 스스로 고생을 자청해 시련을 참고 노력하면서 서로를 돕고 단결함으로써 이국땅에서 자신들의 새로운 전기를 열어가고 있다. 미국에 거주하는 온주인 절반이 뉴욕시에 집중되어 있다. 이들 재미 온주인들은 이미 중국 본토와의 무역도 시작해 농산물과 일용잡화 등 상당량의 교역이 이뤄지고 있다. 소자본으로 장사를 시작했다는 것이 미국 온주상인들의 공통적인 특징이자, 이들을 성공으로 이끈 첩경이었다. 온주인들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빠른 시간에 소규모 자본을 마련해 곧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같은 고향, 같은 업종끼리는 경쟁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온주의 동향인들은 서로 협력하면서 함께 발전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빠른 시간에 자신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어냈다.
2장. 혜안 - 정확한 정세와 시장의 흐름을 읽다
돈벌이에 눈이 예리한 장사꾼들
시장경쟁에서의 빠른 대응이 최고로 만들다 : 온주인들의 뛰어난 점은 남들이 좀처럼 발견하지 못하거나 쉽게 무시해버리는 것에서 이익을 창출할 기회를 찾아내는 예리한 눈에 있다. 그들은 적당한 분석과 고찰을 통해 어느 정도 확실하다는 판단이 서기만 하면, 과감히 지금 있는 곳을 접고 다른 곳으로 가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 1980년대 온주 태순의 농민들은 건축 사업이 한창 붐을 이루자 건축에 사용되는 도기 공장에 열을 올려 일시적으로 큰 활황을 맞이했다. 그러나 1980년대 말로 접어들면서, 광동의 도기 산업이 크게 발전하자 온주 도기는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되었고, 급기야 도기 생산이 전면 중단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도기 생산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수만 명의 온주인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들은 억울했지만 힘들게 하던 사업을 유지하면서 근근이 살아갈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태순의 농민들은 자신들보다 기술력과 자금력이 월등한 광동 사람들과 경쟁하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묵묵히 힘든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에너지를 생산보다는 판매 쪽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물건을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남이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먼저 상해로 가서 면적이 400무에 달하는 홍도 건재시장을 세워 도기 판매에 나섰다. 그 결과 시장의 60퍼센트를 점유하게 되었다. 변화에 대한 반응이 빠른 온주상인들은 중국 비즈니스계에서 말초신경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온주인들은 어떻게 이런 자질을 갖게 된 것일까? 새롭고 낯선 지방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새로운 사람들과 그들의 방언을 접하면서 환경과 생존의 조건에 적응하는 능력이 배양되었고,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임기응변의 기질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과감하게 변화를 추구하는 온주인들의 지혜는 바로 격렬한 시장경쟁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온주상인에게 배우는 경영전략 - 실리적으로 사업하기 : 온주인들은 이익이 있어야만 변화에 따른다. 사실 이는 모든 중국 기업과 상인들의 눈앞에 놓인 새로운 사고이자 진로이다. 국가가 투자를 하지 않으면 스스로 건설하고, 자본이 부족하면 안경이나 라이터, 단추같은 소형상품을 경영한다. 과학교육 수준이 낮으면, 낮은 대로 수공업으로 제품을 생산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업을 시작하려면 기존의 상황을 변화시켜야 하고, 돈을 벌려면 현실에서 실리적인 계획과 행동을 전개해야 하는 것이다.
3장. 선점 - 한 발 앞서 시장을 공략하다
기회를 선점한 자가 황금을 캔다
온주인들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좋아하는 반면, 시류에 따르는 것을 꺼린다. 실천력이 풍부한 온주인들은 항상 남보다 한 발 앞서는 것이 장사의 기회를 독점하는 것이라는 대단히 직감적이고 질박한 인식을 갖고 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온주인들은 격렬한 시장 경쟁 속에서 장사의 기회를 식별해내는 예리한 안목을 갖춰 항상 새로운 사업의 선두주자로 활약해 왔다.
