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생같은 집
자연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다. 남극에서 집을 만드는 가장 좋은 재료가 얼음과 눈이었듯, 대지의 자손인 우리네 살림집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재료 역시 흙이었다. 그것을 이기면 벽돌이 되고 벽체가 되는, 그리하여 마침내는 세상 그 어떤 집보다 따뜻한 집 한 칸이 되어 우리를 품어 주었던 흙. 이제는 점차 사라져 가는 흙집에서, 새삼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할 줄 알았던 옛 조상들의 슬기를 본다.
이동범 (계간 『귀농통문』 편집위원)
(도목수에 의해서 도리가 얹어지고 있는 모습. 기둥 맨 윗머리에 끼워 맞추는데 커다란 나무망치로 처서 박는다. 흙집의 골격을 나무로 할 경우 모든 것이 이렇게 조립되어 맞춰진다.
나무는 숨을 쉬고 세월따라 자리잡으며 자기 편한대로 틀어지기 때문에 못을 쓰는 것보다는
이렇게 짜맞추는 것이 알맞다.)
몇 년 전, 강원도 주천에 갔다가 매우 인상적인 흙집을 보았다. 집 벽의 두께만도 45cm 정도로 두툼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 집을 지을 때 터파기 공사를 하면서 파낸 흙으로 벽을 세웠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벽체를 만들 때도 흙벽돌을 만들어 쌓거나 얼개미를 만들어 여기에 흙을 친 것이 아니라, 합판으로 거푸집을 만들고 거기에 맨흙을 넣고 다진 다음, 바로 거푸집을 뜯어내어 바람으로 건조시켜 단단한 벽체로 만들었다. 말하자면 집 한 채가 한 장짜리 벽돌로 지은 셈인데, 이렇게 마당의 흙만으로도 튼튼한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점에서 흙이 얼마나 강한가를 알 수 있겠다.
흙은 이렇듯 우리 주변 어디서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데다 돈도 들지 않을 뿐더러, 벽체의 재질로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우리 조상들로부터 매우 매력적인 건축재로 각광받았다. 따라서 우리나라 옛 살림집의 대부분이 흙집이다. 흙집이란 집 형태의 대부분을 흙으로 처리한 집을 말한다. 흔히 초가니 기와집이니 너와·굴피집이니 하는 것도 지붕의 마감 재료에 따라 달리 불렀을 뿐, 이러한 집들의 벽체는 대부분 흙으로 채워진다.
우리 조상들이 이렇게 흙을 많이 사용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흙[土]은 동양사상의 오행(五行)인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에서 바로 중앙에 해당하는데, 토는 오행의 으뜸으로서 다른 모든 것들을 아우르고 중화시키는 성질을 갖고 있다. 즉 나무를 키우며 불을 제압하고 금을 배태(胚胎)시키며, 물을 빨아들인다.
이러한 중성적 성질 때문에 흙은 우리네 살림집 구성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살림집의 기본 골격인 기둥·도리·보의 나무 재질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 것도 흙이요, 겨울철 뜨거운 방구들을 타고 흐르는 화기(火氣)를 견디고 보존하는 것도 흙이기 때문이다. 또한 뜨거운 여름철에도 쉽게 달궈지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
흙집을 지을 때는 제일 먼저 터잡기[卜居]를 하였는데, 북쪽과 서쪽에 산을 등지고, 동쪽과 남쪽이 트이고, 골짜기나 비탈처럼 약간 경사진 곳에 놓인 평지를 제일 좋은 집터로 삼았다. 집터를 잡은 다음에는 주변의 자연 조건과 규모에 맞게 건물 배치[坐向]를 한다. 좌향은 매우 중요해서, 어느 쪽으로 집의 방향을 잡고 배치하느냐에 따라 집 주인의 운명이 좌우된다고 할 정도였다. 옛 자료에 의하면 “살림집의 좌향은 남향을 으뜸으로 치고, 동향은 버금으로 치며, 북향과 서북향은 불가하다”고 한다.
