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서지능의 발달적 측면 -
최 세 환
세리자녀상담센터 원장
대구대 재활심리학과 겸임교수(전)
1. 서 론
현재 미국에서는 많은 학교가 「마음의 지능지수」를 수학이나 국어와 같은 필수과목으로 가르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 기업도 사원의「마음의 지성」에 주목하고 EQ를 높이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EQ 즉 「마음의 지능지수」란 무엇인가? 그것은 지능검사로 측정되는 IQ와는 질이 다른 머리가 좋은 것이다. 자기의 진실한 기분을 자각하고 존중해서 마음으로부터 납득이 되는 결단을 내리는 능력, 충동을 자제하고 불안이나 분노 같은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감정을 자제하는 능력, 목표의 추구에 좌절했을 때에도 낙관을 버리지 않고 자기 자신을 격려하는 능력, 남의 기분을 느끼고 이해하는 공감능력, 서로 협력하는 능력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마음의 지능지수」에는 우리에게 새롭고 신기한 개념은 거의 없다. 자제, 협력, 조화, 배려를 중요시하는 것은 우리의 오랜 전통이었다. 그러나 우리사회가 현대화 산업화되면서 우리는 이러한 인간중심의 소중한 가치들을 망각하고 경쟁에서만 살아남도록 잘 훈련되고 길들여진 자기중심적이고 옆을 돌아볼 줄 모르는 사람을 유능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서구적인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다. 가정과 학교에서도 청소년들에게 이러한 가치를 강요하고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많은 청소년들이 돌파구를 찾아 방황하고 있다. 이러한 지적이고 규격화된 인간을 요구하는 압력을 견디지 못하는 청소년들의 문제가 가출, 교내폭력, 여중생의 출산 등 사회병리로 나타나고 있지만 청소년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는 우리의 현행교육제도가 당장 크게 변화가 되는 것은 기대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청소년들에게 압박을 주는 교육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이러한 압박에 잘 대처해 가는 방법도 동시에 가르쳐 나가야 할 것이다. 청소년이 어떠한 좌절과 압력에도 견디며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한다면 결론은 역시 EI 교육이다.
연구에 의하면 EI는 보통의 아이는 사춘기가 끝날 무렵까지 학습한다고 한다. 적절한 시기에 적당한 EI의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서 바로잡기에는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청소년의 이탈과 EI 교육에도 일종의 결정적 시기가 있다는 점들을 감안 한다면 EI 교육은 아무리 일찍 시작해도 이르지 않다.
2. 유아기의 EI 학습과 부모가 가르쳐야 하는 EI
정서의 학습은 태어난 후 얼마 안 되어 시작되고 어른이 될 때까지 이어진다. 미국 국립임상유아교육센터의 보고서에 의하면 생후 2달밖에 안된 유아도 부모의 양육태도에 따라 주위세계에 대한 안도감, 자기의 능력에 대한 자신, 타인에 대한 신뢰감 등에 관련되는 기본적인 정서학습의 내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Eric Erickson의 표현을 빌리면 아이가「기본적인 신뢰감」을 갖게 되는가 「기본적인 불신감」을 갖게 되는것 이라고 하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간의 교류는 어떠한 사소한 것이라도 배후에 정서가 있고 이 정서의 메시지가 오랫동안 반복되는 동안에 아이 자신의 정서나 능력의 핵이 형성되어 간다. 예를 들어 퍼즐을 풀 수 없어서 난처해진 아이가 바쁜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갔을 때 엄마가 기분좋게 상대해 주었을 경우와 「잠깐만 방해하지 마라. 지금 중요한 일을 하고 있으니까」라고 거절한 경우는 어린이가 받아들이는 메시지는 전혀 다르다. 이렇게 주고받는 일이 부모와 자식간에 패턴화 됨에 따라서 어린이의 내부에 인간관계에 대한 정서적 기대가 형성되어 가고 그것이 좋게든 나쁘게든 아이의 인생전반에 있어서의 행동을 결정짓게 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정신적 미숙, 약물중독, 인격장애 등 부적격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다. 이러한 부모는 대부분 아이의 욕구에 귀 기울이기는 커녕 변변히 아이를 돌보는 것조차도 할 수 없다. 부모에게서 무시당하거나 학대를 당하며 자라난 아이는 후에 심각한 타격을 받는데 이들은 불안이 심하고 집중력이 모자라고, 무기력하고, 공격과 틀에 박힌 행동을 되풀이할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일학년에서 낙제하는 확률도 65%에 달한다고 한다.