상업의 처녀지를 찾아 시장을 세우다 : 확실히 비즈니스 세계에는 전장에서 쓰이는 병법의 원리들이 작용하고 있다. 현대의 상업활동에서 사업의 기회를 잡는 것도 전쟁에서 승리의 기회를 잡는 것과 같은 이치로 이루어진다. 전쟁과 마찬가지로 장사에도 주도권의 장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기회를 선점한다는 것은 아무런 경쟁 없이 독점적으로 사업을 전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품의 질이나 양에 관계없이 무조건 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다른 상인들이 들어오기 전 까지는 힘 안 들이고 여유 있게 넉넉한 이윤을 챙길 수 있는 것이다. 어째서 온주인들이 성공의 열매를 독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바로 남들보다 한발 앞서 기회를 잡는 데 있다. 1960년대에 300여 명의 온주인들이 신강에 들어가 신강 지역 최초의 온주상인들이 되었다. 이들은 그곳에서 치약과 칫솔, 바느질 도구 등을 팔았고, 이발을 하거나 신발을 수선했다. 지금은 8만여 명의 온주상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온주인들은 신강 시장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신강 지역이 8개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국경선이 5천 킬로미터에 달해 동서 교통의 교두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강은 제10차 5개년계획 기간동안 34개의 중요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이러한 대형 프로젝트들은 신강성 중부권 경제의 초점이 될 전망이다. 온주상인들이 신강으로 진입한 것이 중국 서부대개발의 선두 진지를 차지하기 위한 것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온주인들은 신강을 거점으로 하여 모스크바와 알마아타, 타슈겐트 등 국제시장에 진출할 속셈인 것이다. 온주인들의 활약은 국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온주인들의 출국 러시는 뉴욕과 파리, 밀라노 등 세계적인 대도시로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온주인의 출국 러시에는 남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낙후된 국가나 지역을 찾아가는 것이다. 낙후된 국가일수록 사업의 기회가 더 크고, 발전 공간이 더 넓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온주상인에게 배우는 경영전략 - 먼저 내민 손이 가장 큰 떡을 친다 : 남들보다 먼저 기회를 잡으면 무조건 성공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온주인들은 기회를 잡은 다음 자금을 비롯한 제반 조건, 사업 경험 등에서 충분한 사전준비를 갖추지 않고는 절대로 일을 시작하지 않는다.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을 경우에는 먼저 이를 해결한다. 기회 선점에 이은 충분한 준비가 성공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치열한 시장 경쟁에서 남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먼저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선수를 치는 일은 먼저 생각하고 난 다음의 일이다.
소비자 욕구에 관심을 기울여 시장을 살피다
수요의 흐름에 따라 민첩하게 움직인다 : 비즈니스 기회의 발견은 중국의 경영학에서 ‘고양이가 쥐를 잡는 계책’으로 비견되기도 한다. 어떤 상황이나 환경이든지 고양이가 쥐를 잡는 방식으로 ‘한 걸음 다가설 때마다 한 번씩 살피는’ 경영 및 파냄 방식이 바로 온주인들의 주특기이다. 사실 비즈니스의 기회라는 것은 소비자의 수요에 다름 아니다. 수요가 있어야만 사업의 기회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어떤 욕구는 소비자 자신들도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있고, 그만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일상에 젖은 사람들은 잠재적인 욕구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다가 누군가가 개발한 어떤 상품이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고 삶의 질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게 되면 그제야 감지한다. 다시 말해서, 때로는 생산자의 적극적인 개발과 유도를 통해서 소비자의 수요가 형성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온주상인들은 시장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상황을 정확하고 냉철하게 인식하고 있다. 비즈니스의 기회는 이미 경영자들이 주도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제시하는 방향을 따라가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사업의 기회가 도처에 널려 있는 상황에서 잠재적 기회는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발견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안목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다. 잠재적 기회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관찰과 노력이 필요하다.
온주의 한 가전제품 공장에서 전기오븐을 생산하고 있었다. 이는 온주 특산물인 오리구이를 위해 설계된 제품이었다. 이 제품을 상해 시장에 내놓았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문제는 제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해 사람들의 기호에 있었다. 상해 사람들은 오리구이를 즐겨 먹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전기 오븐을 살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 공장은 상해 사람들이 닭구이는 즐겨 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재빨리 닭구이용 오븐으로 개조해 시장에 내놓았다. 이번에는 반응이 완전히 달랐다. 오리구이용 오븐을 닭구이용 오븐으로 개조해 출시한 덕분에 상해 사람들은 음식점에서 사먹는 것과 거의 같은 맛의 닭구이를 집에서도 해먹을 수 있게 되었다. 물건이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간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온주 공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오리구이용 오븐과 바비큐용 오븐을 연달아 생산해 각지 사람들의 서로 다른 구미에 맞게 다른 상표를 붙여 시장에 내놓았다. 나중에는 신강 지역에 양고기구이용 오븐을 판매하기도 했다.