땅과 하늘이 혼례를 치르는 터잡기와 터닦기
(방고래 위에 구들돌이 얹어지는 모습. 불을 다스리고 머금는 흙과 돌을 이용해 방바닥이 만들어진다. 토는 쉽게 뜨거워지지 않지만 일단 달궈지면 쉽게 식지 않는다. 외부 활동이 적고 실내생활이 많은 우리의 겨울 풍속으로 보자면 이러한 축열방식의 난방이 무척이나 효율적이다.)
우리나라의 겨울에는 살을 에이는 듯한 매서운 북서풍이 분다. 이 바람을 맞고 살면 건강을 해칠 뿐더러 난방을 하는 데도 많은 정력을 소비해야 한다. 집의 배치가 동남향 쪽이 트이고 북쪽으로 산을 업으면 겨울철 북서풍을 피할 뿐더러 동남쪽으로 지나는 태양을 오랫동안 껴안으니, 볕이 그리운 겨울날에 따뜻한 삶터가 된다.
터가 정해지고 집의 배치가 결정되면 이어서 기둥자리가 정해진다. 이제부터 터닦기[開基]에 들어간다. 터닦기는 땅과 하늘의 혼례로서, 달구질을 통해서 맨땅을 단단히 다지는 일이다. 무거운 돌이나 커다란 나뭇등걸을 여러 가닥의 밧줄로 매달아 사람들이 잡아당겼다가 놓는 식으로 집이 들어설 땅 전부를 다지는 것이, 수천 년을 내려온 우리나라 전통의 터닦기 방식이다.
이렇게 집터를 달구질한 다음 기둥이 들어설 자리에 구멍을 판다. 보통 3자 내외로 판 다음 잡석-모래-잡석-모래 등으로 다져 넣는다. 주춧돌이 들어설 부분을 튼튼히 다지는 이유는, 겨울철 땅이 얼어 부풀어오르더라도 주춧돌의 흔들림으로 집이 뒤틀리거나 무너져 내려앉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기초를 닦는다’는 말이 여기에서 비롯된 말인데, 집의 튼튼함은 바로 이 기초에 달려 있기에 매우 중요하다.
옛날에는 주춧돌을 놓지 않고 달구질한 땅 위에 구멍을 파고 바로 기둥을 박아 세웠는데 점차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놓는 식으로 바뀌었다. 주춧돌은 궁궐이나 신성한 곳 등 특별한 공간에서만 다듬돌을 썼을 뿐 그밖에는 모두 막돌을 썼다. 지금의 석재는 모두 기계로 처리하기 때문에 다듬돌을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품이 덜 들고 공사도 쉽겠지만, 옛날에는 정반대였다. 따라서 막돌의 요철(凹凸)에 맞추어 기둥 밑을 깎는 ‘그랭이질’을 하여 기둥을 세웠다.
기둥을 세운 뒤에는 도리와 보를 얹는다. 지붕의 무게를 기둥으로 분산시키고 서까래를 받쳐 주기 위해서다. 기둥의 맨 윗머리를 연결하여 사방으로 빙 둘러 얹어 지붕의 서까래를 받쳐 주는 나무가 ‘도리’이고, 도리와 도리를 중간에 가로질러 연결한 것이 ‘보’이다. 보는 집의 앞뒤를 가로질러 지붕의 무게를 떠받들어 ‘들보’라고도 하는데, 들보 중에서 가장 중앙에 있는 큰 들보를 ‘대들보’라 부른다.
서까래는 지붕 위에 얹는 지붕 재료(기와·억새·짚·너와·굴피 등)를 받쳐 주는 가느다란 나무기둥인데, 도리 위에 걸쳐져 지붕의 무게를 견딘다. 나무가 많이 들어가는 탓에 서민들은 굵고 좋은 재질의 나무를 쓰지 못했다. 게다가 기와를 얹으면 그만큼 지붕 무게가 무거워 서까래도 굵은 것을 써야 했으니, 서까래의 굵기를 보면 집 주인의 부와 권력을 가늠할 수 있겠다.
