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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선교 어디서 합니까? 3) 직장은 잃어버린 지역

가디우스 2007. 9. 17. 02:29
3) 직장은 잃어버린 지역
        직장선교는 어디에서 해야 할까? 이를 위해서는 직장에 대해서 잘 이해해야 한다. 앞선 시간에는 직장이 영적인 면에서 얼마나 가난한 지역인가와 얼마나 강퍅한 지역인가를 다루어보았고 이번에는 직장이 중심을 잃어버린 지역임을 나누어 보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 직업에 대한 성경적인 배경을 알아보고, 직업이 현대화되면서 그 중심을 잃게 되었던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즉 오늘날에 이르러 직업이 다양화하게 되었고, 직장이 대형화되어 감에 따라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이 갖고 있던 생활의 중심적인 역할을 놓치고 말았다. 그 결과 직장은 하나님이 아닌 물질이라는 허황된 주인을 모시고 방황하게 되어갔다. 바로 신본주의적인 생활을 떠나게 됨으로써 직장이 중심을 잃어가게 된 중심적인 원인이요 비극을 초래하게 되었다.

        성경에 나오는 직업은 하나님의 세우신 가정이 중심이 되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존재해왔었다. 이것은 성경의 시대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적용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성경적 원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은 가정보다 직장이 우선시되고 있으며, 가정이 직장의 시녀처럼 되어가는 경향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성경 시대의 직업들은 대개가 가정을 근간으로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즉 당시는 가족끼리 이루어진 농업이나 유목업이 주된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무리 발전되었다고 해도 가내수공업이나 가족끼리 하는 상업이 고작이었다. 어떤 형태이든지 가정의 범주를 벗어나서 크게 확대되지는 못했던 것이다. 물론 중세에 있었던 대토지 제도는 영주와 농노들을 통해서 이루어진 농업 형태인데 오늘날의 직장과는 다르다. 과거에도 오늘날과 같은 직업의 일종은 오늘날의 공무원에 해당하는 군주 밑에서 일하는 경우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서 기계화와 과학화로 인해서 신종 직업이 많이 나오게 되었다(앞으로도 더욱 많은 신종 직업이 나오게 될 것이다). 그 결과 과거와는 달리 직업의 현장이 대규모가 되고 한 두 가정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밀집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대량 생산이 가능해져서 작업 현장이 대형화되었으며, 한 직장 안에도 여러 직업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직장의 도움을 얻게 되었으며 여러 가지의 장점을 갖게 되면서 새로운 사회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처럼 직장이 커지고 집중될수록 가정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성경 시대에는 오늘날의 직장 개념이 약해서 직장이 가정을 위해서 존재했었다. 당시에는 어떤 형태의 직업이든지 가정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동화와 과학화가 되면서 대형 체제를 이루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서 가정은 직장에 귀속되어가게 되었다. 즉 가정을 위한 직장이 바뀌어 직장을 위한 가정처럼 된 것이다. 매우 아쉬운 현상이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그만큼 직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반면에 가정은 부수적인 기능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바로 이것이 대단히 위험한 일로써 마지막 때에 일어나는 하나의 징조로 등장한 것이다. 마지막 때에는 가정이 파괴되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직장으로 인해서 공식적인 파괴를 허용한 셈이 되었다.