온주상인에게 배우는 경영전략 - 숨어있는 기회를 찾아내는 법 : 세심한 연구와 분석을 통해 기회를 잡는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생활에 열정을 갖고 있고, 관찰력이 남달리 강하며, 모든 현상에 대해 깊이 있게 사고하는 습관이 있다. 이러한 기질들이 바로 비즈니스 세계에서 잠재적 기회를 찾아낼 수 있는 기본적인 소양이다. 개혁개방 이후로 온주인들이 이룩한 눈부신 업적은 그들의 강한 활동력과 날카로운 안목, 그리고 세심한 사고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4장. 공생 - 대동하여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다
기업 성장의 밑거름이 된 온주 지분제
이윤을 균등하게 분배하는 옛제도가 존재하다 : <신화사新華社>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온주 농민들이 청 건륭 연간에 이미 주식지분제 형태의 제지업을 운영했음을 증명하는 석비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석비는 온주시 서안향 당택촌에 있는 오래된 제지용 물방앗간 안에서 발견되었는데, 연대는 대략 건륭 50년(1791)으로 추정하고 있다. 비문에는 이 물방아가 당시 지농紙農 일곱 명이 자금을 똑같이 투자해 만든 것으로, 다른 투자자를 받아들였을 경우에는 벌금을 내기로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2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일곱 지농의 후예들은 줄곧 선조들이 규정한 주식지분제 형식에 따라 물방아를 공동으로 사용하면서 대나무를 가공해 종이를 만들고 있었다. 이 석비문은 온주인들에게 아주 오래 전부터 자본과 권리를 연계시킨 주식지분제 의식이 있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초기의 온주 모델은 가족기업을 기초로 가족들을 판매원으로 삼아 소형상품 시장을 형성했다. 온주 모델이 제2단계로 들어서면서 훨씬 전형적인 형태의 온주 지분합작제 기업이 출현하게 되었다. 온주의 이러한 지분합작제 기업은 통상적인 의미의 지분제와 성격이 많이 다르다. 그래서 이를 구별하기 위해 ‘온주 지분제’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자본을 투자함으로써 주주가 되어 기업을 공동으로 경영하고, 이윤을 균등하게 나누어 갖는다. 1980년대 후기, 단일 재산권이 주조를 이루는 온주의 민영경제 -개체 사영기업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가 폭발적으로 발전하면서 온주인들은 새로운 기업조직 방식을 창안하게 되었다. 자금과 인원을 동시에 합작하는 ‘지분합작제’는 재산권이 다원화되는 최신 기업형태로, 경영의 정책결정을 민주화하고 경영자들의 적극성을 유도해 기업의 발전을 가속하는 데 매우 유리했다. 한편 투자자들은 기업 관리에서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어 경영에 확실한 원칙과 제약이 결핍되기 쉬웠다. 이는 기업의 발전에 불리하고, 기업의 경영권과 소유권을 분리하는 데도 불리했다. 그러나 순조롭게 발전하는 지분합작제 기업은 참여자들의 우호가 강화되고 역할분담이 잘 이루어져 보다 큰 발전을 모색할 수 있다.
온주상인에게 배우는 경영전략 - 분열을 떼어내고 우호를 덧붙이다 : 현대 사회에서는 부의 누적과 사회평등 관념의 대두로 인해 계층 간의 유동성이 가속화되고, 권력과 금력이 분리되며 사회의 계급 구조가 점차 다이아몬드형으로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수입과 재산 소유에서도 극부층이나 절대빈곤층의 비중은 갈수록 작아져 극소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구조 안정의 기초가 되는 이른바 ‘중산층’이 형성되는데, 이는 독립적인 민간 역량의 지표이기도 하다. 기업 내 중산층은 어엿한 주주로서 기업발전에 따른 이익을 보장받게 되기 때문에 업무에 적극성을 띠고 스스로 자신의 잠재력을 개척하게 된다. 온주의 기업계에서 천정天正 그룹의 주식지분제 개조는 대단히 성공적인 사례였다. 이 회사는 1997년에 1차적으로 중간층 관리직과 대졸사원들을 대상으로 지분을 개방해 자금을 유치했고, 2차적으로 외부로부터 회원 기업을 흡수, 합병함으로써 자금을 끌어들였다. 이 회사는 또 투자자들을 ‘직원 투자회’라는 모임으로 조직해 사단법인 자격을 부여하고, 이사 5명을 주주로 참여시켰다. 그 결과 직원 투자회는 중요한 자금 융통의 채널 역할을 하여 좀더 많은 민간 자본을 기업으로 유입시켰다. 이것이 바로 온주식 주식지분제의 가장 큰 특징이다. 온주의 초기 발전과정에서는 민간자본의 운용이 매우 큰 역할을 했다. 온주 지분합작제 기업의 주식제 개조는 시장의 틈새를 찾아가는 민간자본의 속성에 영합해 자연스럽게 자본을 기업에 유입시키는 방법 가운데 하나였고, 본질적으로 자본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행위였다.