도리부터 서까래 나무의 끝 부분까지를 처마라고 하는데, 처마의 길이는 지역과 좌향에 따라 약간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기둥 높이의 약 80% 이내로 잡는다. 상당히 처마 폭이 긴 셈인데 이것은 우리 흙집의 한 특징이기도 하다. 즉 여름철 태양이 지나가는 길[黃道]에서는 햇볕이 처마에 가려 바라지[光窓]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처마 길이를 길게 빼는 것이다. 서양식 건축은 처마가 짧아 창문의 커튼 문화가 발달했지만, 우리 흙집은 긴 처마를 통해 여름에는 직접광이 아닌 반사광을 쓰고 겨울철에는 직접광을 받아들이고자 했다.
옛 사람들의 슬기가 담긴 처마와 석축
(지붕의 서까래목이 그대로 드러나 자연미가 물씬 풍긴다. 굳지 않은 소나무의 곡선도 따지고 보면 우리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연재목을 쓰는 데서 비롯된 것이어서 우리 흙집의 자연친화성이 더욱 돋보인다.)
이러한 조명 방식은 우리의 불상 조각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예컨대, 야외에 있는 마애불의 눈은 크게 조각함으로써 위에서 내리쬐는 햇볕으로 생기는 눈그늘 때문에 실제 눈이 가늘어지는 부분을 감안하고, 실내에 있는 불상의 눈은 가늘게 조각함으로써 처마에 걸린 햇빛이 실내 바닥의 반사광으로 눈이 커 보이는 착시 현상을 고려하는 것이 그것이다.
처마를 길게 만드는 것은, 채광 각도 외에도 집의 아랫부분에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집의 방향과 지역 날씨에 따라 비바람이 들이치는 정도를 감안해서 처마 길이를 정했는데, 만일 처마 길이가 짧아 비바람이 집 기둥 아래로 들이친다면 기둥 밑은 쉬 썩고 흙벽은 허물어질 것이다. 기둥의 길이와 처마의 길이는 이렇게 상호 연관성을 갖는다.
그렇다면 지붕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도 기둥 밑과 흙벽의 아랫부분에 안 닿아야 할 것이다. 우리 흙집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석축을 쌓았다. 흙집은 반드시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집을 올리는데, 그 이유는 첫째로 낙숫물이 튈 때 기둥의 아랫부분에 닿지 않게 하며, 둘째로 땅의 습기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며, 셋째로 달구질한 지표면 위로 구들을 놓고 주춧돌을 놓는 건축 방식상 일정한 높이를 가진 석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석축의 끝은 반드시 지붕의 처마선 바로 안쪽에 놓여 있다.
처마와 석축 사이에 존재하는 벽체는 집의 구조와 형태·지역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벽체의 기본 틀이 목조 가구로 짜여지고 그 안을 흙으로 채우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부터 살펴보자. 흙벽돌로 쌓는 것과 벽체의 얼개미를 만들고 여기에 흙을 치는 두 가지 방법이 눈에 띄는데, 흙벽돌로 쌓는 경우에는 나무기둥을 쓰지 않기도 한다. 황토를 이겨 나무로 만든 벽돌틀에 다져 넣고 꺼낸 다음 그늘에서 건조시키면 단단한 흙벽돌이 된다. 그런데 찰지고 점성이 강한 흙일수록 마르는 과정에서 잘 트므로 이를 막기 위해 여물을 섞어 쓴다. 여물로는 짚이나 삼(麻), 짐승 털을 잘게 썰어 넣는다.
벽체의 얼개미를 만들고 여기에 흙을 치는데, 얼개미는 가로 기둥 사이에 중간 중간 꽂아 놓은 중깃막대기를 얼개 삼아 싸리가지·수수깡·시누대·장작개비 등을 가로로 대고, 새끼줄이나 칡으로 묶어 주어 발 모양으로 전체를 엮어 만든다.
이렇게 발처럼 펼쳐진 얼개미(중깃벽)가 보이지 않도록 흙을 치는데, 흙이 건조되는 속도는 실내가 느리므로 안벽부터 먼저 친 다음 바깥벽을 나중에 친다. 우리 속담에 ‘안벽 치고 밖벽 친다’는 말도 여기서 유래된 말이다.
