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직장선교는 왜 해야 합니까?(Why)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회피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바로 주님의 지상명령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면서 부탁하신, 지상에서 엄히 성취해야 할 명령이다(마28:18-20). 이 명령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남녀노소와 직업의 귀천에 상관없이 누구든지 따라야 할 말씀이다. 여기에는 누구나 변명할 기회도 없으며 핑계할 말이 없이 순종해야 할 엄숙한 명령이다. 이를 통해서 땅 끝까지 은혜의 복음을 전하며 증거하여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이 지상명령을 가장 많이 적용시킨 영역이 해외선교라고 할 수 있다. 해외선교에서는 이 명령을 헌법의 제1조 1항과 같이 취급한다. 이는 당연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주님이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 후에 그의 제자들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지경을 넘어갔으며 그러다가 순교까지 하였다. 이런 본을 받아 그 후 세대들도 그리하였으며, 이와 같이 수고한 자들의 노력으로 이 땅에서도 복음의 물결로 덮이게 되었다.
이제 오늘이라고 일컫는 날 동안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엄숙한 명령 앞에 서게 되었다. 이런 명령으로 볼 때 직장선교의 필요성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즉 모든 직장에 몸담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자신의 직장에서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해야 할 때가 이미 왔다. 땅 끝만 바라보지 말고 자신의 직장이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행하는 장이 되게 하여야 한다. 오늘날의 직장은 복음이 가장 힘쓰지 못하고 있는 복음의 불모지로서 땅 끝과 같기 때문이다. 이에 직장선교의 필요성을 간단히 세 가지 면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1) 성경적인 면
직장선교는 왜 해야 할까? 먼저 성경적인 면에서 직장선교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신앙인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 중요성을 느낄 수 있다. 특히 그들의 생활터전을 더듬어보면 대부분 성경의 인물들이 직업을 가지고 충실하게 임했던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일상의 직장생활로만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였던 것이다. 즉 그들의 직장은 생계유지의 한 방편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명을 성취하는 장소로서 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직장 하나만 감당하기에도 어려운 점이 있는데 신앙의 위인들은 주의 사명까지 훌륭히 성취하고 있다. 이에 직장에서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실현하는 것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임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직장에서 주의 사명과 무관하게 일상적인 직장생활로만 만족해서는 안 된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과 같이 자신의 직장에서 주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주님 앞에서 칭찬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원한다면 자신의 직장에서 주 예수의 사명을 실현해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신앙적 직장인들의 면면을 간략히 생각해보자. 에스겔이 손꼽았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는 노아, 다니엘, 욥 세 사람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전형적인 직장인이었다(겔14:14). 그 중에 노아는 최초의 조선가(造船家)로서 홍수 후에는 농장을 경영하였고, 욥은 대규모의 목축업자였으며, 다니엘은 고위공직자였다. 그 외에도 위대한 신앙인 중에 아브라함, 사무엘, 다윗, 여호사밧 등과 엘리야, 이사야를 비롯한 선지자들, 그리고 여러 사사들이 있다. 또한 신약에 들어와서도 많은 주의 사역자들이 직업을 가진 채 주님을 위해 헌신해왔음을 익히 알 수 있다.