5장. 확장 - 장사수완을 발휘해 영역을 넓히다
브랜드 창출에 심혈을 기울이다
새 시대, 새로운 전략을 향해 고군분투하다 : 오늘날 소비자들의 생활과 의식 가운데에는 브랜드가 깊숙이 스며들어와 있다. 따라서 브랜드는 기업에서 가장 귀중한 자산으로 다루어지며, 실제로도 무형자산의 형식으로 기업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 온주인들은 소비자들의 심리에 완벽하게 영합하는 것을 주요 수법으로 하여 원시자본을 축적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온주상인들의 경영 비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과거 온주인들이 국제시장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얻기 위해 만들어냈던 조건을 이해해야 한다. 온주상인들이 지금의 브랜드 생산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시장을 인도자로 한다’는 관념에 힘입은 바 크다. 또한 ‘이익공동체’를 중시하고 시장의 발전을 촉진하는 것도 온주 기업들이 ‘브랜드 전략’으로 나아가는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온주상인들은 이 점에 대해 막대한 대가를 치른 바 있다. 피혁업이건 의류업이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부 상인들의 조악한 가짜상품 때문에 고객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입혔음은 물론 온주상품은 조악한 가짜상품의 대명사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이러한 교훈은 온주인들에게 점차 시장에 대한 뚜렷한 인식을 갖게 했다. 온주인의 ‘브랜드 경영’이 거대한 중국 시장에서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의류사업 분야에서 그들은 외국에서 가장 선진화된 양복 생산라인을 도입했고, 이처럼 기술과 품질을 강조한 유명 브랜드 양복의 이윤은 매우 높아서, 일반적으로 30~50퍼센트의 마진율을 기록하고 있고, 심지어 이보다 더 높은 제품들도 있다. 이렇게 하여 온주인들은 양복 한 벌을 판매해 저가 의류 백 벌 이상을 팔아야 얻을 수 있는 수익을 챙기는 동시에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기업이나 브랜드가 갖는 문화적인 깊이는 소비자들의 정신문화를 대표한다. 문화는 그 국가와 민족의 정신적인 힘을 농축한 것이기 때문에 상품이 갖는 문화의식은 곧바로 그 상품이 소비자들의 생활 속에 파고들 수 있는 추진력을 의미한다. 온주인들은 브랜드의 문화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기업문화는 외향적인 선진문화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 내부의 문화적 분위기도 포함된다. 기업의 내부야말로 기업 실력의 발원이기 때문에 내부 문화가 성숙해야 외향적인 선전문화도 기반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기업의 내부적인 문화 역시 기업의 품위를 높이는 핵심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역사가 짧은 기업들은 이러한 기업 자체의 분위기를 창조해내는 데 좀더 주력해야 할 것이다.
온주상인에게 배우는 경영전략 - 세상을 얻으려면 세상의 기준을 따르라 : 중국이 WTO에 가입하기 훨씬 이전부터 온주상인들은 그 전부터 혼신을 다해 국제시장의 문을 두드리면서 기업의 생존환경으로서의 새로운 길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온주의 기업가들은 자신들의 상품을 국제시장에 진입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제적 경쟁원칙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중국이 WTO에 가입하기 전부터 국제 품질 시스템의 인증을 받기 시작했고, 그 결과 여러 제품들이 지나치게 엄격하고 까다롭다는 UL(Underwriters Laboratory)의 시험을 통과하는 데 성공했다.