얼개미에 흙을 붙이는 초벽(初壁) 작업이 끝나면 다음으로 거칠고 틈새가 생긴 초벽을 말끔히 단장하는 덧바르기 작업을 한다. 이른바 사벽(砂壁) 작업인데, 고운 흙과, 모래 등을 섞은 점성이 약한 흙으로 초벽 위를 덧발라 마무리 맥질을 하는 것이다. 권세나 부가 있는 집은 이 위에 다시 석회를 덧바르지만 서민들의 흙집은 이로서 흙벽이 마무리된다. 여물이나 얼개 없이 흙벽돌만으로 벽체를 쌓을 때는 흙 자체만으로도 습도를 감내할 수 있도록 두께를 최소한 한자(30.3cm) 이상으로 한다.
내 살 곳을 빌렸다 다시 돌려주어야 할 자연
(충남 서산 개심사의 심검당. 자연목재를 이용한 기둥과 도리가 보여주는 곡선미는 우리 건축이 갖는 수수하고 잔잔한 아름다움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흙집들로 이루어진 옛 마을을 보면 주변의 풍광과 잘 어울리며 눈이 피로하지 않다. 자연에서 가져온 재료로 자연의 특성에 맞게 지었기에 자연의 색과 선을 갖게 마련이다. 흙집은 군더더기 없이 단출하고 작을수록 예쁘고 쓰임새도 좋다. 또한 집 안과 집 밖이 나뉘지 않고 연결되어 있는 열린 구조이다.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삶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들이 사는 집 또한 자연과의 호흡과 연결을 매우 중요시 여겨야 할 것 같다. 자연으로부터 잠시 살 곳을 빌리고 다시 자연으로 돌리는 과정 자체가 아무런 무리가 없고, 그런 만큼 자신이 감당할 정도의 영역만을 필요로 하여 지어지는 흙집. 이러한 흙집을 통해 소박함과 검소함, 자연과 대화하는 마음을 길렀으면 한다.
이동범(중앙대학교를 마치고 겨레문화답사연합 대표로 활동했다. 현재 계간 『귀통농문』 편집위원으로, 저서에 『자연을 꿈꾸는 뒷간』이 있다.)
- 자료출처 : 삼성문화재단
자연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다. 남극에서 집을 만드는 가장 좋은 재료가 얼음과 눈이었듯, 대지의 자손인 우리네 살림집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재료 역시 흙이었다. 그것을 이기면 벽돌이 되고 벽체가 되는, 그리하여 마침내는 세상 그 어떤 집보다 따뜻한 집 한 칸이 되어 우리를 품어 주었던 흙. 이제는 점차 사라져 가는 흙집에서, 새삼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할 줄 알았던 옛 조상들의 슬기를 본다.
이동범 (계간 『귀농통문』 편집위원)
(도목수에 의해서 도리가 얹어지고 있는 모습. 기둥 맨 윗머리에 끼워 맞추는데 커다란 나무망치로 처서 박는다. 흙집의 골격을 나무로 할 경우 모든 것이 이렇게 조립되어 맞춰진다.
나무는 숨을 쉬고 세월따라 자리잡으며 자기 편한대로 틀어지기 때문에 못을 쓰는 것보다는
이렇게 짜맞추는 것이 알맞다.)
몇 년 전, 강원도 주천에 갔다가 매우 인상적인 흙집을 보았다. 집 벽의 두께만도 45cm 정도로 두툼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 집을 지을 때 터파기 공사를 하면서 파낸 흙으로 벽을 세웠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벽체를 만들 때도 흙벽돌을 만들어 쌓거나 얼개미를 만들어 여기에 흙을 친 것이 아니라, 합판으로 거푸집을 만들고 거기에 맨흙을 넣고 다진 다음, 바로 거푸집을 뜯어내어 바람으로 건조시켜 단단한 벽체로 만들었다. 말하자면 집 한 채가 한 장짜리 벽돌로 지은 셈인데, 이렇게 마당의 흙만으로도 튼튼한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점에서 흙이 얼마나 강한가를 알 수 있겠다.