신앙의 위인들 중에서 전임사역자들의 경우는 드문 것 같다. 아브라함 때 이미 멜기세덱이라는 제사장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목축업자 아브라함을 크게 사용하였다. 요셉과 느헤미야는 고급 공무원, 여호수아는 군인, 다윗과 여호사밧은 정치인으로서의 직업을 갖고 있었다. 바울은 밤낮으로 자기 직업이었던 장막 만드는 일을 하고 안식일에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처럼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신앙의 위인으로 추앙 받을 만큼 영적인 면에서도 승리하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직장을 가지고 생활하면서도 얼마든지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용하시는 기준은 그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보다는 그가 어떠한 사람인가에 초점이 있다. 이 원칙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적용되는데 바로 직업보다는 믿음을 따라 역사하는 것이다. 주님의 사명은 어떤 직업을 가졌느냐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어떤 믿음을 가졌느냐에 따라 이루어진다. 오늘의 직장도 이런 사명을 감당하기에 적합한 곳으로 만들어졌다고 확신한다. 이런 직장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증거하고 수고함이 직장선교인 것이다. 그러기에 주님이 최초의 사람에게 주신 명령을 성취하는 하나의 장으로서 직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문화명령을 생각할 때 직장선교의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된다. 이 문화명령으로써,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6-28)는 세 가지 사명을 인류에게 주지 않았는가? 이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가장 합당한 장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날과 같은 직장을 만드셨다고 확신한다. 이 명령 때문에 대부분의 직장은 다국적기업이 되어 세계로 뻗어나가려 몸부림치고 있다. 이에 그리스도인은 그 직장을 배경으로 해서 복음을 증거하여 세계로 뻗어나가야 한다. 직장선교는 이 직장에서 주님의 명령과 말씀이 실현되도록 힘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사회적인 면
둘째로 직장선교의 필요성은 사회구조적인 면에서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은 사회의 구조가 새롭게 틀이 짜여지면서 경제단위 중심인 직장을 축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는 과학의 발달로 거리를 좁히게 되었고, 막혔던 담들을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 중심 단위로 점점 뭉쳐지는 시대가 아니라 점점 더 큰 범위로 혼합 및 연합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에 한 국가 안에 수많은 족속(민족)들이 문을 열고 교류하며 살고 있고, 앞으로는 그 국가마저도 문을 열어서 서로 협조하며 살아가는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한 예로 직장이 조그만 경우도 있지만 다국적기업의 경우 국경을 넘고, 족속(민족)을 초월하여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가고 있다. 이는 지역주의를 삼켜버리고 어쩌면 세계주의로 변화해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사회의 구조가 변화된다는 것은 기존사회에 강력한 지진이 일어나는 것과 비슷하다. 이처럼 사회가 변화되고 있는데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좌시할 수만은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민감하게 변화하지 않는 한 기독교는 약화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이 먼저 변화되지 않으면 오히려 변화의 희생물이 되기 쉽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은 변화의 물결에 직면해있다. 그 중에서도 생활의 터전이 가정에서 직장으로 바뀌게 된 것은 아주 큰 변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가정은 핵가족 시대에서 그나마도 핵분열 되기 시작하였고, 직장은 점점 더 집단화되어 견고한 성이 되어가고 있다.
사회적 구조의 변화에 직접적인 계기는 바로 산업혁명이다. 산업혁명 전에는 단순하게 1차 산업 중심, 즉 농업이나 어업 중심으로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공업이라고 해봤자 가내수공업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런데 산업혁명은 먼저 가족제도에도 대변화를 가져와 대가족제도에서 핵가족제도로 바뀌었으며, 생계유지를 위해 밀집촌을 떠나 새로운 도시들이 형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게 되는 것이 직장이라는 개념인 것이다. 물론 과거보다는 훨씬 다양한 직업들이 만들어지고, 대량생산을 위해서 점점 더 직장의 규모는 커져가게 되었다.
이에 직장선교의 필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산업혁명 이후에 사회적 구조가 가정에서 직장으로 그 중심축이 바뀌어졌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직장이 하나의 새로운 선교의 장으로서 교회들에 의해 개척되어져야 한다. 주의 교회들이 당장의 부흥에만 도취되어서 사회의 변화를 읽지 못한다면 그 성장은 뒤쳐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변화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변화의 희생물이 될 것이다. 그 예로서 산업혁명 전에는 가정 중심의 교회활동이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 후에는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라 변화를 가져왔어야 했었다.
이제 사회의 구조는 산업혁명 시대를 지나쳐서 산업사회의 절정을 넘어서고 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교회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을 따라 가정 중심적인 교회 구조에서 벗어나지 아니하니 매우 안타까울 뿐이다. 이제 사회는 산업사회에서 한 단계 더 진전되어 정보화사회에 진입하였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직장은 여전히 그 중심에 서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직장선교를 중심으로 한 부흥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제 교회들도 직장 중심적인 교회구조로 변화되어 직장선교에 더욱 더 매진해야 할 때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우물쭈물하게 될 때 교회는 부흥의 시기를 놓쳐버리고 쇠락의 수렁에 빠져들어갈지도 모른다.
3) 사역적인 면
셋째로 직장선교의 필요성은 주님의 사역이라는 면에서 당위성을 가진다. 하나님의 사역은 확장되어야 한다. 사역은 한 알의 겨자씨 같아서 그것이 잎을 내고 나무가 되도록 성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역 속에는 복음의 씨알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확장되지 않는 사역은 가치도 없으며 의미가 약화될 수밖에 없다. 복음의 중단이라는 것은 없으며 오직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뿐이다. 복음이란 한 개인이 받으면 가족에게로 또는 이웃에게로 전해져야 한다. 이 복음은 하루의 황금시간에, 또 인생의 황금시기에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직장에서도 여전히 전해져야 한다.