6장. 분투 - 힘을 다하여 진정한 상인이 되다
성공은 고생 뒤에 찾아오는 낙이다
가시밭길을 걸어야 탐스러운 열매를 얻을 수 있다 : 온주상인들은 뛰어난 품격으로 초기 원시창업 단계의 사업가 개념을 넘어 지금은 국내외에서 현대 비즈니스 전쟁을 주도하는 최대 세력으로 성장해 있다. 이들은 충분한 사상적 준비를 갖추고 있다. 보다 많은 파란과 굴곡을 겪으며 가시밭길을 걸어야,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탐스러운 열매를 딸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천하를 집안으로 삼고 신의를 근본으로 삼는다”는 새로운 사고를 품고서 고향과 가족을 등진 채 대규모 상방商帮을 만들어 명․청대 상업의 찬란한 광채를 창조해냈던 이들이 산서인들이다. 그러나 과거 몇 십 년 동안, 특히 개혁개방이 시행된 이후의 20년 동안, 계획경제가 시장경제로 전환되고 거시적인 경제 환경이 새롭게 변모하는 가운데에서도 그들은 고착화된 사고의 습성에 사로잡혀 이전부터 내려온 석탄경제 모델에 안주하다 낙오하고 말았다. 그런 사이에 산서 지역 사람들은 연해 일대에서 온 사람들, 특히 거의 맨손으로 왔던 온주인들이 자신들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들에 아무런 불만 없이 매달리는 걸 직접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몇 년 후에는 온주인들이 크고 작은 보따리를 들고 비행기로 왕래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온주인들의 성공에 발을 동동 구르며 남방 사람들이 와서 자신들의 돈을 다 벌어간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남방 사람들은 근면하고 민첩하며 고생을 견딜 줄 아는데 비해, 산서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생활이 풍요롭고 자원이 풍부했던 배경 때문에 지금은 나태하고 게으르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었다. 온주시 정부 경제연구센터의 통계에 따르면, 2000년 말 온주의 민영기업 수는 온주시 소재 기업 전체의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한편, 세계 65개 국가에 흩어져 거주하고 있는 온주인은 해외에서도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한 결과, 이미 브라질․러시아․아랍에미리트․네덜란드 등지에 경영활동을 벌이고 있다. 온주인들이 누리는 부의 기적은 전부 근면에 따른 보답이었다.
온주상인에게 배우는 경영전략 - 비즈니스계의 진정한 강자가 되는 법 : ‘온주인’이란 개념은 온주라는 특정 지역에 한정된 것이 아닌 분투할 줄 알고 멈출 줄 모르며, 만족할 줄 모르고,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상인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상인들만이 감동적인 비즈니스의 신화를 엮어내면서 거대한 부를 형성해 시대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고난과 실패를 정확히 직시하는 일도 중요하다. 온주인들은 좌절 앞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것은 결코 미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모든 잡념을 던져버린 다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을 경주해 얻고자 한 것을 쟁취하고 만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온주인들은 고난과 실패를 새로운 성취의 원동력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온주인들의 이런 태도는 다음처럼 정리할 수 있는데, 누구든 참고로 삼을 만하다. 첫째,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성실하고 진지하게 주변의 환경을 살핀 다음, 사업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둘째, 실패의 원인과 교훈을 철저히 분석해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셋째, 다시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과거의 경험을 정리해 긍정적인 부분은 강화하고, 부정적인 부분은 완전히 제거한다. 넷째, 자기의 자신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실패의 기억을 완전히 묻어버린다. 다섯째,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일을 다시 시작한다.
신용이 사라지면 상인도 죽는다
정직은 상인에게 최고의 무기이다 : 1987년 8월 8일, 항주 무림문 광장에서 검은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사람들이 온주의 가짜 저질 구두들을 모아놓고 화형식을 거행한 것이다. 이는 온주인 사회에 씻지 못할 치욕으로 아로새겨져 많은 사람들을 도산으로 몰아넣었다. 1999년 12월 15일, 항주시 교중촌의 공터에서 또다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이번에는 온주의 제품을 모방한 다른 곳의 저질 구두들이 불태워졌던 것이다. 이는 온주 사람과 상품이 시장에서 최고가 되었음을 알리는 선포식에 다름없었다.