흙은 이렇듯 우리 주변 어디서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데다 돈도 들지 않을 뿐더러, 벽체의 재질로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우리 조상들로부터 매우 매력적인 건축재로 각광받았다. 따라서 우리나라 옛 살림집의 대부분이 흙집이다. 흙집이란 집 형태의 대부분을 흙으로 처리한 집을 말한다. 흔히 초가니 기와집이니 너와·굴피집이니 하는 것도 지붕의 마감 재료에 따라 달리 불렀을 뿐, 이러한 집들의 벽체는 대부분 흙으로 채워진다.
우리 조상들이 이렇게 흙을 많이 사용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흙[土]은 동양사상의 오행(五行)인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에서 바로 중앙에 해당하는데, 토는 오행의 으뜸으로서 다른 모든 것들을 아우르고 중화시키는 성질을 갖고 있다. 즉 나무를 키우며 불을 제압하고 금을 배태(胚胎)시키며, 물을 빨아들인다.
이러한 중성적 성질 때문에 흙은 우리네 살림집 구성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살림집의 기본 골격인 기둥·도리·보의 나무 재질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 것도 흙이요, 겨울철 뜨거운 방구들을 타고 흐르는 화기(火氣)를 견디고 보존하는 것도 흙이기 때문이다. 또한 뜨거운 여름철에도 쉽게 달궈지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
흙집을 지을 때는 제일 먼저 터잡기[卜居]를 하였는데, 북쪽과 서쪽에 산을 등지고, 동쪽과 남쪽이 트이고, 골짜기나 비탈처럼 약간 경사진 곳에 놓인 평지를 제일 좋은 집터로 삼았다. 집터를 잡은 다음에는 주변의 자연 조건과 규모에 맞게 건물 배치[坐向]를 한다. 좌향은 매우 중요해서, 어느 쪽으로 집의 방향을 잡고 배치하느냐에 따라 집 주인의 운명이 좌우된다고 할 정도였다. 옛 자료에 의하면 “살림집의 좌향은 남향을 으뜸으로 치고, 동향은 버금으로 치며, 북향과 서북향은 불가하다”고 한다.
땅과 하늘이 혼례를 치르는 터잡기와 터닦기
(방고래 위에 구들돌이 얹어지는 모습. 불을 다스리고 머금는 흙과 돌을 이용해 방바닥이 만들어진다. 토는 쉽게 뜨거워지지 않지만 일단 달궈지면 쉽게 식지 않는다. 외부 활동이 적고 실내생활이 많은 우리의 겨울 풍속으로 보자면 이러한 축열방식의 난방이 무척이나 효율적이다.)
우리나라의 겨울에는 살을 에이는 듯한 매서운 북서풍이 분다. 이 바람을 맞고 살면 건강을 해칠 뿐더러 난방을 하는 데도 많은 정력을 소비해야 한다. 집의 배치가 동남향 쪽이 트이고 북쪽으로 산을 업으면 겨울철 북서풍을 피할 뿐더러 동남쪽으로 지나는 태양을 오랫동안 껴안으니, 볕이 그리운 겨울날에 따뜻한 삶터가 된다.
터가 정해지고 집의 배치가 결정되면 이어서 기둥자리가 정해진다. 이제부터 터닦기[開基]에 들어간다. 터닦기는 땅과 하늘의 혼례로서, 달구질을 통해서 맨땅을 단단히 다지는 일이다. 무거운 돌이나 커다란 나뭇등걸을 여러 가닥의 밧줄로 매달아 사람들이 잡아당겼다가 놓는 식으로 집이 들어설 땅 전부를 다지는 것이, 수천 년을 내려온 우리나라 전통의 터닦기 방식이다.
이렇게 집터를 달구질한 다음 기둥이 들어설 자리에 구멍을 판다. 보통 3자 내외로 판 다음 잡석-모래-잡석-모래 등으로 다져 넣는다. 주춧돌이 들어설 부분을 튼튼히 다지는 이유는, 겨울철 땅이 얼어 부풀어오르더라도 주춧돌의 흔들림으로 집이 뒤틀리거나 무너져 내려앉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기초를 닦는다’는 말이 여기에서 비롯된 말인데, 집의 튼튼함은 바로 이 기초에 달려 있기에 매우 중요하다.
