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하나님의 사랑
직장은 하나님의 사랑이 절실히 필요한 곳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이 직장선교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 하나님의 사랑은 냉랭한 직장을 녹이는 강력한 병기이기 때문이다. 이 사랑을 공급해줌으로써 세상에 꽁꽁 묵인 직장의 영혼들을 녹이고자 하는 것이 직장선교이다. 직장에는 사랑에 너무너무 굶주린 영혼들이 널려 있지 않은가? 왜냐하면 직장은 물질을 매개로 해서 일하고 있으며 소위 경제원칙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 경제원칙은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려는 원칙으로 좋게만 미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 원칙은 실제로 욕심의 원칙이요 그 결과 죄악을 낳고 마침내 사망에 이르게 하는 원칙인 것이다(약1:15). 이런 점에서 경제원칙이 지배하는 직장은 자연스럽게 사망의 지배를 받는 영역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직장은 사망의 원칙이 지배하는 곳이기에 사랑이 풍성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직장에서 경제원칙은 외적으로는 타업체와 치열한 경쟁을 하며, 내부적으로는 노사간에 다투고 있으며, 또 직원 간에는 숨막히는 승진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아주 치열한 욕심의 각축장이 되고 있는 곳이 바로 직장이다. 그래서 직장인 서로서로가 경쟁관계로 발전되는데 극단적인 경우는 적대관계로 비화될 때가 왕왕 있다. 이런 냉혹한 현실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직장일진대 얼마나 사랑에 대해서 굶주려 있겠는가? 이 직장에 있는 영혼들을 사랑으로 포획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직장선교이다. 직장선교를 통해서 영혼들에게 강력한 사랑을 공급함으로 직장의 영혼들을 낚기 원하는 것이다. 냉랭한 직장의 영혼들을 사랑함으로 스스로 찾아가고,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바로 직장선교이다. 사랑은 강퍅한 영혼들을 녹이는 강력이다.
더구나 마지막 때일수록 불법이 성행함으로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성경은 말한다(마24:25). 그 결과 나라가 나라를,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일어나 민심이 각박해지고(마24:7), 그것은 결국 부자, 형제, 자매, 고부간에 서로 사랑하기보다는 대적하게 되고 말 것이다(마10:17). 이 모두가 사랑이 식어졌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들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가 처해있는 직장에서도 오늘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닌가? 이런 점에서 사랑이 식어지고 있는 마지막 때, 더구나 경제원칙이 지배하는 직장을 선교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사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간적인 약육강식과 생존경쟁의 논리가 팽배할 수밖에 없는 곳이 직장이다. 이것이 직장의 영적 분위기인데 이런 것은 더 이상 직장선교의 방해물이 아니라 최대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바로 직장선교사(직장 내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겨울의 차가운 추위를 따뜻한 불로 녹이듯이 하나님의 사랑은 냉랭한 직장을 녹이기에 충분하다. 이것이 바로 직장선교의 비결이다. 사랑의 기근이 든 직장의 영혼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녹여내는 것이다. 그래서 마귀의 전략인 욕심과 죄악과 사망의 원칙인 경제원칙의 헛된 것에 놀아나지 않도록 막아내는 것이 바로 직장선교이다.
사랑은 겉보기에 약하게 보이지만 약한 것이 아니라 아주 강력한 병기이다. 사랑은 물처럼 약해보일지 모르지만 사랑만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것은 없다. 물은 눈이 없어도 잘 찾아가듯, 길이 없어도 스스로 개척해서 나가듯이 사랑은 그만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것이다. 소극적이거나 수동적인 것은 아무리 뭐라고 해도 사랑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주님은 이 사랑 때문에 이 세상까지 오지 않았던가? 사랑에는 왕도가 없으며 오직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실천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에 사랑은 어떤 능력보다 더 강력한 것이다. 사랑은 환난과 핍박과 칼과 기근과 적신(위협)도 이기는 강력한 병기이다. 더 나아가 사랑은 천사도 이기고, 사망도 이기고, 또 다른 피조물도 이기는 강력이다(롬8:35-39).
사랑이 이처럼 강력한 것이지만 약하게 보이는 것은 바로 사랑의 기본 정신인 겸손 때문이다. 즉, 더 강한 힘이 있음에도 약한 것처럼 자신을 낮추기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 사랑은 이처럼 온유와 겸손으로 말미암아 숨겨지고 감추어진 모습으로 보이지만 마침내는 표출하게 된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듯이 사랑도 반드시 표출하게 되어 있다. 비록 사랑이 초기에는 진정한 맛이 안 날지라도 세월이 흐를수록 매우 찐한 맛이 울구어져서 나오게 마련인 것이다.
