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머무른 자리] |
‘인도차이나’의 추억, 베트남 호치민&하롱베이 |
슬프도록 아름다운 옛사랑의 그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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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글 /이형준 |
베트남만큼 변화무쌍한 역사를 간직한 나라가 또 있을까. 질곡으로 점철된 이 나라 역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여러 편이 있지만, 레지스 와그니어 감독의 1992년작 ‘인도차이나’만큼 뚜렷한 잔상을 남긴 영화는 드물다. 베트남의 현재 수도는 과거 월맹군의 거점도시인 하노이이지만, 가장 활기 넘치는 곳은 예나 지금이나 남부 베트남의 수도인 옛 사이공이다. 베트남이 통일되면서 호치민으로 이름이 바뀐 이 도시는 영화 ‘인도차이나’의 흔적을 이곳저곳에 품고 있다.
세련된 외모와 도도한 성격의 주인공 엘리안 드브리(카트린 드뇌브)와 프랑스 해군 장교인 장 밥티스트(뱅상 페레)가 함께 운명의 시간을 보낸 곳이 바로 호치민이다. 비 내리는 밤 두 사람이 자동차에서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 엘리안 드브리와 경찰국장인 이베트(도미니크 블랑)가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장면, 장 밥티스트가 총에 맞은 카미유(린당 팜)를 치료하는 장면 등이 모두 이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
인도차이나의 ‘작은 파리’ 오랜 세월 프랑스와 미국의 영향권에 놓여 있던 호치민은 하노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본주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흔히 호치민 시를 가리켜 ‘작은 파리’라고 부를 정도. 도심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무역센터를 찾아 스카이라운지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면 이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사이공 강을 따라 야자수와 열대림으로 이루어진 녹지 공간, 강물 위로 한가롭게 떠다니는 유람선, 멋진 자태를 간직한 서양식 건축물이 자아내는 정취는 파리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영화의 무대가 된 장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지만 중심은 도심에 해당하는 동코이 거리다. 이베트 국장이 차를 마시며 엘리안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콘티넨탈 호텔의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바라본 주변 풍광은 그대로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다. 자전거를 개조해 만든 시클로라는 독특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어디론가 이동하는 아오자이 차림의 여성들, 작은 스쿠터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질주하는 젊은 남녀,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행상까지.
그런가 하면 활기찬 이들 거리 인근에는 베트남의 가슴 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도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와 미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싸웠던 베트남 사람들의 처절한 삶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 식민지 시절 이들이 겪어야 했던 핍박과 잔혹상이 고스란히 아로새겨져 있다. |
하롱베이, 하이퐁, 그리고 위에 영화 ‘인도차이나’의 또 다른 주요배경인 하롱베이와 그 주변지역은 이 영화로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노이에서 동쪽으로 120㎞쯤 떨어져 있는 하롱베이는, 영화 속에서 장 밥티스트가 파티가 열리는 엘리안 드브리의 저택으로 찾아와 소란을 피웠다는 이유로 좌천되어 복무하던 곳이다. 장 밥티스트가 카미유와 함께 도망치는 장면을 촬영한 곳은 하롱베이의 대표적인 종유석 동굴인 승소트 동굴 입구의 선착장 주변이다.
한편 하롱베이 여행의 거점지로 잘 알려진 하이퐁도 영화에 등장한다. 프랑스 경찰의 추적을 받던 카미유와 장 밥티스트가 숨어 지내면서 아이를 출산한 곳, 공사장에서 일하던 가족과 함께 탈출해 하롱베이를 향해 달리던 차 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들판과 산이 바로 하이퐁 외곽지역이다. 또한 왕가의 후손인 카미유가 집안 어른들 앞에서 결혼을 약속하는 의식을 치르던 곳은 베트남 최후의 왕조인 구엔 왕조의 도읍이었던 위에다. |
진정한 매력 포인트는 순박한 사람들 영화 끝부분에서 엘리안 드브리가 과거를 회상하며 손자에게 집안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을 촬영한 곳은 베트남이 아니라 스위스의 제네바다. 레만 호수를 중심으로 고풍스러운 빌딩과 잘 가꾸어진 공원, 고급상점 등으로 워낙 유명한 제네바지만, 특히 이 장면의 무대가 된 도심지의 호텔과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호수 주변은 감미로운 추억을 선사할 만한 공간이다. ‘인도차이나’는 세계 관객들에게 베트남을 새롭게 각인시킨 영화였다. 그 무대가 된 베트남은 영화에 등장한 곳 이외에도 흥미로운 장소가 즐비하다. 하지만 베트남의 진정한 매력 포인트는 그 순박한 사람들이다. 이방인을 따뜻한 미소로 맞아주는 친절한 베트남인들이야말로 가장 큰 자랑거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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