온주상인에게 배우는 경영전략 - 신용보다 큰 장사 밑천은 없다 : 신용이 없는 사람은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요즘 세상에 약속 불이행이나 사기는 흔한 일에 속한다. 그만큼 남을 믿기 어려워진 터라, 신용은 일종의 사업 자원으로까지 대접받고 있다. 수많은 상인이나 기업가의 신용이 땅에 떨어졌고, 정상적인 게임의 법칙이 파괴된 상태이다. 상호 신뢰를 기초로 해서 맺어지는 거래에서 이제 신용이 거래의 질과 내용을 담보하게 되었다. 따라서 신용을 지켜 시장에서 신뢰를 획득하는 일은 사업하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데 필수적인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7장. 소상 - 작은 상품으로 큰 시장을 지배하는 민간경제
작게 만들어 큰 경제를 이루다
화려한 배역으로 등장한 소형상품의 힘 : 단추나 라벨, 상표, 소형 액세서리, 완구 등 외지 사람들이 무시하거나 하기 싫어하는 ‘작은 장사’에도 온주인들은 주저 없이 손을 뻗는다. 그들은 북경이나 광동 사람들처럼 대단한 기세와 대규모 장사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저 작은 상품에서 시작해 조금씩 규모를 키워나가면서 전국의 소형상품 시장을 석권하는 것이다. 온주의 소형상품은 지역 전체의 경제에 커다란 활력을 가져다주었고, 지역 전체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온주의 농민 판매원들이 마치 나방 떼처럼 전국으로 퍼지면서 “10만 대군이 남북을 종횡한다”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온주농민의 소형상품 판매 조직은 각종 직업의 노동자들이 직업을 바꾸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들은 이런 일을 하기 전에 농사를 짓는 농민이나 향진기업의 직원이었다. 이들의 족적은 강남과 강북, 하북과 하남, 장성 안팎으로 끝없이 퍼져나갔고, 도시는 물론 산간벽지까지 발길이 닿으면서 중국 전역의 국민들에게 온주인의 이미지를 깊이 새겨주었다. 온주 농촌의 소형상품 경제 발전이라는 커다란 업적을 세운 것이다. ‘작다’는 것은 거의 모든 온주상인들의 특징이다. ‘작은 것’에서 사업을 시작한다는 이유로 경제학자들은 이를 ‘소구경제小狗經濟’ 또는 ‘소묘경제小猫經濟’라고 부르기도 한다.
온주인들은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고 소홀히 대하거나 하기를 원치 않는 일에서 장사의 기회를 찾아내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개혁개방 초기에 온주의 경제에는 세 가지 ‘화려한 배역’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안경과 구두 그리고 라이터였다. 정부의 관계부처의 통계에 따르면, 해마다 온주에서 조립되는 라이터는 1억 개가 넘은 것으로 나왔다. 이 가운데 70퍼센트가 해외로 수출되는 물량이라 온주의 라이터 회사에 무슨 변고라도 생기는 날이면 전 세계 라이터 시장이 연쇄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을 정도다. 이처럼 온주인들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물건들은 대부분 작고 사소한 것들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자질구레한 일용품들을 생산하는 곳이 그럴 듯한 모양새를 갖춘 큰 기업체가 아니라, 바로 한 가구 한 가구 이어져 있는 온주의 가내공방들이라는 점이다. 여러 시장과 거리의 점포들도 한 집 한 집 이어져 있어 300미터가 채 안 되는 골목은 수많은 점포들로 들어차 있었다. 바늘 한 개 들어갈 틈조차 없어 보이는 이 땅에 120만 명의 상공업 인구와 10만 명의 판매원, 1만 4,603개의 향촌 공업기업과 합자기업, 그리고 470여 개의 전문시장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온주인들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상은 무수한 개미 떼와 다르지 않다. 실제로 온주의 ‘개미군단’은 온주 경제의 마천루뿐만 아니라 중국 남동 연해 지역 경제의 절반을 떠받치고 있다. 하지만 기술력이 낮은 상품들이 지배하던 과거의 시장에서처럼 독점이나 독과점 현상 등은 재현되기 어렵다. 따라서 원시자본을 축적한 가내공업은 좀더 넓은 영역으로 방향을 돌려, 투자한 만큼 효율이 보장되고 이윤이 높은 하이테크를 추구하고 있다. 현대적인 생산과 과학적인 관리가 공방식 생산 시스템과 노점식 교환시장을 대체하는 것은 필연적인 추세일 것이다. 어쨌든 사업을 한다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해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약한 것에서 강한 것으로 변화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온주상인에게 배우는 경영전략 - 적은 자본으로 성공하는 법 : 시장에서의 잉여와 공백을 잘 찾아 그 틈새를 공략하는 것도 훌륭한 사업전략이 될 수 있다. 작은 상품들은 종류가 많고 생산자들 자신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어서 그만큼 시장의 편차와 틈새가 많은 편이다. 소형상품을 매우 중시하고 생산에도 가장 뛰어났던 사람들이 바로 온주인들과 이들이 구성하는 사회 군체였다. 소형상품은 원가가 매우 저렴하기에 개인이나 가정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소형 물건들이야말로 가장 적합한 아이템이라 할 수 있다. 소형상품의 장점은 바로 이런 데 있다. 투자해야 할 자본금이 그리 크지 않고 위험 부담도 적은데다 생산한 물건을 내다 팔기 좋고 시장의 틈새를 찾기가 쉽다는 것이다.