옛날에는 주춧돌을 놓지 않고 달구질한 땅 위에 구멍을 파고 바로 기둥을 박아 세웠는데 점차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놓는 식으로 바뀌었다. 주춧돌은 궁궐이나 신성한 곳 등 특별한 공간에서만 다듬돌을 썼을 뿐 그밖에는 모두 막돌을 썼다. 지금의 석재는 모두 기계로 처리하기 때문에 다듬돌을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품이 덜 들고 공사도 쉽겠지만, 옛날에는 정반대였다. 따라서 막돌의 요철(凹凸)에 맞추어 기둥 밑을 깎는 ‘그랭이질’을 하여 기둥을 세웠다.
기둥을 세운 뒤에는 도리와 보를 얹는다. 지붕의 무게를 기둥으로 분산시키고 서까래를 받쳐 주기 위해서다. 기둥의 맨 윗머리를 연결하여 사방으로 빙 둘러 얹어 지붕의 서까래를 받쳐 주는 나무가 ‘도리’이고, 도리와 도리를 중간에 가로질러 연결한 것이 ‘보’이다. 보는 집의 앞뒤를 가로질러 지붕의 무게를 떠받들어 ‘들보’라고도 하는데, 들보 중에서 가장 중앙에 있는 큰 들보를 ‘대들보’라 부른다.
서까래는 지붕 위에 얹는 지붕 재료(기와·억새·짚·너와·굴피 등)를 받쳐 주는 가느다란 나무기둥인데, 도리 위에 걸쳐져 지붕의 무게를 견딘다. 나무가 많이 들어가는 탓에 서민들은 굵고 좋은 재질의 나무를 쓰지 못했다. 게다가 기와를 얹으면 그만큼 지붕 무게가 무거워 서까래도 굵은 것을 써야 했으니, 서까래의 굵기를 보면 집 주인의 부와 권력을 가늠할 수 있겠다.
도리부터 서까래 나무의 끝 부분까지를 처마라고 하는데, 처마의 길이는 지역과 좌향에 따라 약간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기둥 높이의 약 80% 이내로 잡는다. 상당히 처마 폭이 긴 셈인데 이것은 우리 흙집의 한 특징이기도 하다. 즉 여름철 태양이 지나가는 길[黃道]에서는 햇볕이 처마에 가려 바라지[光窓]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처마 길이를 길게 빼는 것이다. 서양식 건축은 처마가 짧아 창문의 커튼 문화가 발달했지만, 우리 흙집은 긴 처마를 통해 여름에는 직접광이 아닌 반사광을 쓰고 겨울철에는 직접광을 받아들이고자 했다.
옛 사람들의 슬기가 담긴 처마와 석축
(지붕의 서까래목이 그대로 드러나 자연미가 물씬 풍긴다. 굳지 않은 소나무의 곡선도 따지고 보면 우리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연재목을 쓰는 데서 비롯된 것이어서 우리 흙집의 자연친화성이 더욱 돋보인다.)
이러한 조명 방식은 우리의 불상 조각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예컨대, 야외에 있는 마애불의 눈은 크게 조각함으로써 위에서 내리쬐는 햇볕으로 생기는 눈그늘 때문에 실제 눈이 가늘어지는 부분을 감안하고, 실내에 있는 불상의 눈은 가늘게 조각함으로써 처마에 걸린 햇빛이 실내 바닥의 반사광으로 눈이 커 보이는 착시 현상을 고려하는 것이 그것이다.
처마를 길게 만드는 것은, 채광 각도 외에도 집의 아랫부분에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집의 방향과 지역 날씨에 따라 비바람이 들이치는 정도를 감안해서 처마 길이를 정했는데, 만일 처마 길이가 짧아 비바람이 집 기둥 아래로 들이친다면 기둥 밑은 쉬 썩고 흙벽은 허물어질 것이다. 기둥의 길이와 처마의 길이는 이렇게 상호 연관성을 갖는다.
그렇다면 지붕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도 기둥 밑과 흙벽의 아랫부분에 안 닿아야 할 것이다. 우리 흙집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석축을 쌓았다. 흙집은 반드시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집을 올리는데, 그 이유는 첫째로 낙숫물이 튈 때 기둥의 아랫부분에 닿지 않게 하며, 둘째로 땅의 습기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며, 셋째로 달구질한 지표면 위로 구들을 놓고 주춧돌을 놓는 건축 방식상 일정한 높이를 가진 석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석축의 끝은 반드시 지붕의 처마선 바로 안쪽에 놓여 있다.