생후 3~4세까지의 시기에 뇌는 신생아의 크기에서 어른의 약 2/3 크기까지 성장하고 내용적으로도 일생동안 가장 급속히 발달한다. 이 시기에 인간은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들을 일생동안 가장 많이 학습하고 흡수한다. 그 중에서도 정서의 학습을 첫 번째로 들 수 있는데 이 시기에 강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의 학습기능의 중심이 손상을 받아 지적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렇듯 인생의 4년간에 학습하는 정서는 개인의 일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가정은 인간이 최초로 만나는 정서학습의 장소이다. 어린이는 자기에게 직접 전달되는 부모의 언동에서만 정서를 배우지는 않는다. 부모자신이 자신들의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어떠한 말들이 오가는가도 보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는 무엇이나 보고 있다. 가족간의 미묘한 감정의 교류도 잘 느끼고 있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간에 어떤 일이 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들 사이에 생기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는 어린이의 마음에 아주 강렬한 교훈을 준다. 또 결혼생활에 있어서의 문제를 잘 처리하고 있는 부부는 어린이의 정서적인 변화에도 잘 대응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EI가 높은 부모는 어린이가 동요하는 경우 이것을 정서교육의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어린이의 감정을 성실히 받아들이고 동요의 원인을 알아내려고 하며 마음의 동요를 가라앉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어린이와 함께 생각해 준다. 훌륭한 정서의 교사가 되고 싶으면 부모자신이 EI의 기본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곤란하다.
어린이의 성장단계에 따라 이해해야할 정서도 달라진다. 공감은 부모가 갓난아기의 정서에 파장을 맞추는 형태로 생후 얼마되지 않은 시기에 학습이 시작된다. 또 EI 중에는 친구끼리의 접촉을 통해서 길러지는 것도 있지만 자기 안에 있는 감정을 어떻게 인식, 조절, 처리하는가, 타인에 대해서 어떻게 공감하는가, 남과 자기 사이에 생긴 감정을 어떻게 처리 하는가… 등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쳐야 하는 EI는 많다.
EI를 갖춘 부모는 육아의 과정에서 아주 좋은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워싱턴대학의 연구팀에 의하면 EI가 높은 부모에게 양육된 아이는 부모와의 관계가 좋고 애정이 깊고 자신의 감정을 잘 처리할 수 있으며 마음이 동요했을 때에도 자기스스로 감정을 진정시킬 수가 있고 마음이 동요하는 횟수도 적다고 한다.
생물학적으로 보아도 이런 아이들은 이완되어 있고 스트레스성 호르몬이나 정서적 흥분을 나타내는 생리적 수치가 낮다.
사회생활에서도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고 사람들이 좋아한다. 교사에게서도 사회적 능력이 우수한 학생으로 인정받으며 거칠다거나 공격성 등의 문제가 적다.
인지능력에 있어서도 EI가 높은 아이는 유리한 점이 많다. 집중력이 있어서 학습효과가 높다. IQ가 같은 아이끼리 비교한 경우, 다섯 살의 시점에서 정서의 지능을 갖춘 부모를 가진 아이는 3학년이 되어 실시한 수학과 국어 테스트에서 보다 높은 성적을 올렸다. 이것은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학교생활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어린이에게 정서교육을 해야 한다는 주장의 강력한 근거이다.