8장. 실용 - 관습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소박한 사람들
예부터 상업을 숭상하다
실용할 수 없는 뜻은 품지 않는다 : 경제와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크게 흥성했던 송대 절강 문화의 실천을 중시하는 사상은 온주 문화의 주류를 이루며, 온주 지역의 가치관이 되었다. 남송의 ‘영가학파永嘉學派’는 이른바 ‘사공학事功學’의 주류로서, 그 대표 인물인 엽적은 ‘사공事功(일과 그에 대한 노력)을 역설한 바 있다. 그는 상인을 경시하는 유가의 전통 관념에서 탈피해, 물질을 인종의 실체적 개념으로 중시하고 실리를 정의의 기초로 제창했다. 또한 훌륭한 나라를 만드는 것은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지 입으로 이론만을 따지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물질을 근본으로 삼는 실용주의적 사상은 ’영가학파‘철학의 근간으로서 중상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었다. 사서에서도 남송 시기의 온주는 이미 온갖 물산이 풍부했고, 주민 대부분이 상인이었으며, 해외무역이 발달된 항구로 나온다. 남송 이래로 온주인들은 더 이상 농업에 연연하지 않고, 분분히 전국 각지를 떠돌아다니며 보부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전통문화는 온주가 최근 20년 동안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 원천 가운데 하나로 작용했다. 온주인들의 의식 깊숙한 곳에 공통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상업문화는, 그들 나름대로의 독특한 경영방식과 능력을 형성했다.
온주상인에게 배우는 경영전략 - 실리와 실천으로 성공을 짓는다 : 비즈니스의 법칙에 관해 얘기해보라고 하면, 거의 모든 사업가들이 단 숨에 몇 십 가지를 주워섬긴다. 하지만 실제 경영에서는 사람들마다 커다란 우열의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이 모든 차이의 궁극적인 원인은 실천에 있다. 온주인들의 창업 과정이 다른 사람들의 창업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는데도, 그들이 하나같이 적지 않은 돈을 벌고 사업에 성공했던 이유도 결코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온주인에게는 다른 이들이 갖지 못한 장점, 즉 현실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해 재빨리 결정을 내리고 이를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특이한 기질이 있는 것이다.
개인을 위한 소비에 매우 인색하다
일 원을 만 원처럼 쓰다 : 대부분의 중국 상인들은 비교적 강한 소농의식을 갖고 있다. 이들은 한두 건의 사업이 성공해 돈을 벌면 일단 목이 뻣뻣해지면서 조상뿐만 아니라 자신의 성조차 잊어버린다. 그래서 이들은 돈을 숭배하지만 결국 돈의 노예가 되어 대업을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온주인들은 그렇지 않다. 온주인들은 벌어들인 돈을 사업을 확대하거나 기술력을 높이는 데 다시 투자해 좀더 큰돈을 벌어들인다. 이거이 바로 온주인들이 돈을 쓰는 방식이다. 온주인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목표를 세우고,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제대로 돈을 쓴다.
온주상인에게 배우는 경영전략 - 소비는 소심하게, 투자는 과감하게 하라 : 온주인들은 개인생활을 위한 소비에는 매우 인색하지만, 사업에 투자하는 돈은 액수가 많든 적든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눈덩이를 굴리는 것처럼 자본을 운영해 빠른 속도로 늘린다. 이런 온주인을 두고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광동 사람들은 뭐든지 다 먹고, 온주 사람들은 무슨 돈이든지 다 법니다.” 그럴 듯한 말이지만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해야 한다. 불법적인 돈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온주인들은 돈을 잘 벌기도 하지만, 잘 쓰기도 한다. 그렇지만 쓰지 말아야 할 데에 돈을 쓰고 나서 후회하는 일은 없다. 꼭 돈을 써야 할 때라면 아낌없이 과감하게 쓰는 게 바로 온주인이다.