처마와 석축 사이에 존재하는 벽체는 집의 구조와 형태·지역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벽체의 기본 틀이 목조 가구로 짜여지고 그 안을 흙으로 채우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부터 살펴보자. 흙벽돌로 쌓는 것과 벽체의 얼개미를 만들고 여기에 흙을 치는 두 가지 방법이 눈에 띄는데, 흙벽돌로 쌓는 경우에는 나무기둥을 쓰지 않기도 한다. 황토를 이겨 나무로 만든 벽돌틀에 다져 넣고 꺼낸 다음 그늘에서 건조시키면 단단한 흙벽돌이 된다. 그런데 찰지고 점성이 강한 흙일수록 마르는 과정에서 잘 트므로 이를 막기 위해 여물을 섞어 쓴다. 여물로는 짚이나 삼(麻), 짐승 털을 잘게 썰어 넣는다.
벽체의 얼개미를 만들고 여기에 흙을 치는데, 얼개미는 가로 기둥 사이에 중간 중간 꽂아 놓은 중깃막대기를 얼개 삼아 싸리가지·수수깡·시누대·장작개비 등을 가로로 대고, 새끼줄이나 칡으로 묶어 주어 발 모양으로 전체를 엮어 만든다.
이렇게 발처럼 펼쳐진 얼개미(중깃벽)가 보이지 않도록 흙을 치는데, 흙이 건조되는 속도는 실내가 느리므로 안벽부터 먼저 친 다음 바깥벽을 나중에 친다. 우리 속담에 ‘안벽 치고 밖벽 친다’는 말도 여기서 유래된 말이다.
얼개미에 흙을 붙이는 초벽(初壁) 작업이 끝나면 다음으로 거칠고 틈새가 생긴 초벽을 말끔히 단장하는 덧바르기 작업을 한다. 이른바 사벽(砂壁) 작업인데, 고운 흙과, 모래 등을 섞은 점성이 약한 흙으로 초벽 위를 덧발라 마무리 맥질을 하는 것이다. 권세나 부가 있는 집은 이 위에 다시 석회를 덧바르지만 서민들의 흙집은 이로서 흙벽이 마무리된다. 여물이나 얼개 없이 흙벽돌만으로 벽체를 쌓을 때는 흙 자체만으로도 습도를 감내할 수 있도록 두께를 최소한 한자(30.3cm) 이상으로 한다.
내 살 곳을 빌렸다 다시 돌려주어야 할 자연
(충남 서산 개심사의 심검당. 자연목재를 이용한 기둥과 도리가 보여주는 곡선미는 우리 건축이 갖는 수수하고 잔잔한 아름다움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흙집들로 이루어진 옛 마을을 보면 주변의 풍광과 잘 어울리며 눈이 피로하지 않다. 자연에서 가져온 재료로 자연의 특성에 맞게 지었기에 자연의 색과 선을 갖게 마련이다. 흙집은 군더더기 없이 단출하고 작을수록 예쁘고 쓰임새도 좋다. 또한 집 안과 집 밖이 나뉘지 않고 연결되어 있는 열린 구조이다.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삶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들이 사는 집 또한 자연과의 호흡과 연결을 매우 중요시 여겨야 할 것 같다. 자연으로부터 잠시 살 곳을 빌리고 다시 자연으로 돌리는 과정 자체가 아무런 무리가 없고, 그런 만큼 자신이 감당할 정도의 영역만을 필요로 하여 지어지는 흙집. 이러한 흙집을 통해 소박함과 검소함, 자연과 대화하는 마음을 길렀으면 한다.
이동범(중앙대학교를 마치고 겨레문화답사연합 대표로 활동했다. 현재 계간 『귀통농문』 편집위원으로, 저서에 『자연을 꿈꾸는 뒷간』이 있다.)
- 자료출처 : 삼성문화재단
출처 : 보링? 천국 아름다운 이진리 타포니 지형
글쓴이 : 햇살수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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