        모든 직장은 가정에서 출발하였다는 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모든 공업도 상업도 한 가정 안에서 처음에는 조그맣게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바로 직장의 중심과 목표가 바로 가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가정은 직장의 시녀로 전락되고 말았다. 가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직장은 바로 중심을 잃어버린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이 그 역할을 잘 감당할 때 직장의 중심을 잡게 된다. 그리고 그 가정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번째 기관이기에 하나님께 중심을 둘 때 바른 중심을 잡을 수 있다. 아무튼 직장은 가정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직장에서의 업무과중과 관계악화로 인해 가정이 무너져간다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면 가정은 왜 중요할까? 또 가정과 직장은 어떤 관계 설정이 되어야 할까? 가정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최초의 기관(모임)이지만 직장은 하나님께서 나중에 창조하신 기관이다. 즉, 전자는 하나님께서 직접 고안해서 창조한 제도이지만 후자는 인간이 하나님의 지혜로 종합해서 만들어낸 제도이다. 다시 말해서 전자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적인 원칙이 중심이 되어 역사하지만, 후자는 인간의 경제적 원칙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즉 직장은 인간의 계획과 목표를 위해 세워졌지만 가정은 사람의 계획이 아닌 주님의 계획으로 세워진 것이다. 주님은 근대에 들어와서 새롭게 땀 흘릴 직장을 만들어 주셨는데 이는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였다. 그런데 직장은 가정의 행복할 권한을 몇 푼의 물질로 빼앗아가고 있다. 직장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이합집산(離合集散)될 수도 있지만 가정은 결코 그럴 수는 없다. 직장의 업무적인 영향력이 가정에까지 파급되어 가정은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이 되었다. 만일 직장에서 가정을 소외하도록 한다면 직장은 결국 그 중심을 잃어버리고 말게 된다. 이는 가정이 직장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중심을 잃어버린 직장에서 목매달고 일하는 자들은 방황하게 된다. 자신까지도 그 중심을 바로 잡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직장에 매인 자들은 가정을 떠나서 방황하는 탕자와 같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이라는 중심을 잃어버리고 직장에 괴롭힘을 당하는 자들은 신종 탕자처럼 중심을 잃고 헤매게 된다. 왜 그렇게 탕자같이 되었으며 직장이 가정이라는 중심에서 빗나갈 수밖에 없었을까? 이는 물질 때문이다. 물질은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고자 하는  인간적인 욕망의 산물이고, 그 결국은 가정이 희생되도록 되어 있다. 즉 하나님이 중심으로 세워주신 가정을 잃어버리고, 물질이라는 허황된 주인을 직장에서 모시게 된 것이다. 이것이 초기에는 좋은 듯하였지만 끊임없는 싸움 속으로 직장을 몰아넣고 말았다. 탕자가 물질에 매여서 한탕 놀았지만 결국은 그 종으로 전락되어 방황하는 것과 같다.
        한편 가정 자체가 바로 하나님을 위해 존재함을 알아야 한다. 가정에서 하나님이 없으면 그 가정은 중심을 잃게 된다. 가정을 통해서 그 동안 하나님의 의도가 성취되어 왔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의도를 전수 받아 증거될 것이다. 이런 역할이 가정을 통해서 직장에서 동일하게 펼쳐져 직장도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 이럴 때 직장은 영적인 중심을 바로 잡게 될 것이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더욱 더 맛볼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 주인으로서 역할을 발휘할 수 없는 직장이 잃어버린 지역이다. 직장은 물질이라는 허황된 주인을 모시고 있으면서 참된 주인을 섬기지 못하고 있는 곳이 되기 쉽다. 바로 하나님의 창조물인 직장이 그 주인을 홀대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오늘날의 직장은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몇 푼의 이윤추구에만 매달리도록 독려하고 있을 뿐이다. 즉 신본주의의 영적 중심을 벗어나서 물질 중심의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직업 개념으로 발전되기 시작한 것은 종교개혁 이후이다. 종교개혁으로 직업에 대해 천직의식(calling)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종교개혁자들이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고전7:20)는 말씀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부르심은 어떤 특정한 사람만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 모든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았기에 신분이나 직업에 귀천이 없음을 일깨워 주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서 지체로 부르심이었기에(골3:15) 지체로서 귀천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고전12:14-27). 다양한 직업은 그만큼 다양한 지체로 세워진 것이기에 직업에는 귀천이 존재할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이는 성직자 위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었던 평신도에게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이에 모든 직업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믿고 모든 직장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충성하게 되였다. 교회에서 일하는 직업만이 성직이 아니라 모든 직업들이 거룩한 직업이라는 성직의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평신도들은 어느 때보다도 자신의 직업 현장에서 자부심과 긍지로 일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직업생활에 대해서 더욱 더 철저히 다스리고 절제하며 도전해 가는 삶을 살 수 있었다. 그 결과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발전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었다고 막스 베버는 말하고 있다. 바로 개신교의 기독교 정신이 당시의 직업현장에서 철저히 실현됨으로 말미암아 자본주의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한다. 여기서 기독교 정신은 대개가 지체 간에 섬김의 삶, 이를 위한 절제와 금욕주의 정신이었다. 오늘날의 직장은 이런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다시 말해서 한 몸 안에서 지체 간에 섬기기 위해서 절제와 금욕적인 삶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그 중심에서 역사해야 할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직업의 현장은 본연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인간의 본성만 판을 치고 있다. 어느 사회나 어느 국가이든 정신이 무너지고 말게 되면 인간의 본성만이 판을 치게 되어 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중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오직 육신의 소원인 경제원칙만이 판을 치고 있다. 그 결과 서로가 이윤추구에 혈안이 되어 격투를 벌이는 현장을 쉽게 구경할 수 있다. 서로가 최소한 투자하고 최대한 얻고자 하니 싸움은 피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에 직장은 완전히 중심을 잃고 이전투구의 치열한 싸움터가 되고 말았다(이런 싸움을 인간의 자연스런 심성으로 보고, 이런 욕망이 인류의 자본주의 발전의 기본정신이라고 말하는 자들도 있다).