직장선교에는 이와 같은 사랑이 절실히 요구된다. 바로 직장에는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또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도 않는 사랑을 필요로 한다. 악한 것을 생각치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사랑으로 무장할 때 직장선교는 가능하다. 또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게 하는 것이기에 직장 내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된다(고전13:4-7).
반면에 직장에서 여러 가지 환난과 핍박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직장인에게 닥친 영적인 기근과 위험을 극복할 수 있는 병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밖에 없다. 약하게 보이는 사랑이 이처럼 강한 것이다. 그리고 직장에서 어떤 권세자라도 이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영적으로 천사들이나 직장에서 현재나 장래의 불안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더 나아가 죽음까지도 능히 이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도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연약한 것 같은 사랑이 이처럼 확실한 것이다. 이 사랑으로 무장될 때 직장선교는 넉넉히 성공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것에서 넉넉히 이길 수 있다. 사랑은 마귀와 그 부하들에게 치명타를 날릴 수 있는 신령한 병기이다(롬8:33-38).
어떤 직장이라도 이 사랑이 필요로 하기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무장된다면 직장선교는 충분한 승산을 걸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로 사랑하라’(Love for one another, 요13:35)는 주님의 새 계명에 주의 깊게 순종해야 한다. 이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주신 새로운 계명이기 때문이다. 이 새 계명에 순종할 때 자신이 주님의 제자임을 만민에게 알리는 비결이라고 하였다. 모든 계명은 사랑이라는 기본 강령을 가지고 있는데 새 계명과 옛 계명의 차이는 무엇일까? 바로 새 계명은 서로서로 사랑하는 것이지만 옛 계명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옛 계명은 율법 아래에서 주어진 계명으로 서로 사랑할 만큼의 자유의 정도가 약하다. 하지만 새 계명은 자유한 자들에게 주어진 것으로 자유자 사이에 사랑해야 한다. 죄 아래 억압된 자들은 서로 사랑할 수 없고 가능하다면 서로 비방하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다. 이에 직장선교는 옛 계명이 아니라 새 계명으로 선교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 새 계명이 직장선교의 온전한 병기가 되기 위해서는 그 배경에 주님의 희생이 전제적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주님께서 새 계명을 주기 전에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라고 말씀하신다(요13:31). 이 영광은 외형적으로 멋지고 화려한 것이 아니라 주님 자신이 당하게 될 고난과 희생을 의미하게 된다. 바로 주님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서로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주님의 고난과 희생을 통해서 모든 죄악에서 자유케 됨으로 새 계명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새 계명은 진리를 알고 자유한 자, 곧 은혜 받은 자들, 곧 복음적인 직장선교사만이 받을만한 계명이다.
다시 말해서 새 계명을 따르는 직장선교사는 과거의 율법 아래 살던 사람들과 구별된다. 즉, 과거에는 어느 한편에서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것에 불과하였지만 새 계명은 바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이처럼 과거와 달리 차원 높은 사랑을 실천할 때 직장선교사(직장 내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알릴 수 있다. 여기서 차원 높은 사랑이라는 것은, 주님이 친히 주신 새 계명에서 알 수 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주님의 사랑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의지적인 것, 더 나아가 희생적인 사랑이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조건이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인이요 원수가 되었을 때 사랑을 받았던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가 탕자를 끝까지 사랑하듯, 호세아가 고멜을 끝까지 사랑하듯, 주님도 자기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심을 고백하고 있다(요13:1). 이처럼 조건부나 감정적인 사랑이 아니라 의지를 가지고 서로서로 희생하는 사랑을 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직장선교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님의 사랑을 충분히 받아야 한다. 사랑이 부족하다고 비관하지 말라. 사랑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차고 넘치는데 간수하지 못하기에 사랑의 빈곤을 느낄 뿐이다. 기도함으로써 주님의 품에서 발원된 사랑의 댐을 만들어야 한다. 기도는 차고 넘치는 사랑을 모으기 위해 만든 커다란 둑과 같다. 이 사랑의 댐은 다목적댐으로서 영혼을 구하는 데에 매우 요긴하게 사용될 것이다. 이 사랑의 댐은 사랑의 기근이 들어가는 세상의 영혼들에게 적당히 방류하여 구원하고, 구원된 영혼을 양육하는 생명수를 공급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직장 안에서 사랑의 물결에 온전히 싸여서 각 영혼에게 기쁨이 넘치게 하는 것이 바로 직장선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