직장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자라면 자랄수록 더욱 확장될 새로운 영역이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고, 넘어야 할 첫 번째 지경이 바로 직장이다. 직장이 가장 중요한 시간을 보내는 있는 곳이기에 그곳을 뛰어넘고 복음을 전할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직장은 반드시 복음으로 점령해야 할 새로운 고지가 되었다. 이 고지를 넘어서지 않으면 새로운 영역으로 어떻게 사역해 들어갈 수 있겠는가? 직장선교는 바로 하루의 황금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사역이요 인생의 황금시대를 회복시키는 사역이라고 할 수 있다. 직장선교를 통해서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황금시기를 되찾아야 한다.
직장은 다른 영역에 비해서 여전히 비복음화 지역으로 남아 있다. 어느덧 한국 교회도 선진국의 전형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이 불행이다. 즉 교회에는 젊은 층은 없어지고 점점 노령화되어가고 있으며, 열심히 일할 남성들은 사라지고 여성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교회는 1990년대에 들어서서 점점 하향곡선을 긋고 있는 것이 영적인 현실인 것이다. 이런 영적인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직장선교가 필요하다. 즉 교회의 노령화와 여성화를 극복하기 위해서 직장선교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직장을 온전히 장악하게 될 때 교회는 알찬 성장을 하게 될 것이다.
직장은 교회에 없는 계층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직장이란 한국 내에서 가장 복음화가 안 된 지경으로써 ‘한국의 땅 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직장선교를 통해서 남성들을 찾고, 젊은 층을 확보함으로 교회의 구조를 정상화할 수 있다. 직장선교는 새롭고 젊으며 힘있는 교회로 만들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사역이다. 더 나아가 복음의 불모지인 ‘한국의 땅 끝’을 정복하기 위한 새로운 “땅 끝 사역”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복음의 현장이 바로 직장이다. 직장선교를 통해서 미래의 교회를 새롭게 세워나가는 전도전략이라고 하겠다.
직장선교는 간단히 말해서 바로 직장에서의 현장사역이라고 한다. 현장사역은 주님께서 친히 몸으로 본을 보여주신 사역이었다. 주님은 어느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설법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영혼들이 처해진 현장에 파고 들어가서 그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면서 복음을 전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고 하시며 이를 현장에서 몸소 실천하셨다(마20:28). 이처럼 직장선교는 직장에서 몸담고 있으면서 무관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들을 위해서 섬기며 사는 사역인 것이다. 이러한 삶은 직장 내에서 부딪히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쉽게 극복하는 원동력이 된다.
직장이라는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직장선교는 그리스도인 직장인으로서 신앙과 생활을 일치시키게 만들어준다. 신앙과 생활이 나누어진 상태에서 바르게 직장선교를 할 수 없다. 직장선교는 직장 안에서 평신도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게 부각되어졌다. 바로 평신도 직장선교사로서 미래의 전개될 새로운 부흥전략에 주인공이 될 것이다. 직장 복음화는 누구보다 직업을 가진 평신도 사역자들이 삶의 현장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철저히 감당함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이런 직장선교는 평신도로 하여금 신앙과 생활이 일치되게 함으로써 더욱 더 성숙된 신앙인으로 만들어준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 직장인의 삶은 한국교회에 새로운 부흥을 가져오는 계기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지난날 선배들이 가정 현장을 철저히 개발해서 한국교회의 부흥을 가져왔듯이, 앞으로 직장현장이 교회들에 의해서 온전히 개발된다면 새로운 부흥은 능히 가능하리라 여겨진다. 바로 직장은 한국교회 부흥과 성장에 있어서 새로운 황금어장으로 서서히 부각되고 있다. 직장을 어떻게 장악하느냐에 따라 성장과 부흥에 희비가 엇갈리게 될 것이다. 직장 내에 몸담고 있는 평신도들의 활동 여하에 따라 교회 앞에 닥친 불행을 미연에 막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직장이라는 현장 속에서 이루어지는 직장선교라고 할 수 있다. 평신도들이 직장에서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온전히 실현할 때 그 부흥의 열매가 맺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