정치와 정보에 누구보다도 정통하다
공리적이고 실용적인 면에서 정치를 바라보다 : 중국의 상인들에게는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전통이 있었다. 인간의 생존과 발전은 사회 전체에 의해 유지되므로 모든 사람이 이에 대한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천년 역사를 거쳐 오면서 상인들은 정치와 자신의 일을 따로 떼어놓고 보는 경향이 생겨났다. 공익을 위해 개체를 희생하는 행위가 바로 정치이다. 반면, 상업 활동은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익을 추구하는 상인들은 자기희생을 원치 않기 때문에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 이는 수천 년에 거쳐 내려오면서 상인들이 체득한 교훈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문제가 있다. 과거의 상인들이 인식한 정치는 오늘날의 발전된 현대 정치와는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사실 상업과 정치는 성숙된 호혜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온주상인들은 정치에 커다란 관심을 갖는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의정활동에 참여해 경제발전을 이끌어가는 정치적 역량을 형성한다. 역동적인 사회의 주인공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온주인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에 대해 그들이 갖고 있는 두려움부터 얘기해야 한다. 온주인들은 과거 정치로 인해 많은 타격을 받아왔다. 따라서 그들은 스스로 합리합법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온주인들의 관심을 갖는 정치는 표면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공리적이고 실용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경제적 측면에서 정치를 바라본다. 그들은 국가의 중요 경제 관련 정책들에 관심을 갖는다. 그들은 선거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는다. 왜냐하면 선거란 자신들을 위해 말하고 일할 사람을 뽑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때 온주인들은 정치를 외면하고 극단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로 간주되었으나, 지금은 오히려 정치를 동경하고 열망하는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정치를 잘 아는 사람이 사업도 가장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주인들이 뉴스와 정보에 누구보다도 정통해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온주상인에게 배우는 경영전략 - 정책을 살피면 사업이 보인다 : 온주인들의 용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세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은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따지지 않고,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묻는다. 이 두 가지 물음은 전혀 다른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다. 국가 정책에 대한 이해에서 온주인들은 정책의 발전방향을 먼저 예측한다. 그리고 이를 기초로 해서 대담한 사업적 구상이 이루어지면 가능성 여부를 타진하고, 일단 가능한 것으로 판단되면 곧장 행동에 들어간다. 망설이거나 뜸들이는 일이 없는 그들의 용기와 기동력이 성공의 힘인 것이다.
9장. 융통 - 한 길을 어두워질 때까지 달려서는 안 된다
사업의 기회는 사고의 전환에서 싹튼다
사회현상 속에 숨겨진 기회를 끌어내라 : “한 길을 어두워질 때까지 달려선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사고의 방향이 사통팔달四通八達하기 때문에 적시적소에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융통성과 순발력은 장사에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이른바 경업敬業정신이란 자신이 선택한 업종을 존중하는 것으로서 자신의 생명을 존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사업을 할 때는 항상 말을 바꿔 탈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찾아온 사업의 기회를 존중해 놓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신의 사업과 생명을 존중하는 일이다. 상인들은 장사의 기회를 잘 파악해야 하고, 일단 기회를 발견하면 이를 창의적으로 소화하는 데 뛰어나야 한다. 이러한 혜안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학습과 훈련 그리고 종합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온주인들은 과감하게 창업할 줄 알고, 뛰어난 창업의 기질을 갖추고서 용감하게 천하를 주유한다.
온주상인에게 배우는 경영전략 - 영감을 소중히 하라 : 중국 최초의 농민 도시인 용항진은 온주의 지역경제를 활성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유력 업종을 탄생시켰다. 오늘날 이곳은 중국 저전압기의 생산기지로 자리매김되고 있는데, 20년 전만 해도 낙후된 강촌 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이 농민도시는 사실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것이었다. 용항진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진정모陣定模라는 인물에서 시작된다. 1984년, 그는 새로 계획된 용항진의 진위鎭委 서기에 임명되었다. 그가 맡은 임무는 용항진을 명실상부한 소도시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진정모에게는 자금도 없었고 인력도 없었다. 자신의 힘으로 묘책을 마련하는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가 생각해낸 방법은 닭을 빌려 알을 낳는 것이었다. 현지 신문에 ‘용항진의 대외개방 결정’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발표되면서 바로 옆에 진정모가 구상한 도시개발 청사진이 게재되었다. 이와 함께 “지역과 사람을 불문하고 누구든지 투자한 만큼 혜택을 누린다”는 구호가 제시되었다. 이로써 도시건설에 착수할 수 있는 자금이 조성되는 순간, 중국 최초의 농민도시라는 꿈이 온주 땅에 실현되어 가기 시작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이러한 자금모집을 통한 지역개발이 하나의 일반적인 모델로 자리 잡고 있지만, 당시에는 국가의 정책이 지나치게 고착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이런 방향으로 사고를 전환하지 못했던 것이다. 진정모는 가장 먼저 사고의 전환을 실행했다. 당시 중국에는 진정모 같은 인물이 없었다. 그는 사회 전체의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았고 발상의 전환으로 마술 같은 위업을 이루어냈다. 이것이 온주인의 기질이다. 사업의 기회에 민감하고, 언제 어디서나 적극적인 행동을 취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어느 정도의 사업경험을 축적한 사람들만이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져 버리는 영감을 붙잡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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