3. EI 교육의 내용과 형태
EI 교육은 내용이 정서의 발달단계에 적합할 때 최대의 효과를 발휘한다. 신경계가 유년기에서 사춘기에 걸쳐서 천천히 성숙해 가는 것에 맞추어 정서도 성숙한다. 신생아의 정서레퍼터리는 5세 아이와 비교하면 원시적이고, 5세 아이의 정서레퍼터리는 틴에이저와 비교하면 단순하다. 정서면의 성장은 인지능력의 발달단계와 다른 한편으론 뇌를 포함한 생물학적 성숙단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뉴헤이븐의 정서교육프로그램을 예로 들면 저학년 아동은 정서의 자기인식, 인간관계, 의사결정 등에 대한 기초적인 것을 배운다. 초등학교 일학년은 빙 둘러 앉아서 여섯면에 「슬프다」「흥분하다」 등의 말을 쓴 「감정의 주사위」를 차례로 굴려서 주사위면에 나온 감정을 가졌을 때의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트레이닝에 의해서 아이들은 감정과 말을 확고하게 결부시키고, 자기와 같은 감정을 갖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공감을 익혀나간다.
4, 5학년이 되어서 친구와의 관계가 마음속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연령이 되어 가면, 우정을 키우고 유지하는데 있어 중요한 공감, 충동의 조절 분노의 억제 등을 배운다. 예로 트룹스쿨의 5학년 학생들은 「라이프스킬」시간에 표정에서 감정을 알아내는 훈련을 하는데 이것은 본질적으로는 공감의 연습이다. 충동의 조절에 관해서는 「정지신호」포스터가 교내의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져 있다.
포스터에는 여섯 가지 단계가 씌여 있다.
적신호 1. 잠깐, 마음을 가라앉히고
황신호 2. 무엇을 어떻게 느끼는가 말로 해보자.
3. 긍정적인 목표를 설정하자.
4. 해결책을 여러 가지 생각하자.
5. 결과를 미리 생각해 보자.
청신호 6. 가장 좋은 계획을 시도해 보자.
「정지신호」의 포스터는 아동이 화가 나서 상대를 때리려 했을 때, 친구로부터 무시당하고 토라져 있을 때 괴롭힘을 당하고 울음을 터트리려할 때 참고삼아 이러한 어려운 장면에서 잘 생각해서 대응할 수 있는 구체적인 순서를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감정의 조절뿐만 아니라 보다 유효한 행동으로의 지침도 된다. 감정이나 충동에 떠밀려 나갈 것 같은 상황에서 멈추어 서서 생각하는 태도를 습관적으로 몸에 배게 할 수 있다면 사춘기 이후의 위기에 대처하는데 있어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6학년이 되면 정서교육의 내용은 폭력, 섹스, 마약, 음주 등 이 시기로부터 아이들의 세계에 밀어닥치는 유혹에 직접 관련되는 내용이 되어간다. 또 중학교 3학년이 되면 틴에이저가 세상의 애매한 현실과 직면하기 시작하는데 맞추어 다양한 시각에서 사물을 보는 능력을 강조한다.