        더구나 직장을 잃어버린 지역이라 함은 기존의 교회에서 잃어버린 영혼들이 가장 많이 가있는 곳이다. 직장은 한번도 전도 받지 못한 사람도 있겠지만 교회에서 잃어버린 영혼이 가장 많이 있는 영역이다. 교회에 갔다가 시험에 들었거나 실족해서 잃어버린 영혼들도 직장에서는 보란 듯이 살아가고 있다. 직장에는 어릴 적에 교회에 나가 찬송하며 예배를 드렸던 자들이 수없이 많다. 특히 일반교회가 노령화되고 여성화되어가는 동안, 직장은 잃어버렸던 계층인 젊은층이나 장년 남성들의 집결지가 되었다. 이처럼 잃어버린 영혼들을 누가 집결시켜 놓았을까? 이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내는 일에 집중해야 할 때가 이미 되었다.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직장, 그 안에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서 직장선교는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부름을 받은 직장선교사들, 곧 직장에 있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충성이 요청된다. 그리고 직장선교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더욱 많은 책임감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다. 잃어버린 탕자가 돌아왔을 때,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았을 때,  잃어버린 드라크마 하나를 찾았을 때 그분이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알고 있는가? 심지어는 잔치를 베풀고 기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직장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쓰임 받게 되었을 때 탕자가 돌아온 것처럼 기뻐하실 것이다. 또 그 직장 안에서 잃어버렸던 영혼이 하나라도 다시 믿음을 갖게 되었을 때 주님은 잔치를 벌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직장이 하나님께 쓰임 받도록 하고, 그 안에서 잃어버렸던 영혼들이 돌아올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먼저 직장의 책임자들이 철저히 영적인 중심을 바로 잡아야 한다. 영적인 중심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직장의 중심을 인간을 위한 경제원칙으로 삼지 않고, 주님을 위한 섬김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이 섬김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신본주의 신앙생활의 회복이 요구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한 삶, 곧 기독교 정신이 살아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직장인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본연의 가정을 세우는 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 직장 위주로 모든 것이 펼쳐지는 것이 오늘날의 세태이다. 하지만 이런 세태에 밀려가지 말고 깨어있어서 직장 때문에 가정파괴의 현상이 나타나지 않게 해야 한다. 이에 직장에서 만연된 금전만능 사상을 배격하고 영혼과 가정을 사랑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끝으로 직장 안에 거하고 있는 참된 그리스도인, 곧 직장선교사의 역할을 확고히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인 직장인은 단순한 직장인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바로 잃어버렸던 지역인 직장이 주님께 쓰임 받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즉 직장인 그리스도인은 잃어버린 지역이 쓰임 받게 하는 신령한 중재 역할을 하는 직장선교사이다. 직장선교사의 사명은 바로 잃어버린 지역인 직장이 하나님의 손 안에서 쓰임 받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직장선교사가 먼저 영적인 중심을 바로 잡고 깨어 있어야 한다.