EI 교육의 이상에 가까운 수업을 해서 정서교육의 모델적 존재가 되어있는 누에바 학습센터의 「셀프사이언스」수업을 소개한다. 이 학교에서는 아침에 출석을 부를 때 교사에게 이름을 불린 아이는 큰소리로 ‘네’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니고 그날의 기분을 수치로 나타내어 대답한다. 의기소침해 있으면 1, 활기에 차있으며10이다. 셀프사이언스 수업이 시작될 때 출석에 대한 대답은 항상 높은 수치의 대답만은 아니다. 1이나 2, 3 -심한 기분- 이라고 하는 기운 없는 대답도 있다. 그럴 때 누군가가 “어째서 그런 기분이지? 이야기해 볼래?”라고 묻는다. 당사자는 마음이 내키면(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학급친구가 고민을 들어준다. 그래서 창조적인 대응방법을 함께 생각해 준다. 고민의 내용은 아이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저학년에서는 ‘괴롭힘을 당했다’ ‘또래에서 제외되었다’ ‘무엇인가가 무섭다’라고 하는 고민이 전형적이다. 6학년 정도가 되면 새로운 고민이 생긴다. ‘친구가 너무 유치해서 싫다’ ‘상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담배를 배운 친구가 자기에게도 피워보라고 강요 한다’ 등등. 이러한 화제는 아이들에게 있어 큰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보통은 기껏해야 점심시간, 통학버스 안, 친구의 집 등 수업과는 관계없는 장소에서밖에 입에 오르지 않는다. 아이들은 고민을 가슴에 간직하고 함께 생각해 줄 사람이 없으므로 혼자 괴로워한다. 그러나 셀프사이언스의 수업이라면 다함께 의논할 수 있다. 아이들의 고민을 교재로 한 의논 하나하나가 자기인식이나 인간관계의 능력을 높인다고 하는 셀프사이언스의 목표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이다.
셀프사이언스의 수업테마는「감정」이다. 자기 자신의 감정과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감정. 교사도 학생도 아이들의 마음의 문제에 주목하게 된다. 누에바 이외의 학교에서는 전혀 무시되고 있는 분야이다. 셀프사이언스의 교육내용은 EI의 항목에 거의 꼭 들어맞는다. EI는 학습을 진행하는데 있어 국어나 수학 등의 수업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요소이다. 왜냐하면 학습은 아이들의 감정과 분리해서는 진행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4. EI 교육의 방향
지금까지의 EI교육은 주로 심리학 연구실이나 미국내 일부의 진보적인 학교들에서 실험적으로 실시되어 왔는데 다음 단계는 연구실과 학교에서의 성과를 전국의 학생들에게 보통의 교사가 가르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학교의 교과 커리큘럼은 이미 과밀상태가 되어있는데 새로운 교재를 위하여 기존의 교과 커리큘럼을 조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는 교사도 있다. 그래서 현재 EI 교육을 위하여 새로운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고 정서나 인간관계에 관한 학습을 기존의 교육내용에 포함시키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다. 정서에 관한 교육은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등 기존의 교과에 무리없이 짜넣을 수가 있다. 미국의 예로 뉴헤이븐의 중학교에서는 「라이프 스킬」을 독립된 교과로서 가르치고 있는 학년도 있으며 국어나 보건위생에 짜넣어 가르치고 있는 학년도 있다.
인생에 직면하기 위한 발판을 가정에서 얻을 수 없는 아이들이 늘고 있는 현재 사회로서는 아이들의 정서적, 사회적 능력의 결여를 바로잡는 역할을 학교와 전문기관에 기대하는 도리밖에 없다. 물론 붕괴되어가는 사회제도의 대역을 학교가 한손에 떠맡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아이들 대부분이 학교에 가는 것을 생각하면 아이들이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기본적 능력을 가르치는 장소는 학교 이외에는 없는 것 같이 느껴진다. 아이에게 사회성을 가르치는 기능을 상실한 가정을 대신해서 EI 교육을 떠맡으려 한다면 학교와 교사의 부담이 커질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EI 교육은 교사의 태도 그 자체가 정서능력의 모델이 되므로 교사의 자질이 이처럼 중요한 교과도 달리 없을 것이다. 한사람의 학생에 대응하는 교사의 태도가 학생개인뿐 아니라 학급전체로부터 학습의 표본으로 주목을 받는다. 교사 모두가 EI 교육에 적합한 사람은 아니므로 이에는 교사 스스로의 자의에 의한 선택이 요구된다.
EI 교육은 ‘이런 것도 있구나’ ‘이것도 병행하면 좋겠구나’하는 생각을 가지고는 좋은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교육과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고 지금의 상태로는 행복하고 조화로운 개인과 사회의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절실한 깨달음이 없이는 진정한 EI 교육은 시작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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